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魯 이용웅 칼럼] 판문점(板門店)의 현 주소와 ‘전쟁과 평화’

기사입력 2018.01.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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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7년 11월 13일 오후, 관련 기관은 "판문점 JSA 지역 북측 판문각 전방에 위치한 북한군 초소에서 우리 측 자유의 집 방향으로 북한군 1명이 귀순하여 우리 군이 신병을 확보하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북한군에 의해 총상을 입은 귀순병사는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2018년 1월 2일 우리 정부는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고위급 남북회담 제의”를 했습니다. 다음날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참가를 논의하기 위한 판문점 연락 채널을 다시 개통했습니다. 

 

2018년의 첫 이슈로 부상(浮上)한 판문점(板門店)의 현 주소는? 우리의 백과사전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마을로서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50㎞, 개성 동쪽으로 약 8㎞, 북위 38°선의 남쪽 5㎞ 지점에 있다. 문산과 개성을 연결하는 1번 국도 도로상에 있으며 속칭 널문리로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가 하면, “판문점은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휴전선(비무장 지대) 안에 있는 공동 경비 구역”이라고도 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장단군 진서면? 

 

북한의 행정지도를 보면 ‘개성직할시’에 ‘개성시·개풍군·판문군·장풍군’이 있습니다. 그리고 판문점은 판문군 안에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2)>은 “판문점 :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이 조선 인민 앞에 항복하고 군사정전협정에 조인한 력사적인 장소. 판문점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63(1974)년 7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친히 찾으시여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영광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다. 판문점은 판문읍에서 동쪽으로 약 6km, 개성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다. 판문점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친필비와 정전담판회의장, 정전협정조인식장, 판문각, 통일각 등이 있다. 여기서는 조국통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치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557쪽)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전에서 <판문점 사건>과 <판문점 총격사건>이라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22)>은 “판문점 사건”을 “미제국주의자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공화국 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꾸며 낸 계획적인 도발사건, ‘8.18 사건’이라고도 한다...이날 10시 45분경 미제는 도끼를 가진 14명의 불한당들을 내몰아 쌍방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 안의 나무를 제멋대로 찍어내는 무례한 행위를 감행...우리 측 경비인원들은 적들이 던진 도끼를 집어 도로 놈들에게 던지면서 결사적으로 대항”(557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판문점-약도

일명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조선인민군 군인 30여명이 도끼를 휘둘러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주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주한 미군 및 대한민국 국군 병력 다수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으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8·18 도끼 만행 등으로도 불리웁니다. 이후 북한은 1년 반 동안이나 준전시 상태를 풀지 않았고, 남한도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사건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사건 당사자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남(南)과 북(北)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판문점은 소리 없는 전쟁터였습니다. 

 

그리고 <조선대백과사전(22)>은 “판문점 총격사건”을 “미제침략자들이 1984년 11월 23일 우리 측 경무원들을 사살한 엄중한 총격사건.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부 구역 안에 있는 회의실 마당에서 감행되였다...미국 측이 판문점 안에서 대대적인 총격사건을 일으키며 살육행위를 감행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새로운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기 위한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판문점-南에서 본 北 
1984년 11월 23일 11시 30분 경 소련 관광안내원(당시)이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유엔군과 한국 육군 경비 병력들은 그를 대피시키게 되었으며 이에 당황한 북한 육군 병력이 그의 월남을 저지하고자 권총을 발사하며 경고하였으나, 실패하게 되자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150m까지 침범, 자유의 집 앞 연못까지 내려왔습니다. 이 때 북한의 선제 사격과 우리 측의 대응 사격으로 남 1명, 북 3명의 병사가 사망했습니다. 먼저 총격을 가하고는,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그리고 2017년 11월 13일에도 판문점 총격사건을 일으켰습니다. 

 

판문점은 한국전쟁 때 1951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유엔군과 공산군 간에 휴전회담(休戰會談)이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역사문헌에 의하면 판문점 일대는 고려시대 송림현(松林縣)지역이었던 곳으로 조선 태종대에 장단군에 편입되었으며, 송림현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송남면(松南面)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지역이 개성부(開城府) 판문평(板門平)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 부근에 널문다리(板門橋)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설과 이 마을에 널판지로 만든 대문(널문)이 많았기 때문에 ‘널문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판문점-北에서 본 南

앞으로 판문점은 소리 없는 전쟁터가 아닌 평화 마을이 될 수 있을까요? 2018년 1월 9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시작되었습니다. 남측 대표단은 기조발언을 통해 북측에 평창 동계올림픽에 많은 대표단의 파견과 공동입장 및 응원단 파견을 요청했고, 이번 설에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갖자고 했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회담의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측은 고위급 대표단과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판문점이 도끼와 총이 난무(亂舞)했던 과거의 치욕을 씻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미국의 전(前) 대통령 J.F.케네디는 “평화에 대한 보다 끈덕진 위협은 하나의 커다란 원자력 전쟁이 아니고, 일련의 소규모적인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선배의 말을 알고 있는지...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판문점 평화의 집이 세계 평화의 온상(溫床)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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