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통령 풍자 누드 정치 극단

기사입력 2017.02.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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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1865년 5월 파리. 왕립 아카데미의 살롱전에서 한 장의 누드화를 둘러싼 소동이 빚어졌다. 날마다 몰려든 관객들이 서로 밀치고 난리법석을 벌이게 만든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지금은 주제와 기법 면에서 현대회화의 시작을 알린 걸작으로 꼽히지만 그 당시 뜨거운 열기는 대중과 경단의 부정적 반응에서 비롯됐다.
 
‘올랭피아’는 화가 티치아노의 ‘우루비노의 비너스(1538)’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마네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나신의 주인공을 비너스에서 19세기 파리의 전형적 매춘 여성으로 바꿔치기했다. 고전 회화의 이상형 나체와는 전혀 다른 도발적 누드, 게다가 홀딱 벗은 여인이 민망할 정도로 관객을 뻔히 응시한다는 점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마네의 명작이 한국에서 때 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발단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시국비판 풍자전시회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그림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나체에 주사기를 든 최순실과 세월호가 등장한 ‘더러운 잠’을 선보였다.
 
‘반여성적’, ‘인격살인’이란 논란에 이어 그림을 훼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의 일탈에 혀를 찼다. 세간의 싸늘한 여론에 민주당은 표 의원에 대해 윤리심판원 회부를 결정했다. 표 의원은 작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의 ‘1호 영입인사’를 입당해 ‘문재인 키즈’로 불린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건 성폭력 수준”이라며 “문재인 대표가 표 의원에게 쓴소리 한마디 한다면 인기 많이 올라갈 겁니다”라고 썼다.
 
마침 문 전 대표는 “작품은 예술가의 자유이고 존중돼야 하지만 그 작품이 국회에서 정치인 주최로 전시된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문 전 대표에게 박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씨의 말은 꽤나 아플 것 같다. 표 의원이 자신의 박 대통령 풍자 누드화 국회 전시를 주신해 파문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많은 분이 마음 상하고 특히 여성분들이 많은 상처를 입은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의원직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그것은 과한 요구”라고 거부했다.

이 파문을 그냥 나뒀다가는 걷잡을 수 없다고 본 민주당 측이 사과를 강권하다시피 했다 한다. 비슷한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찬반이 갈렸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헌정 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성적 대상화나 여성 혐오로 표현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인격 비하, 여성 비하, 저질적 성희롱 행위로 국격을 추락시킨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표 의원이 SNS에 올린 입장문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예술의 자유도 아니다”고 했다.

진보, 보수를 떠나 같은 목소리였다. 지금 정국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민주당과 문 전 대표의 압승을 예고하는 듯하지만 그 밑에는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찬반 세력의 대립이 위험할 정도로 심각하다. 지금까지는 몇몇 불상사 외엔 평화를 지키고 있으나 실제 탄핵 결과가 나오면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쪽이든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쪽이 조용히 순응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지금은 모두가 헌정 위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작은 불씨로도 초가삼간을 태울 수 있다. 이러한 때에 튀는 행동을 하는 한 경솔한 정치인과 예술을 빙자해 저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결코 작지 않은 불씨를 던졌다.

순식간에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탄핵 결과가 나오면 벌어질 사태를 더 증폭시킬 불씨다. 지금 박 대통령은 한때의 권력이었으나 이제는 바닥에 쓰러져 아무나 밝고 지나가는 대상이 돼 있다. 반면 민주당은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는 중이다. 모든 공무원이 눈치를 보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 지나치면 큰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사의 이치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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