[선데이뉴스/칼럼]국무총리 민심이 심판

기사입력 2015.05.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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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선데이뉴스=칼럼/나경택]김영삼 대통령 시절 어떤 총리는 매일 대통령에게 문안 전화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통령에게서 전화라도 오면 벌떡 일어나 “예 각하”하며 굽실대듯 해 직원들이 민망할 정도였다. 전두환 대통령 때 어느 총리는 집무실 책상을 북쪽 청와대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임향한 자세’로 앉겠다는 뜻이었다. 총리실에서 15년 일한 정두언 의원이 저서에 정리해놓은 역대 총리 이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의전 총리’, ‘대독 총리’같은 말엔 그런 총리들 모습에 대한 비아냥이 담겼다.

왕초시대 영의정에 넷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할 총리도 없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의 공동 창업자 격이었던 김종필 총리는 장관 몇 자리 추천권도 갖고 있었다. 그를 이은 박태준 총리도 실세 총리로 통했다. 그러나 두 사람도 결코 대통령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대통령과 내놓고 어긋난 총리로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항명하다 4개월도 안 돼 물러난 이회창 총리 정도다. 헌법은 20개 조에 걸쳐 대통령의 권한과 예우를 상세히 정해놓았지만 총리에 대한 것은 2개 조에 불과하다. 그것도 ‘대통령 보좌’. ‘대통령 명을 받아 행정 각 부통할’ 쯤이다. 태생적으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는 존재라는 얘기다. 대통령도 정치적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 총리를 바꾸고 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방탄 총리’, ‘국민 전환 총리’다. 권력의 약한 고리를 찾는 야당은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총리를 표적으로 삼곤 했다. 김대중 정권 때 총리 청문회 제도를 도입하면서 특히 심해진 현상이다. 두 총리 후보가 연달아 위장 전입 등으로 물러났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이해찬 총리가 3·1절에 골프 쳤다가 사퇴했다. 이명박 정권 시절 처음부터 ‘세종시 총리’라 불렸던 정운찬 총리는 정권 차원에서 추친했던 세종시특별법 수정안이 부결된 데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완구 총리가 취임 63일 만에 심야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정권 들어 총리 후보까지 치면 벌써 다섯 명 째다. 정홍원 총리만 무사했고 다른 사람들은 발가벗겨지다시피 하면서 퇴장당했다.

부동산 투기, 과다 수임료, 거듭된 말바꾸기……. 이유도 가지가지다. 이러다 보니 총리 후보로 검될 만한 사람들이 전화기를 꺼놓는다는 씁쓸한 우스개가 돈다. 총리가 과연 필요하기는 한 것인가 하는 냉소도 만연해 있다. 그런데도 이렇다 할 돌파구 또한 찾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총리 잔혹사를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끔찍하다. 실권이 있든 없든 총리는 헌법에 따라 행정부를 총괄 지휘하는 자리다. 그런 총리가 정쟁의 한복판에 서서 만신창이가 된 끝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으니 공직사회 분위기가 어떨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행정부 2인자가 부패 의혹과 거짓말 논란으로 낙마함으로써 정권의 도덕성과 권위, 명예에 큰 상처가 났다.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이 무더기로 ‘성환종 리스트’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미 대통령의 리더십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실세 잇단 인사실패와 세월호 참사,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권력 다툼 등으로 떨어졌다가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던 대통령 지지도는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비박계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를 압박해 이 총리 퇴진을 관철시킴으로써 당·정·청 관계의 무게중심도 한층 당 쪽으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커졌다는 말이다. 당장 정권 스스로 ‘국정의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며 의욕을 보여온 올 한 해를 허송하게 되는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 피해는 국가와 국민이 보게 된다. 해결책을 내놓는 것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박 대통령은 새 총리 인선을 정권 분위기 쇄신과 국정 난맥 수습의 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야당도 낙마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차원을 넘어서 새 총리 후보의 국정 능력을 검증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큰 역풍에 부딪힐 수 있다.

 

[나경택 기자 guk008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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