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택 세상만사]태풍 쓰레기 치운 외국인 보면서

기사입력 2016.10.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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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제 18호 태풍 ‘차바’가 제주, 부산, 울산 등 남부지역에 많은 피해를 안겼다. 국민안전처 집계에 따르면 사망·실종 10명에 주택 600여채, 농경지 7747㏊ 등이 파손 및 침수됐고 1000대가 넘는 자동차가 물어 잠기거나 휩쓸렸다. 이번 태풍은 10월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준 체중 가운데 가장 강했다. 제주도의 경우 시간당 최고 170mm가 넘는 폭우를 기록했고, 최대 순간풍속도 역대 세 번째인 초속 56.5m에 달했다. 만조기까지 겹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워낙 짧은 시간에 닥친 강풍과 폭우인 탓에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기상청이 태풍의 경로를 너무 늦게 수정한 데다 예보도 실황중계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태풍 차바의 상황과 피해규모가 2003년 발생한 매미와 판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매미의 파도가 만조기에 접어든 경남 마산만에 들어닥치는 바람에 매립지역에 들어선 건물지하층 등에서 18명이 참변을 당했다.

이 일대는 이번 태풍에도 침수피해를 입었다. 역시 바다와 맞닿은 매립지역에 조성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방파제를 넘어선 바닷물이 휩쓸고 들어와 침수피해를 본 마린시티는 13년 전에도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 마린시티의 경우 태풍 매미 이후 1.2m 높이의 해안 방수벽을 세웠지만 효과가 없었다.

당초 6m 이상의 방수벽이 고려됐지만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해변에 초고층 빌딩을 짓고도 바다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안전을 부착적인 문제로 밀어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을 태풍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뽑는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은 강력한 태풍이 가을철까지 불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미 및 차바와 같은 초대형 태풍이 자주, 더욱 강력하게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신문 A10면에 실린 사진을 보고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는 독자가 많다. 부산 광안리 해변에 쌓인 태풍 쓰레기를 치우는 외국인 세 모녀의 모습이다. 소매 없는 셔츠 차림 엄마는 알록달록 장화를 신고 긴 갈퀴로 쓰레기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유치원생이나 됐을까 싶은 작은딸도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엄마를 거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큰딸도 갈퀴를 들고 태풍이 해변에 뿌린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주민 김은경(53)씨에 따르면 자기가 아이들에게 ‘도와줄까’ 하는 뜻을 전해봤는데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쓰레기 치우기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김씨가 볼일을 보고 한 시간 뒤 다시 같은 장소를 지나갔을 때도 세 모녀는 여전히 비지땀 흘리며 쓰레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가 동참했고 다른 한국인 엄마와 두 딸도 거들었다는 것이다. 김씨가 찍은 사진은 SNS를 통해 커지면서 잔잔하면서도 진한 울림을 주고 있다. 잠시라도 자기들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아마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을 터인데 부모가 그렇게 솔선하면 아이들도 이웃과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점을 절로 배우게 된다. 우리 시민 중에도 태풍 쓰레기 청소에 나선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광안리 세 모녀는 외국인이라서 더 눈에 띄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넓은 백사장에서 쓰레기 치우기에 먼저 나선 이는 세 모녀였다. 그들을 보면서 자기가 나서서 동네를 치우고 정리하기보다 관청에 전화해 왜 안 치우느냐고 야단친 일은 없는지 반성도 해보게 된다. 이웃이나 공무원이 내게 뭘 해주기 전에 스스로 내 할 일을 먼저 하고 나서는 사회라야 품격 갖춘 사회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고함지르고 떼쓰면서 욕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일은 거의 전부가 ‘내 것 더 내놓으라’는 것이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주장하는 악다구니에 파묻힌 세대 속에서 외국인 세 모녀의 사진들을 보니 부끄럽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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