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칼럼]인생의 고단한 삶

기사입력 2015.08.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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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다정한 아빠를 둔 친구가 늘 부러웠다. 김현승 시처럼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를 갖고 싶었다. 현실의 아버지는 체면을 목숨만큼 귀히 여기는 가부장의 전형이었다. 집 보다는 집 밖을, ‘가족과 함께’보다는 ‘남들과 함께’ 여행하길 좋아했다. 내일 먹을 양식 걱정하는 아내 앞에서 나라와 민족의 안위를 논하던 ‘철없는’ 애국자였다. 그 시절 아버지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기 전까지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아내, 어린 아들과 함께 끌려온 귀도는 가족에게 닥친 불행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아들에게 ‘지금부터 아빠와 신나는 게임을 하는 거야’ 속삭인다.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일등상으로 탱크를 받는 것”이라는 아빠 말에 아들은 두 눈을 빛낸다. 죽을 고비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도 아들 앞에선 결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버지는 수많은 관객을 울렸다. 신기하게도 무심한 아버지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남자의 눈물’을 금지시해온 문화 탓일까. 아버지를 소재로 한 시들에 눈물, 슬픔이라는 시어가 자주 나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김현승). ‘소주 한 병만 있어도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쓰는 시인 / 담배 한 갑만 있어도 /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림을 그리는 화가’ (김병훈)... 그래서일까. ‘골프 대외’의 눈에서 폭포수처럼 흐르던 눈물이 보는 이들 가슴을 울렸다. 7년, 157번 도전 끝에 LPGA 우승을 따낸 최운정의 아버지 말이다. 아버지는 매번 고지 앞에서 무너지는 딸을 위해 경찰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20kg 넘는 캐디백을 메고 딸을 지극정성 뒷바라지했다.

주저앉으려는 딸을 일으켜 세운 건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있는 거다. 꿋꿋하게 자기 길 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정호승이 노래했듯 아비지란 ‘석 달치 사글세가 밀린 지하 셋방’이고 ‘아침 출근길 보도 위에 누가 버린 낡은 신발 한 짝’이며 ‘벽에 걸려 있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진 고장 난 벽시계’ 같은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나 잘난 아버지든 못난 아버지든 내 자식만큼은 ‘햇볕 잘 드는 전샛집’에서 ‘새 구두’ 사신고 ‘인생의 시계를 더 이상 고장 내지 않는’ 멋진 삶을 살기 원한다. 그 아버지들이 마음껏 목놓아 울어도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율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통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는 항목이다.

여기에 또 하나 추가해야 할 타이틀이 생겼다. 한국 노인의 은퇴 연령이다. 한국 노인의 경제적 빈곤과 불행한 삶의 원인이 일손을 놓은 데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자료다. 한국 노인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른 여러 통계로 말해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55~79세 고령층 가운데 61.1%가 앞으로 더 일하기를 원했다.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나이가 평균 49세였다. 사업 부진, 조업 중단 휴·페업이 주된 이유였다. 그 가운데 51.6%는 현재 취업 중이다.

고령층 전체 고용률도 53.9%에 이르렀다. 한국인은 공식 퇴직 연령이 60세에 도달하기 11년 전에 조기퇴직한 뒤 재취업 등을 통해 정년을 지나 11년 후까지 일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노인 대책이 시급하고 중대한 국가적 과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2017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만큼 총력 대응을 해도 모자라는 상황이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 문제나 연금·복지제도는 초보 수준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허구에 매달린 정부를 믿고 기다리기에는 너무 절박한 현실이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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