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칼럼]단합된 국민의 힘

기사입력 2015.09.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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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군대 시절 어느 말년 병장이 아침마다 눈뜨면 졸병에게 물어보곤 했다. “내 제대까지 며칠 남았지?” 졸병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일 남았습니다.” 졸병은 이 고참 병장이 전역할 날을 기억해두고 남은 날짜를 매일 보고하듯 일깨워줘야 했다.

고참이 제대 날 가까워오는 기쁨은 키우고 기다리는 지루함은 덜려는 허튼수작이었다. 첫 휴가 가는 이병 군화를 선임이 광내주는 요즘 군대에선 상상 못할 일이지만 비무장지대 GP에서 복무하다 제대 말년이 되자 소대원들이 괴나무를 베어 왔다. 몇 달씩 말리고 다듬고 사포질해 바둑판을 만들었다. 정성껏 마련한 전역 선물이었다. 괴나무 바둑판은 두드리듯 돌을 놓으면 스펀지처럼 들어갔다 나온다는 명품이다.
 
전역 날이 오자 바둑판도 사양하고 떠났다. 그렇게 고대하던 날, 몸 하나 빠져나오는 것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전역을 기다리는 간절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리 없다. 요즘 군대 유머에 ‘계급별로 가장 기쁠 때’라는 게 있다. “이병은 교회에서 초코파이 줄 때, 일병은 신병이 들어와 경례할 때, 병장은 행보관이 말년이라고 불러줄 때”, ‘건강하게 전역하기 위한 수칙’도 있다.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 가라. 뇌진탕 걸릴라. 돌부리 차지마라. 다리 부러질라…. 전역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복무 기간이 늘어난다면 마른하늘 날벼락일 것이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원이 습격해 온 1·21사태가 터지자 전역이 늦춰졌다. 전역 특명지 받아놓은 병사는 그나마 열흘쯤 넘겨 제대했지만 차츰 늘어나 길게는 여섯달 뒤 전역했다.

느닷없이 하사 계급장을 달았던 병장들은 일흔 살 되도록 심란했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러나 군대 갔다 온 아들은 절실히 안다. 북한이 지뢰와 포격으로 도발해 오자 전역 연기를 자청한 병사·부사관들이 얼마나 용기 있는지를 이 여든일곱 명 중에 적과 맞선 전방 근무자가 여든 셋이다. “전우들을 두고 어떻게 나만 가겠느냐”고들 했다. 평균 나이는 21.7세, 중·고등학생때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목격했다. 그러면서 “입대해 저런 일이 일어나면 앞장서 전투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는 병사가 많다. SK그룹과 동성그룹이 이 장병들을 채용하겠다고 나섰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좋은 회사 취업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기업으로선 이보다 듬직한 사원감이 어디 있을까! 우리 사회엔 신세대의 국방 의지를 미더워하지 않는 시선이 없지 않았다. 여든일곱 장병이 생각을 바꿔놓았다. ‘영웅’이라는 호칭과 그에 걸맞는 대접이 아깝지 않다. 남북이 8·25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군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 원칙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정부가 흔들리지 않고 북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과 정치권이 일치단결해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치권은 과거 남북 긴장이 고조되면 강온 양론으로 나뉘어 정쟁을 벌이곤 했다. 이번엔 여야가 지뢰 도발이 터지자마자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북한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여야 지도부는 ‘우리 군에 무한 신뢰를 보내며 모든 정쟁을 멈추겠다’는 합의문도 냈다.
 
새정치연합은 이와 별도로 전체 의원 명의로 북한의 도발 중지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무엇보다 북을 겁나게 만든 건 대한민국 국민의 단합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북이 연일 전쟁 협박을 해도 생필품 사재기 같은 사회적 동요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북 도발로 생업을 포기한 채 며칠 밤을 대피소에서 보냈던 접적지 주민들까지도 “이번엔 꼭 북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남북 관계는 앞으로 더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할 것이다. 한 손으론 악수를 하면서도 다른 손으론 뒤통수를 때려온 북의 습성이 쉽게 바뀔 리도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북과 대적해 이길 수 있는 의지와 저력을 이번에 보여줬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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