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칼럼]몰카 공화국

기사입력 2016.01.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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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나경택 칼럼]피핑톰이란 말이 있다. 그 벌로 눈이 멀게 됐다는 톰이란 사람에게서 유래된 말로 ‘관음증’의 남성을 뜻한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은 사고로 휠체어에 의존해 사는 한 사진작가가 카메라 렌즈로 주변 이웃들을 훔쳐보는 것이 줄거리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처럼 훔쳐보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속의 망원렌즈 카메라는 몰래카메라의 원조쯤 된다. 언제부터인가 TV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럴듯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욕망에 부응한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현실도 따지고 보면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출연자들은 아닌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정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현실 그 자체는 몰래카메라 속에나 들어있는지 모른다.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가 가혹한 세금을 매기자 그의 아내 고다이버가 “제발 세금좀 낮추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영주는 장난삼아 조건을 달았다. “당신이 벌거벗고 성 안을 한 바퀴 돌면 모를까” 고다이버는 실행에 옮겼다. 주민들에게는 “내가 말을 타고 알몸으로 지날 동안 창문을 닫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세금이 걸린 문제였기에 주민들 역시 혼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톰이라는 양복재단사가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했다. 창문 틈새로 몰래 여인의 알몸을 감상했다. 톰은 하늘의 벌을 받아 눈이 멀고 말았다. 관음증을 뜻하는 피핑톰 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못 말리는 인간의 관음 성향을 일러주는 이야기다. 조선의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은 우스갯소리로 ‘몰카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가 없었기에 화폭에 담았을 뿐이다.

김홍도의 ‘빨래터’는 아낙네가 허연 두 다리를 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주는 장면을 먼발치에서 훔쳐보는 양반을 그리고 있다.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속살을 드러낸 채 목욕하는 기녀들을 동자승 두 명이 바위 틈새에서 엿보는 장면을 묘사했다. 일본의 이하라 사이가쿠가 쓴 소설 「호색일대 남」의 삽화를 보면 겨우 9살 난 주인공이 목욕하는 하녀를 망원경으로 훔쳐본다. 하녀가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자 되레 “내가 본 것을 소문내겠다”고 협박한다. 관음증이 9살 어린이조차 한순간에 사생활 침해 및 협박범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330여년 전 보여준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사냥꾼인 악타이온은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우연이 있는데도 대가는 혹독했다.

아르테미스의 저주를 받은 악타이온은 자신이 데려온 사냥개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소름 돋는 이야기다. 26세 여성 최모씨가 워터파크 여성 샤워장에서 샤워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음란물 유통 사이트에 팔았다가 구속됐다. 최 씨는 채팅 앱을 통해 만난 어느 남성으로부터 돈을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휴대전화 케이스형 몰래카메라를 건네받고 185분 분량의 영상을 찍어 넘겼다.

그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워터파크의 여성 샤워장을 훔쳐봤다. 영상에는 성인 전용 휴식공간의 광고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고 한다. 단순히 개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사업적 동기에 의해 추진됐다는 게 더 심각한 측면이다. 얼마 전 드론 몰래카메라가 누드 해변을 촬영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미 초미니 드론이 개발됐고 이 드론이 몰래카메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벌레나 곤충 형태의 드론이 창문 틈을 통해 몰래 들어가 촬영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불쾌한 상상이지만 그에 대비해야 한다. 요즘엔 최첨단장비로 장착한 스마트폰을 누구나 손에 쥐고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찍혔는지도 모른 채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만천하에 동영상으로 유출되는 세상이다. 오죽했으면 ‘몰카공화국’ 소리를 듣는가!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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