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국제정치보다 힘든 한국정치판

기사입력 2017.02.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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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전격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성 정치권의 편협한 이기주의에 실망했다”며 대선 레이스 하차를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 활동을 마치고 금의환향한 뒤 20일 만에 현실정치의 벽 앞에서 좌절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첫 국제기구 수장이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유력 대선주자로 출발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의 모습만 보여주고 짧은 정치 역정을 접었다.

외교전문가 반기문의 실패는 국민들과 함께 부대끼며 성장하지 않은 정치인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명했다. 반 전 총장은 우선 정당정치를 간과했다. 유권자들의 요구를 수렴해 정당 간 타협과 경쟁을 통해 다듬은 뒤 입법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선거로 피드백하는 정치 과정 어느 것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사퇴하면서도 “정치는 정치꾼이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정치 자체를 원망했다. 다른 분야에서 쌓은 식견으로 정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그의 실패는 당연했다고 봐야 한다.

정치 콘텐츠도 부실했다. 정치 교체와 대통합을 외쳤지만 정치 현실에 대한 인신과 관점이 결여돼 있었다. 충청지역 정세에 기대는 모습도 구태로 비쳤다. 비전 제시는 없이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을 정치로 잘못 이해했다. 반 전 총장은 검증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은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 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저 개인과 가족의 명예에 상처를 남겼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검증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반 전 총장은 동생과 조카가 국제적 뇌물사건으로 기소됐음에도 모른다고만 했다. 검증을 회피한 채 인격 살인 운운한 것은 국민과 정치를 우습게 본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지금 박근혜 정권에 실망하고 분노한 민심을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는 정치 지형 자체에 있다.

반 전 총장은 이 흐름을 돌릴만한 비상한 결단과 지도자 자질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반 전 총장 불출마로 보수 진영에는 다시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야권은 절대 우세에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압도적 선두인 가운데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의 지지율을 합하면 60% 안팎이다. 이 와중에 벌어진 반 전 총장 사퇴로 보수 정치는 사실상 진공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보수층이 처음 처한 상황이다. 1992년 이후 대선에서 1, 2위를 다투던 보수 후보 득표율이 40% 밑으로 내려간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대선 국면에서는 반 전 총장 등 보수 주자 지지율을 다 합해도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출마 여부도 모르는 황교안 국무총리 지지율까지 합해서다. 수백만 국민이 대선에서 자신을 대표할 사람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은 선거 향배를 떠나 사회적으로 비정상이고 위험한 상황이다.
 
선거는 국민의 이해와 요구가 분출되고 해소되는 장이기도 하다. 선거가 출구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출구를 찾게 된다. 지금 보수 진영에선 바른정당 소속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가 있고, 여기에 만약 황 총리가 가세한다면 이 3인의 삼각 구도가 형성된다. 대선 국면에서조차 친박과 비박후보가 또다시 경쟁하는 모양새다. ‘절반에 가까운 보수층 표심을 담아낼 방안을 찾으라’는 요구가 비등할 테지만 여야 사이보다 더 멀다는 양측이 손을 잡을지는 미지수다.
 
끝내 따로 간다면 보수 정치는 완전히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짧게는 석 달밖에 남지 않았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번 대선이 순조롭게 치러질 수 있느냐는 민주당에 달렸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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