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군중미술’·‘민중미술’과 이강용 화백의 작품세계

기사입력 2017.10.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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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조선대백과사전(18)>은 “주체사상의 기치 밑에 개척되고 자주시대 미술의 본보기로 개화발전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술의 자랑찬 력사는 주체미술의 혁명전통을 마련하여”주고 “혁명발전의 매 시기 미술이 나아갈 앞길을 뚜렷이 밝혀”주었으며 “미술가들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 준 김일성과 김정일의 “뜨거운 사랑과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력사”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술(美術)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이 북한 미술입니다. 이 같은 북한 미술에는 ’군중미술(People’s Art)‘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중예술, 군중음악, 군중문학 등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매년 발행되는 <조선중앙년감>을 보면 “당의 문학예술활동의 대중화방침이 더욱 철저히 관철됨으로써 각계층 근로자들 속에서 사상예술성이 높은 문학작품들이 수많이 창작되였으며 군중예술활동도 더 활발히 벌어졌다...이해에 군중예술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였다. 제1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 전국인민예술축전, 제27차군무자예술축전, 전국 청소년학생들의 독창, 독주, 독무경연, 전국웅변대회 등이 진행되였으며 이 과정에 인민군군인들과 각계층 근로자들의 문화적소양이 더욱 높아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서 ‘군중예술“은 전문 예술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창작 행위를 의미합니다. 가령 전시가 된 일반 탄광 근로자의 그림은 ’군중미술(People’s Art)‘의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중미술(民衆美術/People’s Art)‘은 1980년대 중반 부산 지역에 등장한 리얼리즘 미술입니다. 민중미술은 5·18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광주 학살과 폭력에 저항하고, 기존 미술계의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화풍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미술계의 새로운 사조(思潮)입니다. 이를 위해 민중미술가들은 역사와 민중을 형상화하는 리얼리즘 미술을 추구했습니다.  이강용-화백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五一八民主化運動記錄物)”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군사정권의 부당한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5·18 기록물들로,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5.18’이 대한민국 민중미술의 시금석(試金石)이었습니다. 민중미술가들은 역사와 민중을 화폭에 끌어옴으로써 민중 미술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985년 민족미술협의회와 1988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결성을 기점으로 조직적인 민중미술 운동이 전개되면서, 더 많은 미술인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강용’ 이었습니다. 그 무렵 ‘노동운동의 기지’였던 마창공단 지역에서 걸개그림과 깃발 등을 제작하다 인연을 맺은 서울미술공동체에 합류한 그는 1984년 서울로 상경해 첫 단체전에 참가, 다음 해 <시대정신 판화전>과 신군부의 대표적인 민중예술 탄압 사례로 꼽히는 <한국 미술 20대 힘전>에 참여했습니다. 그 때 작품을 빼앗기고 항의하던 작가들이 구속되는 와중(渦中)에서 그는 남은 작품들을 모아 부산에 이어 마산에서 <해방 40년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 “붓을 노 삼아 ‘역사에서 우주로’ 민중미술 오디세이 40년” - ‘화업 40년’ 개인전 연 이강용 화백 화가는 물론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그리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리기 위해서 살아왔고 그리기 위해서 살고 있으며 그리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천재 화가’란 뜻...“그는 역사라는 이름의 소멸과 승부한다. 그의 작업은 소멸의 역사에서 불멸의 꿈을 되짚은 회화적 복기다.” 최근 어느 일간지 기자가 쓴 화가 ‘이강용’의 이야기입니다. 

 

화가 ‘이강용’, 그는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전업(專業)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를 천재작가라고 한 기자의 말에는 진정성이 없습니다. 그의 삶과 창작세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함부로 천재작가 운운하는 것은 모독이 아닐까요?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끝없이 정진(精進)하고 있는 뛰어난 화가에게는 결코 찬사(讚辭)가 아닐 것입니다. 
이강용-화백-한계령

‘이강용’!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산의 한 다방에서 첫 개인전 연 뒤, 오로지 창작에만 매진했던 그! ‘민중미술가’라는 굴레를 쓰고도 고향의 토굴에서 작업에만 매달렸던 그! 경남 마산에서 출생해서 지금까지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인 그는 ‘민중미술의 사실주의적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멸되는 존재의 운명에서 태어나는 영혼의 불길을 놓치지 않은 낭만주의자’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강용’은 환경(環境)과 미술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또한 경남불교미술협회 창단에 앞장을 설 정도로 불교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는 종교적 작품세계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산 미술계의 자존심인 서양화가 이강용 화백이 마산 정법사에서 10월 20일(금)부터 26일(목)까지 개인 작품전을 엽니다. 그는 전시회에서 '미륵-불화, 환경-풀꽃, 우리 고향-마산' 등을 주제로 오일파스텔로 구현한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울에 버금가는 질(質) 높은 미전(美展)이라는 평가입니다. 
이강용 화백-돝섬이 보이는 마을

‘이강용’의 작품을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 문득 피카소(Pablo.R.Picasso /1881~1973)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화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릴 수는 없다. 그는 다만 상실된 것, 망각된 것, 또한 오해된 것을 재발견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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