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는가?

기사입력 2017.08.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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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의 죽은 김정일 시대,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희극 공연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덴마크 공영방송 DR-TV 소속 언론인 매츠 브루거가 북한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 “50년 이상 사상을 통제당하고 검열당해선지 북한 사람들의 유머와 희극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덴마크 코미디언(한국계) 2명과 함께 북한 공연에 나섰던 그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독재 체제와 사상 통제가 풍자 수준까지 간, (북한은) 한마디로 끔찍한 곳”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는 것입니다.

또 그는 북한 주민의 웃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서양 사람한테 우스운 게 북한 주민에게는 우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굉장히 우스운 내용이었고, 대사를 거의 안 쓰는 연극이어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라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는 “방북을 통해 북한에서 웃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면서 “희극 공연 내용이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이념적인 것도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더니 의외로 쉽게 허가해줘서 놀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더 재미있는 것은 두 명의 코미디언 중 1명은 장애인이었는데도 방북을 허가해 줬다”면서 “하지만 장애인이 (북한) 관객 앞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게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았다. 장애인인 우리 희극 배우가 정상인인 것처럼 위장하고 장애인인 것처럼 연기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브루거의 말을 종합해 보면 북한에는 진정한 희극이 존재할 수 없고, 북한 사람들은 웃음을 잃은 지 오래라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 “방북을 통해 북한에서 웃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면, 공연을 허가해 준 관리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독재국가에도 희극이 존재하고, 그 나라의 다수 국민들은 희극을 관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주체사상’이라는 틀 속에서라도 북한의 희극은 존재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희극’은?

북한의 연극예술 속에도 비극과 희극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북한의 문예 이론서 <문학예술의 종류와 형태>를 보면, “연극이 장막극, 중막극, 단막극으로 구분되고 단막극이 토막극, 사이극, 촌극 등으로 더 세분되며 생활내용의 정서적 색갈에 따라 구분된 정극, 희극, 비극이 장막정극, 중막정극, 단막정극, 장막희극, 중막희극, 단막희극, 장막비극, 중막비극, 단막비극 등으로 세분”합니다.

 

또 <문학예술의 종류와 형태>에는 “작품에 반영되는 생활내용의 특성에 따라 구분된 희곡의 기본종류인 정극과 희극, 비극은 또한 거기에 반영되는 생활의 정서적색갈에 따라 더 구체화된 형태와 양상으로 구분된다. 정극은 선동극과 심리극으로 구분하고 희극을 경희극과 풍자극으로 구분하고 비극을 전통적비극과 혁명적비극으로 구분하며 거기에서 구분된 풍자극과 경희극, 전통적비극과 혁명적비극을 더 세분화된 극형태로 구분하게 되는것은 극적묘사방식에 다양한 활용과 함께 반영되는 생활내용의 성격적 특성, 미학적성질과 중요하게 관련된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북한에도 희극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서두(序頭)에서 말한 “50년 이상 사상을 통제당하고 검열당해선지 북한 사람들의 유머와 희극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는 말이 현실감이 나는 것이 김정일 시대의 북한 실상이었습니다.  2002년 북한의 2.16예술교육출판사가 펴낸 <대화첩 주체예술의 위대한 년륜>은 김정일 우상화을 위한 ‘선전선동’ 책자입니다. 그 책 158쪽에 “영화예술인들의 경희극”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김정일이 영화인들과 한 담화, 즉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을 조직할데 대하여” 등(等)과 <경희극 편지>의 사진들 입니다. 이 경희극은 영화인들의 ‘거짓 희극’ 무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과연 ‘진정한 희극’이 존재했을까요? 백성들에게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悲劇)’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지금의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 TV에서 보는 어린이들의 미소(微笑)와 북한 희극은 무관합니다. 문화예술의 문외한(門外漢)인 김정은이 ’희극‘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북한 사회에는 칠흑(漆黑)같은 ‘암흑 속 희극’이 존재할 뿐입니다. 미래의 북녘 땅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기를 빌어봅니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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