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대외홍보와 위기대처, "누가 어떻게 하나?"

기사입력 2016.12.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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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정연태 기자]웨이신(微信) 공중계정 무춘산(木春山) 칼럼니스트는 지난 11월 28일 기고문을 통해 "누가 김정은을 위해 위기대처와 이미지 포장을 하는가?"라는 제하의 기사를 올린것으로 온바오닷컴이 보도했다.

이 기사의 컬럼에는 최근 북중관계 뉴스는 마치 과거와 같이 그리 많지 않지만 한가지 소식은 여전히 매우 뜨겁다. 바로 말하는 바에 의하면 북한이 중국에 정식으로 "매체에 '삼월반(三月半, 김씨 집안 셋째 돼지를 지칭하는 중국어인 진싼팡(金三胖)과 비슷한 말)'으로 김정은을 부르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당연히 과거의 수많은 뉴스와 마찬가지로 이 뉴스 역시 시작도 끝도 없어 진실인지 가짜인지를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삼월반'을 검색해보면 확실히 관련 검색정보를 찾을 수 없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결코 '삼월반', '이월반(二月半)'에 있지 않다. 여러분과 깊게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북한의 고위층 중 누가 김정은을 위해 이같은 위기에 대처하고 이미지를 포장하는가이다.

간단히 말하면 만약 장기간 김정은이 집권한 5년 동안의 행동궤적을 주목했다면 바로 보기에 낙후되고 폐쇄된 북한에 사실은 김정은을 위해 딱 맞춘 완벽한 '홍보 방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각국 매체의 이슈가 된다. 30세 가량 된 전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는 사실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갈수록 뜨거워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데뷔 방법

우선 5년 전 김정은이 처음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때를 얘기해보자. 필자가 보기에 김정은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이미지 홍보는 주로 3가지 단계가 있다.

첫번째 단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것은 북한의 고위급 이미지 설계 엔지니어의 전통적 포장수법이다. 실례로 지도자의 신격화, 존재감 부각, 외부조건을 이용한 생산발전 등이 있다. 이같은 수법이 더욱 많이 드러내보이는 것은 북한이라는 국가와 김씨 일가의 전체이익이다. 김정일이 세상을 떠난 후,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됐을 때 이같은 홍보 수단이 가장 두드러졌다.

2009년 6월 2일, 연합뉴스가 속보로 전한 소식은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김정일의 셋째 아들이 후계자로 확정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매체가 보편적으로 번역한 것은 '김정운(金正云)' 또는 '김정은(金正银)'이었다. 여기서 그 사람에 대해 거의 생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국제매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는 북한 관련 부문에 한가지 난제를 던져줬다. 어떻게 외부로 하여금 미래의 지도자를 분명히 이해하게 만들 것인가?

북한 사람들은 마치 그리 급해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영 언론은 어떠한 장면으로도 김정은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장기간 북한을 관찰한 중국 전문가는 "이같이 더 큰 것을 잡기 위해 일부러 놓아주는 수법은 북한 사람에게 있어 매우 숙달돼 처리하기가 쉽다"며 "목적은 각 방면의 흥미를 유발시켜 최종적으로 전파 효과를 최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9월이 되서야 북한 노동당은 34년만에 차기 대표대회를 열었고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 분명히 이 대회는 거의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기 위해 맞춰 제작한 것과 같았다.

그리고 앞서 같은해 6월, 북한 관영언론은 이례적으로 외부에 9월에 중대한 회의가 있을 것이라 예고했다. 전세계는 일찍부터 북한을 위해 해당 시기의 뉴스를 미리 남겨뒀다.

대표대회를 한지 며칠 후, 덕망이 높은 북한의 86세 원로 정치가 양형섭이 후계자 신분을 공개했고 김정은의 첫 노출은 흡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했다.

양형섭을 대표로 하는 공식부문이 입장을 밝힌 후 북한 언론은 처음으로 한자 이름으로 '김정은(金正恩)'을 사용했다. 이는 매체가 찾아낸 또 하나의 큰 파급효과가 있는 뉴스였다.

한중대 김정봉 객좌교수는 앞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김정은은 앞서 세차례나 개명했는데, 이는 통치 강화, 순조로운 후계자 계승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 교수의 증거 중 하나는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겐지가 당시 김정은을 "정운왕자(正云王子)'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이 점차 후계자로 보여진 후 북한은 더욱 진지하게 그의 이름을 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까닭에 '은(银)'자로 개명을 고려했다. 아마도 '은(银)' 자가 '운(云)'자보다 반짝반짝 빛난다는 뜻이 분명해 권력을 강화하는데 유리하다고 여겨졌기 떄문이다.

설에 따르면 2008년 김정일이 급성뇌출혈로 사망한 시기 이름은 '정은(正银)'으로 개명했다. 후계자 계승이 확정된 후 북한은 중국어 번역을 최종적으로 '정은(正恩)'으로 확정했다. 아마도 북한 사람들이 연상하기에 김일성에게 감사해한다는 의미가 연상되기 떄문일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고심 끝에 할아버지의 복장과 머리스타일을 모방하는 홍보수단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김정일이 재킷을 입는 것을 선호하는 것과는 다르다. 김정은은 공개석상에 나타날 때 거의 남색의 북한식 정장을 입는데 이는 김일성의 기호와 동일하다.

일본 언론은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을 비교해보니 역시 김일성과 아주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으며 한국 언론은 심지어 김정은의 10세 때 사진을 공개했는데 어렸을 때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의 차이가 커서 아마도 성형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목적은 당연히 할아버지와 비슷해지기 위해서이다. 북한은 김씨 일가를 계속해서 신격화하기 위해 합법적 통치의 이유를 찾는다.

영국 언론은 이전에 김정은의 이미지에 대해 "의심의 여지 없이 이는 공식 부문이 정성을 들여 기획한 결과"라며 "어느 누구도 30세도 되지 않은 아이가 스스로를 보기에 노티가 나도록 분장할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같은 홍보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진행되고 있다. 만약 북한의 상점에 가서 기념품을 구입한다면 김정은을 소개한 수많은 서적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김정은의 홍보전단지에는 미국 AP통신의 "(김정은과 김일성은) 매우 닮았다!"는 보도를 인용하기도 했다.

외국인의 입을 빌려 얘기한 것은 북한이 분명 김정은이 김일성과 같은 이미지라는 것이 전세계에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신분이 노출된 후 김정은의 국제적 홍보 스케줄도 언급됐다. 북한의 국제적 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떄문에 서방 국가와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중국 측에서부터 착수해 김정은을 홍보하는 것이 아마도 더욱 편리했을 것이다.

외부세계는 양형섭이 '비밀'을 공개한 시기에 주목했다. 당시는 중국 공산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였다. 관례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의 명의로 북한에 선물을 보냈는데 사기접시 하나가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사기접시에 새겨진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泽东)이 친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림 때문이 아니라 접시 위에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金正银) 동지에게 선사한다. 북한 노동당 창립 65주년을 열렬히 축하하며 북중 우의가 지속적으로 공고히 발전돼 대대로 전해지길 축원한다"는 글이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이같은 방식으로 김정은이 후계자 지위에 대해 승인했음을 표현한 것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외에도 선물은 중국이 이미 준비한 것으로 북한이 김정은이 후계자임을 중국 측에 미리 알렸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중국 공산당은 김정은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그의 이름이 이전의 번역한 이름으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시 중국 대표단의 북한 방문을 빌어 김정은은 처음으로 외교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대표단을 환영하는 고위급 관료 행렬 중 서 있었을 뿐 아니라 중국 친구들과도 미소를 지으며 악수하는데 약간의 어색함도 드러내지 않았다.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성대한 열병식에서는 김정은과 부친처럼 곁을 떠나지 않고 때때로 무대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었으며 어쩔 때는 경청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보기에 행동거지가 신분에 걸맞았고 결코 어색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언론은 한 기사에서 "김정은의 데뷔는 80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같은 공연은 전세계에 북한 권력이 암암리에 교체했음을 보여주는 의식이었다. 북한의 '홍보팀'은 김정은과 중국인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택했고 선물을 증정하는 것보다 공개적이고 분명하게 중국의 지지를 이미 얻었음을 보여줬다.

이는 당시 2차례의 핵실험을 진행했고 국제적 환경과 경제발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북한에게 있어 상징적 의미와 실제적 의미는 매우 중요했다. 열병식을 지켜보는 것만 해도 더욱 권위있게 보일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이 참가한 대형활동에 참석하는 게 세상물정 경험을 더욱 쌓을 수 있다.

은신보다 시찰

김정은의 이미지 홍보의 두번째 단계는 '친민(亲民)'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후 현재까지의 4년새 이같은 선전은 북한 공식부문의 김정은 홍보에 있어 하나의 근간이었다.

부친이 사망한 후 김정은은 자신의 활동권한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외부세계가 본 가장 두드러진 활동은 바로 김정은이 각지를 빈번하게 돌아다니며 시찰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직접 느끼는 것은 김정은의 모든 시찰 지점과 범위가 이전 지도자들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그 안에 은연중 내포한 정치적 의미 역시 마치 의미심장함을 더욱 더한 듯 하다.

시찰은 이미 김정은 이미지 홍보와 선전의 기본적 요소가 됐다. 실례로 2011년 김정은이 인민군 제534부대 승마장을 시찰하던 중 스스로 말을 타고 질주했다. 이같은 이미지는 북한 매체에 의해 외부에 공개됐고 광범위한 주목을 불러 일으켰다.

말은 북한에서 일정한 정치적 상징적 의미를 지닌 동물이다. 실례로 북한의 경제건설은 '천리마건설'로 표현되며 평양 거리에는 천리마 조각상이 있기까지 하다. 김일성 본인이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은 북한 사람이 모두 다 알아 거의 한 시대의 생생한 기억이 됐다.

그런 까닭에 김일성과 생김새가 비슷한 김정은이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은 적지 않은 북한인에게 세월이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한국 언론도 자연스레 말의 비밀을 알게 됐고 이같은 부분을 기사화한 후 김정은의 뉴스는 당연히 여러 매체에 의해 주목받았다.

김정은은 당연히 외부여론 상황을 매우 주목하고 있고 심지어 일정한 정도에서는 외신의 북한문제에 대한 보도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이러한 잔꾀가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도 흔히 있었던 일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은 수많은 중대한 공개활동에 대해 거들떠보지도 않아 한국, 일본 언론이 종종 북한 정권에 변고가 있다고 추측하기까지에 이를 정도였지만 김정일은 그 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유언비어가 스스로 없어지도록 했다.

김정은은 북한의 이같은 보기에 '성숙한' 홍보방식을 계승했다. 실례로 지난 2014년 9월 김정은은 다리 질환 때문에 40일 동안 은신해 외부세계가 심지어 권력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고 추측하게 만들었다. 전세계 언론이 부풀려 보도하느라 눈코뜰새 없을 때 지팡이를 짚은채 웃고 있는 김정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북한 관영 언론에 게재됐다.

북한 고위급 관료는 이같은 분명하지 않은 순간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다시 활동을 재개해 외부세계가 깜짝 놀라면 그 때 자유자재로 정세를 장악하고 있다 만족감을 느꼈다. 북한의 노출율은 자연스레 그에 따라 제고된다.

문장으로 활동 세부묘사

김정은이 외부여론의 흐름을 장악하고 있다는 또 다른 사례는 김정은의 북중관계 태도를 면밀히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재임 5년동안 김정은은 시종일관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고 외부세계는 북중관계에 대해 변화가 생겼다는 의문이 시종일관 존재했다.

필자는 2011년 김정은이 막 후계자가 됐을 때 누군가 선조를 본받아 빠른 시일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 추측한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분명 1년 동안 중국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고 때문에 각종 해석과 추측이 나타났다.

관련 해석이 난무하던 시기인 2012년 7월 북한 능라인민유락원이 준공됐고 김정은은 일부러 주중북한대사관 류훙차이(刘洪才) 대사와 함께 롤러코스터를 탔다. 류훙차이 대사는 김정은과 그의 고모인 김경희 사이에 앉았고 롤러코스터 열차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김정은과 류훙차이 대사는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같은 장면은 북한 관영언론을 통해 외부에 공개돼 김정은이 유학원을 시찰해 대중과 가깝다는 일면을 보여줬는데, 당연히 북중관계가 냉담하다는 소문을 반박하는 의미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능라인민유학원을 시찰할 때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李雪主)가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났대. 최고지도자 부부는 일말의 회피도 없이 활동에 참가했고 이는 수십년간의 북한 정치생활 중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해낸 것이다. 보기에 그저 그렇고 간단한 유락원 시찰 뉴스는 놀랍게도 이같이 처음이고 신기한 부분이 많았다. 북한이 느끼기에 신선했을 뿐 아니라 외부 매체는 더더욱 우르르 몰려가 보도했다.

북한 측은 중국 대사와 리설주가 함께 있는 사진을 두드러지게 내보였다. 이는 김정은과 북한이 무료로 이미지광고를 게재한 것과 같다. 그리고 북한 공식부문은 이번 홍보 기획을 통해 김정은의 행동박식과 외교수단이 더 많은 인정을 받게끔 했다.

외부에서 잘 알고 있는 미국의 농구스타 로드맨이 북한에 온 것은 거의 친척집에 온 것 같았다. 로드맨과 김정은이 농구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사진 역시 김정은에게 국제적 안목이 있음을 충족시켜줬다. 스포츠매체조차도 앞다퉈 관련 뉴스를 보도했다.

이외에도 김정일 시대에 북한 관료시스템에서 달아난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시대에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다. 그는 화면 앞에서 목 놓아 김정은을 찬미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열어보지 않아도 될 뉴스를 보게 만들었다. 김정은이 도대체 어떤 흡입력이 있어서 모두로 하여금 그와 가까이 하는지 말이다.

큰일로 주목끌다

정권이 안정된 후 김정은은 철저한 '자주통치시대'를 시작하고 '유일영도체제'를 조성하는데 주력했다. 이 부분이 북한 공식부문이 김정은 이미지 포장을 하는 제3단계인 '존엄 세우기'이다.

실례는 여전히 2년전 다리 부위에 질환이 생겼을 때인데, 병세를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이같은 홍보의 본보기임을 가장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치는 매우 간단하다. 몸을 숨긴 채로 북한 정국을 지배하는 것이 김정은이 북한에서 독단전횡하고 있음을 더더욱 설명해준다.

상대방이 방심한 틈을 타서 행동을 취하는 것은 북한 지도자 홍보에 있어 가장 높은 기교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난 2011년 12월 17일, 김정은이 사망한 후 북한 고위층 8명이 운구했던 것을 기억한다. 김정은이 운구차 오른쪽 첫번째 앞에 서 있었던 것 외에도 좌측에 함께 서 있던 사람은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였다. 어느 누구도 짐작치 못했던 것은 군대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리영호가 6개월 후에 공식부문의 '건강문제'로 인해 모든 직무에서 해임된 것이다. 한국 언론은 심지어 리영호가 최종적으로 반당(反党), 반혁명분자로 최종 규정됐고 마지막 행적은 모른다.

김정은이 리영호를 굴복시킨 것은 분명 군권을 장악하고 권위를 세우기 위한 절차이다. 이는 북한 정국을 주목하는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이 사건과 비슷하지만 영향력이 더욱 컸고 해외 언론이 쓸데없이 장황하게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던 것은 2013년 12월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섭정왕으로 불렸던 장성택이 갑자기 체포됐고 일주일도 안돼 처단된 것이다.

장성택의 전투구역을 취하는 과정 중 외부 역시 김정은이 병에 걸렸거나 북한에 정변이 발생했다와 비슷한 추측이 있었고 유언비어가 도처에 가득했다. 하지만 김정은 스스로 체포대회에 나타난 사진으로 외부의 의혹을 불식시켰다.

이후 최룡해 등을 포함한 군대 고위급 직위의 빈번한 조정은 여전히 북한 공식부문이 김정은의 권위를 세우는 맥락과 논리에 부합했다. 매번 돌발적으로 고위층의 변동이 생길 때마다 북한 뉴스는 며칠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북한은 이같은 갑작스런 인사변동 방식을 사용해 외부의 북한 보도 방식과 내용 형식을 객관적으로 주도해왔다.

일부 한국 전문가는 김정은이 마음대로 인사변동을 안배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 외에도 자신에 대한 이미지 홍보에서도 고심을 다해 권위가 더할 수 없이 높다는 일면을 보인 것을 주목했다.

김정은이 수많은 시찰 장면에서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는 것이 이미 상징이 됐다. 이같은 패기만만함을 드러낸 자태는 자리에 있던 그보다 나이 많은 관료 또는 일반백성을 완전히 신경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줬다.

한국 기자는 앞서 필자에게 "이들 민족에게 있어 연장자를 존중하는게 전통이고 설령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연장자에 대해 겸손하고 온화하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흡연 사진은 비록 그가 북한에서 독단전횡하는 절대적 주도지위에 있음을 보여주지만 종종 연장자들에게는 불쾌함을 느끼게 한다. 권력은 고려했고 도덕은 잃었다.

이외에도 북한 뉴스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의 주목을 끈 것은 중국 언론이 2014년 김정은의 시찰 사진을 한동안 뜨겁게 다뤘다. 바로 완공되지 않은 병원 공사현장에 비가 내리고 있는데 김정은 한 사람만 우산을 쓰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푹 젖은 상태로 멍하게 서서 김정은이 기뻐 어쩔줄 모르는 듯한 훈화를 듣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 장면이 보여준 정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내 권력은 내가 책임지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누가 감독인가

사실대로 말하면 이같은 많은 예를 들었는데, 누가 김정은의 이같은 이미지 포장 보도와 위기대처 기획을 조종했는지 아마도 어느 누구도 정말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부 공개된 흔적을 분석해보면 김정은 이미지의 '지혜주머니'는 최소한 노동당 중앙서기인 김기남, 최룡해, 리수용과 총정치국장 황병서 및 김씨 형제자매는 포함됐다.

김기남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인 김영남이 동생이다. 김일성 시대였던 1966년, 그는 북한 선전부 부부장이 됐고 김정일 시대의 홍보도 거의 책임졌다. 비록 현재에 이르러서는 고령이지만 대남 사무를 책임지고 있고 기본적인 북한 홍보는 김기남이 애초에 구축한 프레임을 여전히 따르고 있다.

최룡해는 김정은의 심복이다. 김정은이 리영호의 안정적은 군대를 취하는데 협조한 후에는 오랫동안 해 왔던 본래 직업으로 되돌아왔다. 비록 수년간 몇차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이는 김정은이 그를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약간은 덩샤오핑(邓小平)을 닮았다. 특히 최룡해는 당 업무 중 거의 매번 김정은 시찰에 동행한 까닭에 홍보 업무와 연관돼 있을 것이다.

리수용이 장기적으로 섭외업무를 주관해왔는데 이 중에는 당연히 그의 일부 공로도 있다.

김씨 형제자매는 자연스레 김정은이 신뢰하는 도우미가 됐다. 이 중에는 둘째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과 배다른 여동생인 김설송이 포함됐다. 이 중 김여정, 김설송은 능력이 더욱 큰 것 같다.

김여정(金与正), 누군가는 김여정(金汝静)으로 부르는 여성은 매우 신비한 인물이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식부문에서도 대규모로 선전한 적이 없다. 설에 따르면 오늘날 2인자이자 총정치국 국장인 황병서는 김정은의 정치적 비서이며 김여정은 생활비서로 김정은이 누구와 만날지나 어디로 시찰갈 것인지를 책임진다.

외부에서는 앞서 김설송이 김정일과 둘째 부인인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김정일의 시찰업무를 장기적으로 책임져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국 언론은 김설송이 당의 조직지도부, 중앙선전부 등에서 경험을 쌓은 바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이 사망한 후에는 김정은의 홍보업무를 이어받아 관리하긴 했지만 최근 2년간은 더 많은 보도는 없었다.

이외에 최휘, 김병호 등 중앙선전부 부부장이 포함된 고위급 홍보관료 역시 김정은이 집권 5년간 미친듯한 존재감을 내보이는데 적지 않은 힘을 썼다. 당시 김병호는 북한 중앙통신사 사장을 역임하며 대외교류 경험 역시 풍부했다. 그런 까닭에 김정은 이미지 홍보팀의 일원이 됐고 심지어 고문 및 지혜주머니가 된 것도 그리 의외는 아니다.

[정연태 기자 balbari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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