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군명예를 훼손한 개그

기사입력 2016.10.1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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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농담과 유머는 둘 다 상대를 웃기려는 말이다. 그런데 방식은 좀 다르다. 유머는 우스운 화젯거리로 듣는 이를 유쾌하게 한다. 농담에는 가벼운 거짓과 조롱 같은 게 동원된다. 그래서 농담에는 늘 위험성이 따른다. 상대방이 농담을 받아들이고 웃어줘야 하건만 그렇지 않은 경우다.

상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정색을 하면 농담이 자신에게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방송인 김제동씨 처지가 그런 듯하다. 문제가 된 작년 7월 방송을 찾아봤다. 프로그램 주제는 ‘남자’였다. 출연자들은 우리나라 남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가를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한국 남자는 군대 경험담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별 네 개짜리 사령관 사모님을 ‘아주머니’라고 했다가 영창을 13일 다녀왔어요.” 김씨 말에 관객들이 웃었다.
 
‘불쌍한 한국 남자’라는 주제에 맞춰 들으니 웃자고 한 소리는 분명했다. 이 말이 1년 3개월 후 여당 의원을 통해 국회 국방위원회 도마에 올랐다. 김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드 반대에 앞장선 김씨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인터넷 여론은 방송된 지 1년 이상 지난 후에 문제 삼는 건 이상하다는 쪽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김씨의 영창 얘기는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개그맨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TV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 거의 대부분은 ‘아줌마라고 불렀다가 영창 갔다 왔다’는 말을 진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김씨는 한국의 대표적 ‘폴리테이너’로 뽑힌다.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 사드 반대 집회 참여 등 여러 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김씨를 보는 사람들의 입가에서 웃음기도 줄어드는 것 같다. 농담이 농담이 되지 않고 상쾌한 웃음보다 지지않으면 야유가 더 자주 들린다. 개그가 웃기는 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일상 속의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판인 이상 허위냐 사실이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개그맨이 자신이나 친한 동료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면 허위든 사실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그맨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편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에 기초했다면 풍자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지만 허위에 기초할 때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영미법에서 이것을 ‘명예훼손성 유머’라고 한다. 군이 상명하복의 조직이다 보니 일반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일이 많다.

여기서 웃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것을 말한다. 김씨는 자신의 국회 국방위국정감사 증인 채택 논란이 일자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받아쳤다. 방위가 퇴근 후 남아 회식 사회 본 것 자체가 군법위배다. 국감장에서 얘기하면 골치 아파질 것이라고 협박하듯 말했다.

웃자고 한 거짓 얘기보다 웃자고 한 얘기가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보인 태도가 더 개그맨답지 못하다. 진짜 일류 개그맨이라면 짜낸 얘기임이 드러났을 때 깨끗이 ‘미안하다’고 하지 딴지 같은 건 걸지 않았을 것이다. 군장성 등이 규정을 어기고 사적인 일에 현역병들을 동원하는 일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 안팎에서 시장보기 병사, 테니스 병사, 과외 병사 등 규정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들이 떠도는 것을 실체 없는 유언비어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최근 공개한 군장성 부인들의 파티 동영상에서도 현역병 서비스 동원이라는 일탈적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촬영된 이 동영상에서 해군참모총장 등 장성 부인들이 군 휴양소에서 파티를 하면서 참모총장 부인의 이름이 적힌 속옷을 보여주는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김의원은 “이 행사는 전액 국방예산에서 경비가 지출됐고, 현역 군인들이 뒤치다꺼리를 다했다”고 말했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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