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해부(解剖)에 대한 변(辯)

기사입력 2017.08.31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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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 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선데이뉴스신문>과 인연을 맺은 뒤, ‘칼럼’ <선데이뉴스>와 청로(靑魯)의 동행]을 비롯 [말복(末伏), 북한의 삼복철 강행군], [북한 ‘평양랭면’과 남한 ‘평양냉면’], [‘희망(希望)’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북한의 선군절(先軍節)과 선군팔경(八景)], [북한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는가?]를 집필했습니다. 그런데 혹자(或者)는 불문학자가 ‘북한 문화예술에 대해 왜 썼을까?’ 하고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누구에게나 이유는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술이 현실도피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정복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은피(隱避)하거나, 광증(狂症)에 빠지거나, 죽음에 매달릴 수도 있고, 무기로 정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글짓기로 도피하기도 하고, 정복하려는 것일까요? 

1963년 대학에서 문예(文藝)공부를 시작한 이래, 관련된 사람들을 수없이 접했습니다. 비록 책 속에서지만 진실을 찾아 헤매는 많은 문호들을 만났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작가들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프랑스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북한의 김정일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고 국제적인 스타”였으며 “고갈된 프랑스가 아직도 세계에 제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출 상품”인 실존주의의 주역이었던 사르트르의 삶과 죽음, 특히 인간해방과 인간혁명을 외치며 공산당원 ․ 노동자 등과 인간의 자유 실현을 생각했던 그가 전후(戰後) 공산당 비판에 몰두했던 사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삼팔선’의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민주 ․ 공산주의라는 양극 논리 속에서 성장한 필자에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그의 공산주의적 사고(思考)가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해일(海溢)도 글짓기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일(金正日)로 인한 충격은 1991년 2월 시베리아의 강풍과 함께 받았습니다. 그 때 구(舊) 소련연방의 하바로프스크 교육대학교 ·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와 경남대학교간의 국제교류에 대한 세부규약을 확정하기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그 곳에서 하바로프스크의 로마노프 총장이 선물한 한 권의 책은 필자의 문학세계를 강한 회오리바람이 되어 강타했습니다. 그 논문집은 평양의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1988년에 발행한 <문예론문집 4> 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총 8편의 연구논문은 “고전소설 <옥루몽> 연구”, “봉건 말기 우리 나라 평민국문시가문학의 특성”, “현대동화창작에서 나오는 몇 가지 문제점”, “현실에 대한 시적 파악과 표현 방식”, “숨은 영웅들의 형상창조에서 나서는 미학실천적 문제”, “총서 <불멸의 력사> 중 장편소설들에서 형상의 집약화, 집중화”,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의 구성상 특징”>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청소년 시절에 창작하신 혁명적 시가문학의 사상예술적 특성에 대해서” 입니다. 그런데 8편의 논문 모두가 비평의 잣대를 김정일이 집필한 「영화예술론」으로 삼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작품까지 김정일의 이론을 적용해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평가한 허룡갑이라는 문학비평가의 논문은 악몽 속에서나 받을 수 있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충격은 김정일의 정체를 파헤쳐 보고 싶은 욕망과 집필 의욕으로 직결되었습니다. 사실 러시아 출장 전에는, 김정일에 대한 지식이 언론에 보도된 단편적인 말과 글에서 얻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은 김일성(金日成)의 큰아들이며 후계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글을 써도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에 곁들인 양념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부자(父子)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1970년 11월 2일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에서 “우리 당의 혁명사상, 당의 유일사상의 진수를 이루는것은 맑스-레닌주의적인 주체사상이며 우리 당의 유일사상체계는 주체의 사상체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로동당규약’ 전문(前文)에 “조선로동당은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함으로써, 주체사상은 ‘로동당’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1967년 12월 김일성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발설되었고, 1970년 11월에 ‘조선로동당규약’에 명문화된 것입니다. 
[사진 : 1991년의 하바로프스크 교육대학교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 출장]

북한의 문학예술은 김일성을 허수아비로 내세운 김정일의 전유물이었으며, 그의 말과 글 안에서만 존재했습니다. 당(黨) 규약은 김정일의 독재을 위한 ‘덫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문학예술을 선전선동용으로 쓸 정도로 아니까, 막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김정은은?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확신합니다. 

북한 김정은은 8월 29일 오전 5시57분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서 화성-12형 미사일을 쐈고, 우리의 문(文) 대통령은 30일 아베 총리에게 “일본 상공을 통과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는 도발을 넘어 이웃 국가에 대한 폭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폭거(暴擧)의 주인공은 김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문학예술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계속해온 필자의 <북한 문학예술 해부(解剖)에 대한 변(辯)>입니다. 이 수술은 통일의 그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 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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