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그리운 금강산”과 추억(追憶)의 금강산

기사입력 2017.09.2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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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추석(秋夕) · 한가위가 곧, ‘내일 모레’입니다. 소설가 박경리(朴景利)는 <토지(土地)>에서 ‘팔월 한가위’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산 세모시”라고 하고, “추석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들에게도 포식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고! 과거에는 추석 때처럼 포식(飽食)하고 놀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국민들에게 중추절(仲秋節)은 즐거운 만남이 있는 명절(名節)입니다. 사람과 필자는 2008년 7월 10일 금강산 패미리비치호텔에 투숙(投宿)! 위쪽에 있는 5동에서 내려다본 금강산과 금사람의 상봉(相逢)과 해후(邂逅)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닌 타인의 일일지라도 연상되는 것은 고향(故鄕), 실향민(失鄕民), 이산가족(離散家族) 등 입니다. 또한 만남의 장소인 금강산(金剛山)과 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 만 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 만리 보이지 마라./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한상억 작사/ 최영섭 작곡) 

“폭포수는 은절구통같이 봄절벽을 찧고/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로 청산을 재도다/ 달빛은 희고 눈빛도 희며 천지도 모두 희고 /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근심 또한 깊도다.”- 금강산을 찾았던 김삿갓의 절경(絶景)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런 감탄사의 메아리가 태고(太古)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 인가요! 산(山)자락엔 해금강과 삼일포가 또한 절경이고, 거기에 장전항이 있습니다. 
금강산 가을 풍경

여기서 2008년 7월의 금강산을 회상해 봅니다. 지금은 고성항이라고 더 많이 불리우는 장전항은 금강산 첫 관광이 있었던 1998년과 달리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군부대가 있던 곳에 금강산패미리비치호텔이 자리잡는 등 다양한 숙박시설이 갖춰졌고, ‘금강산해수욕장ㆍ고성항횟집ㆍ해금강호텔’로 이어지는 해변은 산책로로 제격이고, 특히 비치호텔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는 조화옹(造化翁)의 걸작품이었습니다. 식당 ‘풍악’과 편의점 ‘금강봉사소’도 관광객에게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강산해수욕장은 황혼의 아름다움과 어둠의 아늑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날 저녁 해수욕장에서 물속을 거닐었고, 다음날 새벽 5시 40분 쯤 방을 나섰습니다. 해변으로 내려와 해금강호텔 쪽으로 가려다가 모래사장으로 향했습니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정자인 영락정(사진)에서 본 사위(四圍)의 풍광은 영롱한 이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금강산해수욕장(필자) 

그날 저녁 금강산호텔(사진)에서 금강산예술소조 가무단 공연을 관람하고 비치호텔에 도착했는데, 금강산골프장 관리인이 같은 호텔에 투숙한 여자 관광객이 새벽에 피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민통선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연두색 펜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북측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가이드의 주의사항도 생각났습니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금강산호텔(필자)

1998년 11월 18일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남북 분단사에서 가장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1989년 1월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방북하여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물꼬가 트였고, 마침내 11월 18일에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습니다. 그런데 관광 초기엔 유람선을 타고 금강산 앞바다에 위치한 장전항까지 가서, 낮에는 소형 선박으로 육지로 이동하여 관광하고, 밤에는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유람선으로 돌아와 숙박하면서, 4박 5일간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금강산에서 만난 아주 똑똑한 북측 사람들, 많이 상냥해진 북측 봉사원들, 열(熱)과 성(誠)을 다하는 현대아산조장(가이드)들, 관광을 시작할 때 모두 나와 즐겁게 인사하는 현대아산 직원들, 온정각 앞마당에서 떡메를 쳐 인절미를 만드는 남정네...그 많은 남과 북의 사람들, 멀리서 돈 벌러 온 조선족 동포들, 그들은 마침내 일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011년 6월 17일,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 대변인 명의로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은 특구법에 따라 특구내의 부동산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정리하게 된다"면서 "특구 내 부동산을 보유한 현대아산 등 남측 당사자들은 30일까지 특구로 오라"고 통고했습니다. 그리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아직까지 막혀있습니다. 

 

지난 9월 20일, 문재인 정부가 편성한 1조원 규모의 내년도 남북협력기금에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대북 투자 사업들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관리가 "기금이 실제 집행될 경우 '5·24 대북 제재 조치'에 반할 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결의도 위반하게 된다"고 말했지만, 대승적(大乘的) 견지에서 보면 긍정적 정책이 절실합니다. 2018년에 금강산관광이 재개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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