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일본 국왕의 은퇴

기사입력 2016.09.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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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선데이뉴스=나경텍 칼럼]아키히토 일본 국왕의 퇴위 표명을 짠하게 들었다. 업무에 힘겨워하는 80대 노인의 처지가 절절했다. “몇 년 전 두 차례 외과 수술을 받았고 나이까지 들어 체력저하를 느낍니다... 역할을 할 수 없는 채로 생을 마칠 때까지 자리에 있으면... 사회가 정체되지 않을까 근심합니다.” 사후의 일도 걱정했다. 전 국왕의 장례 행사와 새 국왕 즉위 행사를 함께 치러야 하는 가족이 안 됐다고 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대목도 있다.

고령 사회에선 함께 늙어 가는 국왕이 어떻게 처신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고민했다는 부분이다. 그는 열심히 일을 챙겼다. 재난 현장에서 무릎을 꿇고 이재민의 고충을 들었다. 열대의 전적지를 찾아가 피해자와 유족을 만났다. 이것이 ‘국민 통합의 상징’인 국왕의 책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이 힘든 일을 언제까지 쇠약한 여든셋 노인에게 맡겨둘 작정이냐고 묻는다. 젊은이의 나태, 노인의 욕심. 고령 시대의 두 단면을 함께 겨냥한 경종처럼 들렸다. 아키히토 국왕은 전립선암·심장 수술 말고도 폐렴과 부정맥으로 고생했다.

치매 증상이 시작됐다는 소문도 들린다. 건강 문제로 오래전 정부에 퇴위 검토를 요청했지만 여태껏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참다 참다 이번에 결국 국민에게 호소했다. 우리는 일본 국왕이 여전히 일본인, 특히 권력자에게 절대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새장 속 새’ 같은 모습을 발견한다.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퇴위도 못하는 실상이 세상에 드러났다. 부친 히로히토 국왕이 일명 ‘인간 선언’을 발표한 게 70년 전이다. ‘짐과 국민의 관계는 천황이 현인신이라는 가공의 관념에 기초하지 않는다.’ 신격과 권력을 포기한 대신 그는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면했다.
 
국정에 얼씬 못하는 일본의 ‘상징 천황’은 이렇게 탄생했다. 아키히토 국왕은 부친이 물려준 굴레 안에서 국왕의 역할을 긍정적인 쪽으로 최대한 넓힌 인물이다. 그 동선에 몸이 못 따라가자 물러서려 하고 있다. 일본 국왕의 정치 관여는 위헌이다. 만약 현행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그가 퇴위를 표명했다면 그 자체가 평화헌법을 깨는 행위에 해당한다. ‘상징 천황’은 이렇게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아키히토 국왕의 퇴위 표명을 누가 가장 떨떠름하게 받아들일까. 평화헌법을 깨고 싶은 아베 총리일까. 그보다는 아흔 넘도록 왕관을 쓰고 있는 영국 여왕 아닐까. 70년 동안 왕좌에 앉아 있는 89세 태국 국왕도 떨떠름하지 않을까 싶다. 일왕은 2001년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속일본기」를 보면 간무 천황(재위 781~806)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었다고 밝혔다. 「속일본기」에는 790년 간무 천황이 “백제왕씨는 나의 외척”이라고 선언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어 “간무 천황의 어머니인 다카노노 니가사 황태후의 조상은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슌태 태자”이며  “따라서 황태후는 백제의 원조인 도모왕(주몽)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왕가의 뿌리가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일왕이 일왕가의 백제계설을 육성으로 확인했다”며 한·일 양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한·일의 조상이 같으니 식민지배도 괜찮다는 ‘일선동조론’과 다를 바 없다는 경계심도 터져 나왔다. 어떻든 백제인의 피가 흐른다고 고백한 일 왕가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2004년 일왕의 당숙(아사카노 마사히코)은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을 참배했다.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을 여러 차레 반성했으며, 2005년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탑을 참배하기도 했다. 일왕가의 핏속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만큼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던 아키히토 일왕이다. 아베 총리는 과도한 우경화로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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