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 칼럼]아버지는 누구인가

기사입력 2015.07.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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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전란은 문인, 예술가에도 모질었다. 시인 전봉건이 6·25때 부상으로 제대하고 형 전봉래를 찾아 피란지 부산에 갔다. 시인이자 불문학도였던 형은 음독한 채 거리를 해매다 숨진 뒤였다. 전봉건은 형이 쓰러진 국제시장 모퉁이에 노점을 차렸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도색 잡지, 라이터, 양담배 따위를 팔아 연명했다. 화가 박고석은 영도에서 해초를 주어다 밀가루죽에 넣어 끓여 먹곤 했다.

그가 시계 행상을 한 곳도 국제시장이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굳세어라 금순아) 흥남 부두에서 여동생과 헤이지고 부르던 노래처럼 국제시장은 삶의 전쟁터였다. 6·25를 거치면서 미군 물자부터 밀수품까지 ‘국제’ 물건을 판다 해서 국제시장이다. 도떼기시장이라는 말도 국제시장에서 나왔다고 한다. 잡다한 물건을 어수선하게, 때로 은밀하게 사고파는 시장을 가리킨다.
 
중심가 광복동 앞 국제시장 골목엔 도·산매 가계 1500개가 늘어서 있다. 공구부터 전기·전자제품, 주방기구, 옷까지 없는 게 없다. 가계마다 일본어 문구를 내걸어 관광객을 부른다. 서쪽엔 ‘깡통시장’이 붙어 있다. 미군 통조림을 많이 팔아 얻은 이름이다. 상인들이 배고픔을 달래던 비빔 냉면은 알랑한 대로 추억의 별미다. 당면에 어묵·시금치 얹고 양념장에 휘휘 비벼 먹는다. 어두워지면 통로에 주전부리 노점이 들어차 야시장처럼 북적인다.
 
영화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큰절이다. 흥남 부두에서 국제시장으로 서독 탄광 막장에서 베트남 정글로 혹독한 현대사를 몸뚱이 하나로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들 앞에 올리는 ‘헌사’다. 세상이 어지럽고 사는게 팍팍할수록 사람들은 속 깊은 부성을 그리워한다. 그 아버지상은 권위의 상징 가장도 엄부도 아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버지다. 강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한없이 여린 아버지다.
 
감독 윤제균은 주인공 부부 이름에 부모 성함을 썼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고맙다는 말씀 왜 하지 못했는지 한으로 남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어머니만 못할 리 없다. 다만 드러내기가 어색하고 서툴 뿐이다. 자식은 부모가 돼서야 아버지 삶을 들여다볼 눈을 뜬다. 아버지의 고독을 몸으로 느낀다. 한평생 주시기만 했던 아버지가 애틋하다. 그 연민은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하는 디딤돌이 된다. 그러나 흔히 아버지 손 붙잡기를 머뭇거리다 떠나보내고 만다. 미국 의회에서 1950년 피난시절의 ‘국제시장’ 영화를 상영 그때 그시절 한국에 참전용사들의 감회를 새롭게 했다고 한다. 중국 주변에서 나라를 이루고 흥망성쇠를 겪었다. 수많은 민족 중에서 여전히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베트남 정도가 아닌가 싶다. 몽골은 국토의 태반이 중국령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은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다.
 
성깔도 있다. 게르만이나 터키 민족 주변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네덜란드나 체코, 세르비아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면모를 발견한다. 체격과 체력, 정신력에서 평균 이상의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성깔은 생존의 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동포 역시 이런 이야기에 공감을 표하며 경험담을 전해주었다. 한국인 두세 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미국 동료가 “한국사람끼리 있네”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우리 한국사람들이야. 엉기지 말라고” 라는 농담으로 되받는다는 것이다.

성깔은 외부의 숱한 도전에 응전하면서 한국인의 유전자에 녹아든 특성인 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성깔이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에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는 일각의 목소리에서 예의 성깔을 재발견한다. 안보 위기 속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남과 북의 성깔이 서로 엉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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