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칼럼]종교적 사명을 다하자

기사입력 2015.06.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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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요즘 한국 각 종교의 숨은 신(神)은 바로 ‘돈’이라고 한다. 불교의 붓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예수는 2인자라는 것이다. 최근 화장문화아카데미가 연 종교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에서 나온 얘기다.

종교 전문가들은 “오늘날 한국 종교는 스스로가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혹독하게 질타했다. 천주교의 경우 “주교들은 사장이고, 본당 사제는 프렌차이즈 지점장이 되어버린 꼴”이라는 말도 돌았다. 모름지기 종료란 ‘가난의 정신’이 시작이고 끝이 아닌가! 붓다와 예수는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사람을 껴안아서 위대해졌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즉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이 있다(마테복음 19장)’고 했다. 붓다 역시 소유의 욕망을 끊는 곳에 도(길)가 있다고 했다.

붓다 생전에 아사세 왕이 켜놓은 1만개의 큰 등은 하룻밤 만에 다 꺼졌으나 가난한 여인 난타가 밝힌 1개의 등은 더욱 빛났다는 ‘빈자일등’ 이야기는 유명하다. 평생을 청빈의 탁발승으로 산 천주교 성인 프란치스코는 성자 중의 성자로 불린다. 현 교황 프란치스코도 “교회 안에 영리성이 들어오는 순간 추해진다”며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를 강조해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불교에는 ‘기한에 발도심’ 이라는 격언이 있다. 춥고 배고파야 도를 닭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해방 후 한국 불교를 이끌었던 청담 스님은 제자들에게 “흐르는 개울물도 아껴 쓰라”고 가르쳤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콩나물을 보면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스님들의 살림살이와 정신은 청빈하기 그지없었다.

법정 스님하면 지금도 바로 ‘무소유’가 떠오를 정도다.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도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았다. 그랬던 종교가 이제 가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슬프다. 사실 돈이 봇다와 예수를 대신하는 시대라는 지적이 나온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종교의 세속화와 성장주의에서 비롯된 성직자들의 일탈행위를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한국에서 종교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최근 개신교, 가톨릭, 불교의 3대주요 종교 전문가들이 참여한 종교포럼에서는 “한국 종교에 지배층은 있지만 지도층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포럼에서는 개신교의 목사 가톨릭의 신부, 불교의 스님 등 이른바 성직자들이 항상 높은 곳에서 말하고 듣는 식으로 신자들을 ‘지배하는’ 권위주의가 한국 종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가톨릭 쪽에서는 교회 권위주의와 성직자 권위주의를, 개신교는 합리적이지 않은 대형교회 목사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불교 쪽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출가자의 무관심을 문제 삼았다. 성직자들이 이렇다보니 국민들이 존경할 만한 종교 지도자가 없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적 권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교적 권위가 공감·실천·희생을 통해 얻어진다는 말은 상식에 속한다. 그게 곧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며 종교 지도자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 예수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했고, 잘못된 체제에 저항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하는 것으로 권위를 확보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성직자들의 반종교적 일탈행위가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개혁과 쇄신 요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종교포럼을 언급하는 것은 종교인 스스로, 그것도 종교 간 벽을 넘어 종교 본연의 역할과 종교 지도자의 사명을 일깨우는 논의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좀 더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특별히 경청할 대목이다. 이제는 성직자들이 어려운 이들을 보듬는 일에 적극 나서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서 종교적 권위를 다시 확고히 세울 때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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