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

기사입력 2009.04.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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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날까지 150만원을 못 갚으면 내 몸을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21세 처녀가 지하철역에서 받은 ‘금전대출’ 명함을 보고 찾아오자 사채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내밀었다. 직장도 신용도 없으니 서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월 100% 이자를 물기로 하고 두 달간 150만원을 빌렸다. 돈을 못 갚자 사채업자는 각서를 들이대며 그녀를 충청도 티켓다방에 넘겼다. 몇 년 전 붙잡힌 사채업자의 악랄한 행각이다. 악덕 사채업자들은 공무원, 공기업 직원, 군인을 좋은 먹잇감으로 꼽는다. 신분이 확실해 고리를 뜯기 좋고 폭력을 휘둘러도 직장 잃을까봐 신고도 못한다. 특히 여성들은 ‘걸어다니는 담보’라 부른다. 유흥업소로 보내면 바로 ‘환전’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여대생들은 친구 부탁에 보증을 서줬다가 함께 빚을 떠안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채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 되는 것은 이자가 비싼 탓도 있지만 ‘적기재대출’ 탓이 크다. 지난해 서울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주인은 사채업자에게 100일간 매일 12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는 조건으로 선이자 50만원을 떼이고 950만원을 빌렸다. 이자를 못 갚자 사채업자는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다시 빌려주는 꺽기를 6차례 거듭해 1년 만에 빛을 7000만원으로 불려놓았다. 업자는 담보로 잡은 집까지 경매에 넘겼다. 작년 11월 50대 아버지가 유흥업소에서 몸을 팔던 대학생 딸을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딸이 인터넷 쇼핑몰을 한다며 제작년 서울의 한 사채업자에게 30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빚은 ‘꺽기’를 거쳐 1년새 7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업자는 이 여대생을 룸살롱으로 보내 마담과 짜고 하루 세 차례까지 성매매를 강요했다. 경찰이 이들을 붙잡고 보니 212명에게 한 해 680%까지 붙여 빨아낸 이자만 33억 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엔 등록 불법 대부업체 2만 3000여 곳이 모두 10조원을 대출해놓은 것으로 집계돼 있다. 성인 20명에 한 명꼴인 189만 명으로 평균 529만원씩 빚을 떠안고 있다. 대부업체 이자의 법적 상한은 49% 이지만 악덕 사채업자들은 살점을 도려내겠다고 덤비는 ‘베니스의 상인’ 뺨친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과 친구의 연락처를 모두 확보하거나, 피해자들의 주민등록증과 사진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협박에 이용했다. 사채 금리는 대부업체의 지방자치단체 등록 여부에 따라 각기 다른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동록 대부업체의 최고 이자율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및 시행령에 따라 연리 49%다. 미등록 대부업체는 이자제한법 및 시행령에 따라 33%가 이자율 상한선이다. 빚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행위도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법적상한을 훨씬 넘는 고금리 사채가 횡행하고 빚을 돌려받는 과정에서는 불법, 탈법행위가 채무자의 숨통을 조인다. 사채 피해자들은 돈을 빌려 쓴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해 협박을 당하면서도 당국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혼자 고민할수록 악덕 사채업자가 만들어놓은 ‘늪’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 더 큰 비극을 부른다. 불법계약은 그 자체가 무효다. 법정 상한을 넘은 사채 이자도 갚을 필요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이용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강요할 경우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행정당국은 법의 그늘에 숨어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질 사채업자들의 실태 파악부터 서둘러야 한다. 서민을 울리는 불법 고리 사채업자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나경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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