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소설 <황진이>, 기생 ‘황진이’의 삶과 묘지

기사입력 2017.10.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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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진이는 자리에서 뛰쳐 일어 나 이금이를 붙안았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이 생겼니?” 그제야 이금이는 무너지듯 진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걷잡을수 없는것이기는 해도 여름철의 마른 번개처럼 눈물이 없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흐느낌이였다. “아씨, 이제는 그이가 더는 못 견딜것 같다구 그래요.”, “못 견디다니…누가 그러디?”] (491쪽 / 띄어쓰기 등 북한말) 

 

윗글은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가 2002년에 발간한 황석중의 장편소설 <황진이>의 한 대목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 황석중은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손자이고, 북한의 저명한 국문학자 홍기문의 아들입니다. 작가는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로 2004년 남한에서 제19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명월 황진이’! <브리테니커사전>의 “황진이‘를 인용, 그녀의 일생을 알아봅니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대 개성의 기생이고, 시조시인, 박연폭포·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불리운 조선조 최고의 명기였습니다.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를 지었으며, 가곡에도 뛰어나 그 음색이 청아했으며, 당대 가야금의 묘수(妙手)라 불리는 이들까지도 그녀를 선녀(仙女)라고 칭찬했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황진사의 서녀라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개성의 관기가 되었습니다. 15세 때 이웃의 한 서생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영구(靈柩)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습니다.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말이 움직여 나갔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야담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생이 된 후 뛰어난 미모, 활달한 성격, 청아한 소리,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명기로 이름을 날렸는데, 화장을 안 하고 머리만 빗을 따름이었으나 광채가 나 다른 기생들을 압도했다고 합니다.
황진이가 머리채로 쓴 시그녀는 외국 사신들로부터 천하절색이라는 감탄을 받는 등...그녀에 대한 일화(逸話)는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30년간 벽만 바라보고 수도에 정진하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찾아가 미색으로 시험해 결국 굴복시키고 말았다는 일화! 벽계수를 만났을 때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라는 시조를 읊었습니다. 

그리고 긴 삶의 여정(旅程)! 풍류묵객들과 명산대천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해 재상의 아들인 이생과 금강산을 유람할 때는 절에서 걸식하거나 몸을 팔아 식량을 얻기도 했다고 합니다.

죽을 때 곡을 하지 말고 고악(鼓樂)으로 전송해 달라, 산에 묻지 말고 큰 길에 묻어 달라, 관도 쓰지 말고 동문 밖에 시체를 버려 뭇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게 하라는 등의 유언을 했다는 야담도 전해집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기생 출신으로는 아주 드물게 황진이를 소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개성공단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2004년 조선중앙사진선전사가 펴낸 <고려의 옛수도 개성>이라는 책자는 황진이의 무덤까지 소개했습니다.
 
북한에선 정말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왜냐구요?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말대사전>은 “기생(妓生)”을 “낡은 사회에서, 노래와 춤을 파는 것을 업으로 하는 비천한 계층의 여자”(616쪽)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북한은 “녀자”는 “녀성들은 사회발전에서 수레의 한쪽 바퀴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논다.”고 여성을 기만(欺瞞)!  


명월 황진이의 묘

<고려의 옛수도 개성>은 “개성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오늘은 온 겨레의 통일열망이 굽이쳐 흐르는 도시로, 우리 인민의 행복이 넘쳐나는 력사문화도시로 더욱 빛나고 있다.”면서 ‘명월 황진이의 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황진이>에 등장하는 서화담의 ‘신도비’로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자에는 <황진이가 머리채로 쓴 시>(“날아흩어 3천척을 떨어지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내리는가 의심도다.)가 사진으로 담겨 있습니다. 

 

북한의 <문학예술사전>은 ‘문학(文學)’을 설명하면서 “문학발전의 력사는 인민대중의 리해관계를 반영하는 진보적문학과 착취계급의 리해관계를 반영하는 반동적문학과의 투쟁의 력사였다.”라고 기술했습니다, 황석중의 <황진이>도, ‘황진이’ 이야기도 모두 ‘주체사상’이라는 틀 속에 있습니다. 진정한 문학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북한 땅입니다.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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