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실패한 대기업 철저히 밝혀라

기사입력 2016.05.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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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현대중공업은 2006년 현대상선 주식 1900만주를 취득했다. 계열사인 현대상호중공업도 850만주를 사들였다. 두 회사 합쳐 26.68%의 자본을 확보하며 현대중공업그룹은 단숨에 현대상선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이전까지 현대상선 최대주주였던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율은 18.72%였다. 현대중공업은 4950억원을 쏟아부었다. 당시 종가보다 7.78% 할증된 금액이었다. 경영권 참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최대 고객인 현대상선이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 위험에 노출돼 있어 고객 보호와 투자 차원에서 매입했다는 것이 당시 현대중공업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물론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정씨 일가가 아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을 어쩌지 못하도록 “주식 말뚝”을 박아놓은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실제로 이 말뚝의 위력은 대단했다. 현 회장과 현대그룹은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도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키는데 더 신경을 써야했다.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하고 주가가 하락할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손실을 보전해주는 조건으로 국내외 기관투자가들과 파생상품 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중공업이 박아놓은 말뚝은 정상적인 경영흐름을 왜곡시킨 손톱 밑의 가시이자 밥 속의 돌이었다.
 
그런데 이 말뚝이 현대상선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에도 저주로 돌아왔다. 세계 1위를 질주하던 현대중공업은 조선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5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생산적인 투자에 쓰지 않고 말뚝으로 10년이나 박아놓았으니 탈이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주당 1만 8000원에 샀던 현대상선 주식은 2000원까지 추락해 거래 정지됐다. 단순 계산으로도 4000억원 넘게 날렸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어려워졌고, 주주의 이익도 심각하게 훼손됐음은 물론이다.

조선 경기의 침체를 거론하기에 앞서 오너와 경영진의 방심, 오만, 회사 자본의 사적 이용이 현대중공업 위기의 근본 원인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인적 구조조정이 위기 수습의 처음이 아니라 맨 마지막이 돼야하는 이유다. 미루고 미루었던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뒤늦게 급물살을 타고 있으나 문제는 부실 쓰레기를 청소할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이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위기를 거치며 정부가 쏟아부은 공적 자금은 170조원이 넘는다.

구조조정 때마다 사실상 온 국민에게 그 비용이 전가된 것이다. 이번에도 최소 수십조원대 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부실을 도려내려면 기업 자본금을 늘려주거나 은행 빚을 탕감해줘야 하고 실업자를 지원하는데도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제껏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지 방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 부실기업 정리를 책임져야 할 국책은행들 가게부엔 이미 적신호가 요란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국내 부실기업들의 12%를 떠안은데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을 매우느라 작년에만 5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이 바람에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적정치 10%보다 낮은 9%대이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이대로 가면 은행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이제 급한 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구조조정 재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세금을 쓰든 한국은행 발권력을 이용하든 다른 기금을 쓰든 결국 부담은 최종적으로 국민에게 나눠진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절차를 생략하면 “왜 내 돈을 경영에 실패한 대기업을 위해 쓰느냐”는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만약 대주주가 회사 돈을 몰래 빼냈거나 알짜 계열사를 따로 빼돌렸다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느 국민이 부실 처리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동의하겠는가.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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