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뉴욕카네기홀에 우뚝 서는 김장실 국회의원

가난과 역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목표를 이루는 참된 정치인!
기사입력 2015.10.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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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실 국회의원>

[선데이뉴스=윤석문 기자]2015년 11월 3일 뉴욕카네기홀 ‘한국역사속의 노래변천사’에 관한 강연에 김장실 국회의원이 초청되었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관광분야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던 김장실 의원은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음에도 음악적 조예(造詣)가 깊어 ‘한국역사속의 노래변천사’에 대해 뉴욕카네기홀에서 강의를 한다.
K-POP으로 세상에 알려진 우리 음악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하기 버거운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 음악에 세계인이 열광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의 뿌리를 찾아 음악의 변천사를 연구하고, 그 음악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행정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함에도 끝없는 노력을 통해 음악속에서 우리의 정서와 혼 그리고 흔적을 찾고자 했으며, 그 결실들이 세계의 무대인 뉴욕카네기홀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게 된 것이다.

경남 남해에서 출생하여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당시 가난이 남긴 아픔은 우리사회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가난에 굴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였던 흔적은 직업선택을 위해 부산에 있는 경남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남대학교에 입학하여 행정학 학사로 졸업장을 받았으며, 당시 지방대생으로 드물게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마치고, 공무원으로서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 같다.

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문화공보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김장실 의원은 청렴과 정직 그리고 성실함을 바탕으로 공직자의 모범을 보이며 근무하였기에 대통령비서실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이후 문화관광부 근무를 통하여 문화와 예술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과 예술의 전당 사장까지 역임(歷任)하였다.

가난으로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힘겹게 보냈던 김장실 의원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강했기에 대학진학 이후에도 고시공부에 집중하느라 건강을 잃기도 했다.
특히 공무원으로 해외 유학을 떠났던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시절엔 남보다 빠르게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공부했으며, 계속 책상에 앉아 오로지 공부에 몰입했던 결과 최단기간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강은 최악으로 나빠졌으며, 걷기가 힘들 정도로 무릎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김장실 의원>

김장실 의원을 마주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웃집 아저씨를 이야기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이 전해주는 이미지가 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딱하고 무거우며 마주하기 힘든 직업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우리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하고, 말씀을 너무 재미있게 하십니다”라는 이야기로 친근감을 표시한다.
그것은 시골에서 태어나 힘들고 어렵게 성장했던 과거가 있기에 사람위에 군림하는 자세보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몸에 녹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마음가짐과 자세가 있기에 일반인과 소통함에 장애가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으로 3년 연속 ‘의정대상 선정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국회의원 의정대상’을 수상하였는데, 이 상에 대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3년 연속으로 수상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시민단체, 기자 및 전문가들의 설문조사와 의정활동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의정대상 선정위원회 전문위원들의 수준 높은 사전 심사를 거쳐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보인 국회의원에게 의정대상을 수상하기에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김장실 의원은 생활체육진흥법 제정에 앞장서는 등 문화체육 행정의 전문가로서 보여준 역량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정책을 만들고, 소방경찰공무원의 복지를 개선하는 노력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된 문제와 정책에는 의정활동의 최우선 과제로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대한장애인농구협회장으로 지난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국익을 높이고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한류문화 특강과 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 활동>

김장실 의원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희망의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지역에는 아직도 낙후된 지역들이 많은데 오랜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경제발전이 가능토록 노력할 것이며, 지역경제발전이 대한민국 경제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견인역할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김장실 의원은 문화전문가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수도권과 지역 문화의 격차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자치단체 예산부족과 예술인의 수도권 집중현상이 그 원인이라 진단하였으며, 이러한 지역 문화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지원과 지역별 특성을 살린 문화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부산 문화산업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부산은 해운대 영화제의 성공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부산은 해양 물류산업 발전과 문화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하여 지역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는 부산의 성장과 발전에 관심이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개발이 저조한 서부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서부권의 발전을 위한 전략은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당시의 경험과 공직을 수행(遂行)하며 외국 방문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사람의 발자취와 인간미가 넘치는 관광지로 개발하여 관광객의 발길이 넘치도록 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김장실 의원의 삶에서 ‘나의 발자국이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기업 창업주의 좌우명이 교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난과 역경이 있어도 긍정적 마인드로 이겨내고, 공직과 국회의원을 통해 얻은 경험을 더 큰 성장과 발전을 위해 뿌리내리고자 하는 열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주변인에게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다정한 성품으로 대하고, 국가 미래를 위해서는 고민으로 대안을 찾고 있는 그를 보면서 우리의 앞날에도 희망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윤석문 기자 smyu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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