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불평등한 사회

기사입력 2017.01.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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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신분사회를 상징하는 ‘수저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란 서양 속담의 산물이다. 1700년 이전까지 사람들은 개인 수저를 들고 다니며 밥을 먹었다. 은수저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멤버십의 표현쯤으로 치부했다. 1969년 미국의 록밴드 CCR이 발표한 ‘Fortunate son’의 기사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금수저 흙수저’를 연상시킨다.
 
‘어떤 이는 은수저를 들고 태어나지… 난 아니야. 백만장자의 아들 아니야. 장군의 아들 아니야. 상원의원의 아들 아니야. 신의 아들 아니야.’ 행운아 혹은 신의 아들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작사·작곡가인 존 포거티는 1968년 드와이르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손자와 리처드 닉슨의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화가 벌컥 나 ‘난 아니야’를 외치며 20분 만에 곡을 만들었습니다.” 절대다수의 젊은이는 싸움터에 몰아넣고 상류층의 자식, 즉 신의 아들은 호의호식하는 꼴을 통렬하게 꼬집은 것이다. 반전문화의 아이콘이 된 이 곡은 잡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500대 명반’ 중 99위에 랭크됐다.

1988년 앤 리처즈 텍사스주 재무장관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를 겨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가련한 부시! 말릴 수 없어요. 은발(은수저의 다른 표현)을 입에 물고 태어났거든요” 리처즈는 부시가 명문가 출신이지만 보고 배운 게 없어 멍청한 실수만 연발한다고 풍자한 것이다. 그런 서양의 은수저가 한국에서 금수저로 바뀌었다.

그것도 모자라 소득 상위 1%는 금수저, 3%는 은수저, 7.5%는 동수저, 그 이하는 흙수저로 세분화됐다. 심지어 똥수저 계급도 있단다. 한국 사회가 역전불허의 ‘넘사벽’ 신분사회로 세분화·고착화했음을 웅변해준다. 아직 국립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니 신조어가 틀림없다. 최근에는 ‘금수저’가 전통적인 돌선물인 금반지를 앞섰다고 한다.
 
이유가 실소를 자아낸다. 어차피 못난 부모를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아기 아닌가! 그러나 돌잔치에서라도 금수저를 물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금수저’가 아닌 ‘돌수저’를 물린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아이는 알까! 모두가 고루 잘사는 세상을 기원하는 그 마음. 국내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아르바이트·단시간일자리 등은 청년층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낮은 임금, 낮은 고용의 질, 낮은 삶의 질 등은 청년층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가 돼 버렸다. 소득양극화와 취업난,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은 ‘N포 세대’가 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청년세대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 하위 20%의 한 달 소득은 80만 7000원으로 집계됐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탓이다.

한때 저소득 청년층을 일컫던 ‘88만원 세대’가 ‘77만원 세대’로 대체될 시점이 머지않은 것이다. 청년 가구의 소득불령등도 심화돼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연평균 소득 격차는 9.56배에 달했다. 가계 빚도 2년 새 900만원 넘게 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대 청년층 2명 중 1명꼴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고 체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가구의 경제난은 출산율 하락과 맞물리면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청년세대가 꿈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라의 미래는 기대할 게 없다. 청년세대가 광장에서 촛불을 든 것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보려는 간절함 때문이란 것을 정부와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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