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짜 등록금 유혹

기사입력 2017.03.1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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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경택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연구실 없어 떠도는 유령 교수가 많다. 교실이 좁아 시험 때면 다른 곳에서 의자를 가져와야 한다. 도서관은 휴일엔 문 닫고 평일에도 10시간 연다.

2006년 뉴옥타임스에 실린 파리 10대학 낭테르캠퍼스 풍경이다. 신문은 이 대학이 재정 부족에다 조직도 엉망이며 변화마저 거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르본 대학에서는 지우개가 없어 대걸레로 칠판을 지운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 1968년 학생혁명 이후 학비가 거의 무료가 되면서 달라져 간 프랑스 대학 풍경이다. 한국에서 대학등록금이 정치권 이슈가 된 것은 5~6년 전이다. 1년에 1000만원 학비로 서민은 물론 중산층 가정도 휘청했다.

OECD 통계로 한국 시립대 등록금은 미국 대학에 이어 둘째로 비싸다. 빚내고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는 청년들이 대거 생겨났다. 때맞춰 정부와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국내 350여개 대학(전문대 포함)의 한 해 등록금 규모가 14조원이다. 그 절반인 7조원을 나라와 대학이 부담하겠다는 게 정부 ‘반값 등록금’ 개념이다. 지난해 그 정책이 완성됐다. 정부가 4조원, 대학에서 3조원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들이 “힘들다”고 난리다.

반값 등록금에 돈을 쏟아부으니 정작 필요한 곳에 쓸 돈이 없다고 한다. 40명 듣던 수업을 120명 대형 강의로 바꾸고, 실험·실습장비 구입을 올스톱한 학교도 있다. 한 대학 총장이 한숨을 쉰다. “요즘 대학은 건물만 멀쩡히 있는 ‘하우스 푸어’예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 하겠다고 했다.

2011년 시장 선거 때 그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걸었다. 당연히 학생들이 반길 것으로 봤는데 꼭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 대학 총학생회가 설문 조사를 하고 있는데 ‘무상 등록금’ 반대가 찬성보다 많다고 한다. 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으로 대형 강의가 많아지면서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졌다”고 불만을 말한다.

반값·무상은 선거철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단골 메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또 비슷한 공약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에 브레이크를 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 질 떨어지는데 공짜·반값 해서 뭐하겠느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꼭 등록금 정책만 그럴까. 급식·의료·보육·주택… 최근 몇 년 새 예산 쏟아 부어 급조된 정책들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참에 ‘반값’, ‘무상’을 갖다 붙인 모든 정책을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박 시장은 취임 이듬해인 2012년부터 사립대에 반값 등록금을 도입해 5년째 시행하고 있다. 그는 “이제 온전한 대학은 무상교육을 고민하고 있다”고 운을 땠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동안 시간강사가 571명에서 408명으로 줄고 100명 넘게 수강하는 대형 강의는 59개에서 112개로 늘어났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잘 정착됐다고 여긴 반값 등록금이 교육 여건의 부실을 부른 것을 박 시장만 몰랐던 셈이다. 선진국 대학들은 적극적인 투자로 연구 역량을 높이고 가상현실이나 인공지능, 첨단로봇 같은 신성장동력 분야의 창업가를 길러내고 있다. 그런데 시립대 학생들은 듣고 싶은 과목이 개설되지 않아 낭패를 보고 전국 국공립대 43개교 중 42위인 기숙사 수용률도 몇 해째 개선되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

자체 연구비도 3년간 40%나 줄어 교수들까지 걱정하는 실정이다. 교육 여건을 더 생각하는 학생들이 포퓰리즘만 아는 서울시장보다 더 현명해 보인다. 박 시장은 대학 무상교육을 시작하면 모든 국공립대가 따라오고 일부 사립대에까지 파급될 것이라며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없게 대학의 숨통을 조여 놓고 급변하는 사회로 학생을 내보내는 것은 꿈과 거리가 먼 무책임한 일이다. 학생들한테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원리를 박 시장은 물론이고 모든 정치인이 배워야 한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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