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먹는 죄의식 ‘사회주의’

기사입력 2009.06.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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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령님께서 그토록 소원하시던 이밥(쌀밥)에 고깃국 먹는 세상이 장군님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지난 1월 2일 북한 양강 혜산서 노동당 간부 강연회에서 당 선전비서가 한 말이다. 이밥에 고깃국은 1950년대 천리마운동이 한창일 때 김일성이 ‘살기 좋은 사회주의 세상’의 상징으로 내걸었던 말이다.

그 낡은 구호를 50년 지난 지금도 당 간부가 버젓이 들먹이는 게 북한 실정이다.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굶어 죽는 것을 직접 봤다”는 탈북자가 58%나 된다. 2007년 한반도평화연구원 조사를 보면 7년 이상 한국에 사는 탈북자의 월평균 소득은 2001년 50만원에서 2004년 95만원, 2007년 140만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래도 2007년 한국인 월평균 근로소득 211만원의 66% 수준이다.

중간층 소득의 절반도 못 버는 비율, 빈곤율도 27.4%로 한국인 평균치 18.4%보다 높다. 그럼에도 탈북자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나쁘지 않다. 2007년 조사에서 신체, 정신, 사회, 환경 영역으로 나눠 스스로 삶의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5점 만점에 3.43점이 나왔다.

2000년 한국사람들 만족도 3.27점을 웃돈다. 2003년 서울에 온 한 탈북자는 수기에 “먹는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없는 나라 중국이 낙원인 줄 알았더니 한국은 천당이었다”고 썼다.
그는 중국에 접한 혜산에 살아 웬만큼 바깥 물정을 알텐데도 한국의 의식주 수준을 경이로워 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 생각이 가장 진하게 나는 때가 음식 먹을 때라고 한다.

1994년 국군 포로 조창호 소위가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돼 식당에 갔다. 그는 옥수수 버터구이가 나오자 당장 “치우라”고 했다. 두고 온 아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형제는 아버지가 1977년 진폐증으로 광산일을 더 못하자 뒷산에 몰래 옥수수 화전을 일궈 부양했다.

그는 하루 세끼 십몇년을 꼬박 옥수수로 연맹했다. 워싱턴포스트가 탈북자들의 뒤숭숭한 심정을 1면 기사로 다루면서 “탈북자들 소원은 헤어진 가족과 뜨거운 쌀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생일잔치를 해주면 예외 없이 북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도 전했다. 탈북자들은 특히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죄의식에 시달린다고 한다.

북의 식량난을 1995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가장 심각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약 300만명에 이르렀다니 그 참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핵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도 원인이었지만 근본 원인은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실패에 있다. 주민들이 남쪽보다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북의 식량난은 유엔과 미국, 한국의 원조로 다소 개선되는 듯하다 2007년 이후 다시 악화됐다. 널리 알려졌듯이 북한에선 하루 세끼 밥 먹는 주민이 많지 않다. 작년 만 해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먹일 식량 100만톤이 부족하다며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었다. 군대에서 간부들이 식량을 빼돌리는 바람에 ‘강영실 동무’(강한 영양실조에 걸린 동무)라는 신조어가 퍼질 만큼 영양실조가 만연 해 있다. 남측의 북한주민 걱정에 대해 조평통은 “동족의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모독하고 전면 부정하는 마당에 무슨 북.남 화합이 있느냐”고 했지만 공허한 삿대질이다.

어떤 체제는 제 백성 굶기는 정치야 말로 참을 수 없는 국민 모독이고 범죄 행위다. 체제보다 중요한 건 세끼 밥 먹이고 사람 목숨이다. 인민 먹여 살릴 궁리는 않고 핵과 미사일 놀음에 매달리면서 주민들은 주린 배를 않고 지도자 만세를 부른다.
[나경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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