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유년시절의 유월, 자연대합창 155마일, 그리고 현충일(顯忠日)

기사입력 2018.06.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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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평상시 같으면 이 잡듯 뒤지는 조간신문을 악몽 때문에 건성으로 넘기는데 천연색 사진 한 장이 눈앞에 선명히 나타났습니다. 뚫어진 철모에 담긴 이름 모를 꽃 세 송이가 전쟁의 잔해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 이 사진이 준 충격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마다 유월이 되면 온 겨레의 가슴 속에 결코 망각될 수 없는 상흔이 되살아나 아픔을 주는데, 이 정경이 한없는 비애를 더해 주었을 것입니다. 지금 시간은 현충일 전야입니다. 얼마 전에 시청한 특집극의 영상 위에 노랑 꽃송이가 겹쳐 떠올라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고 펜을 들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이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유년 시절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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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6일 북한의 8차 소년단 대회

 

충청도 두메에서 농군으로 사시던 할아버지는 개 콧구멍만한 전답을 팔아 서울 근교로 이사를 하고 돈만을 위해 사셨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방고래에 불을 넣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필자는 넓은 대지 위에 세워진 대궐 같은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갖가지의 과실수가 울창하였고,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이 온 집안에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황해하시는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올라간 산등성이에서 본 서울 쪽 하늘이 붉은 노을보다 더욱 붉었습니다. 김일성이 꽃밭에 불을 지른 것을 어린 나이에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하늘에서 새우 젖 독 같은 것이 떨어지는가 하면 큰 아버지 공장의 고무신들이 지하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걸은 생각이 났습니다. 안양 근처에서 배가 고파 토마토 밭에 들어가 허겁지겁 훔쳐 먹다가, 가족들을 잃고 헤맨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어머니 품에 다시 돌아와 실컷 울었지만 개미떼를 실어 나르는 것 같은 기차를 탔을 때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버지가 철도노조 간부로 재직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기차를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이 우리를 살린 모양입니다. 헌데 두메의 고향 “청양군 비봉면 청수리‘에는 불행히도 기찻길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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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이용웅 교수 - 다시 방문한 충남 대천초등학교.

 

그래서 우선 찾아간 곳이 외갓집이 있는 대천이었습니다. 거기서 외할아버지 따라 꼴 베러 다니며 쇠파리를 알았고, 논 고동을 잡는 재미에 거머리를 우습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천국민(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책보자기 메고 신나게 논길을 달렸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빌어주었던 외삼촌이 부상을 당하고 돌아오셨습니다. 그 때 외할머니께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장소는 다름 아닌 부엌이었다. 덕분에 누룽지를 훔쳐 먹을 기회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뒤 이어 일가들만이 모여 사는 이 마을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왔다만 가면 동네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모든 일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메뚜기 잡아서 구워먹는 일도, 감이나 밤을 따는 일도 모두가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버지 덕분인지 전세(戰勢)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리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땅 속에 묻어 두었던 값진 물건들은 고사하고, 숟가락 한 개...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유년시절의 사진이 없습니다. 초상의 일부를 이미 그 때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사진은 나와 인연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신문 사진이 뇌리 속을 스쳐 다시 자세히 보았습니다. <평화를 부르는 ‘자연대합창’ 155마일>이라는 제목 아래 괴뢰군파리가 아름답게 피어있고 어린 멧돼지 형제가 정겨웠습니다.

 

‘용(龍)늪’의 끈끈이주걱이 ‘우아’하고, 아카시아 나무에 둥지를 튼 백로들의 찬란한 삶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의 유월의 모습은 너무도 서정적이었습니다. 정처 없는 피난의 여정이 시작되면서 남으로 향한 무수한 발길이 스쳐간 역사의 현장입니다. 지금 우리의 자연에도 신록이 파도처럼 출렁거립니다. 북녘 땅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황야에서 한 많은 종명(終命)을 고한 호국영령들을 생각하면...조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이슬처럼 사라진 그분들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비무장지대 대암산의 용(龍)늪.jpg
비무장지대 대암산의 용(龍)늪

 

정전협정상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라고 규정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 세월이 흐르는 동안 ‘DMZ’라는 약어는 분단의 상징으로서 군사분계선이나 휴전선이란 단어보다 더 많이 쓰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분단의 아픔 속에서 통일 염원 꽃피우는 희망의 땅,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있는 대암산의 용(龍)늪은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에서 자연환경적으로 높은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해발 1200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이 315㏊, 둘레 1045m 규모입니다. 아쉽게도 작은 용늪은 이미 그 원형을 상실해 숲이 돼버렸고 현재 큰 용늪만 남아 있습니다.

 

2017 6월 7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조선로동당 위원장 김정은(金正恩)이 전날인 6월 6일 조선소년단 8차대회에 참석해 “소년단원들은 제국주의자들과 계급적 원수들을 미워하고, 언제나 혁명적 경각성을 높이며, 원수들이 덤벼든다면 용감하게 싸울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한의 6월 6일은 현충일(顯忠日)!

 

이틀 뒤, 지대함 순항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수발을 동해로 발사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5월 29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스커드 계열 탄도미사일을 쏜 지 10일 만입니다. 미국의 전(前) 대통령 J. F.케네디는 “핵무기의 참화는 바람과 풀과 공포에 의하여 확산되어 대국이건 소국이건 부유한 나라건 가난한 나라건 동맹국이건 비동맹국이건 모두 파괴하고 말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018년 6월 6일, 오늘은 현충일(顯忠日)입니다. 2017년 6월 6일의 북한 조선소년단 8차대회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남북정상회담 이후 세상이 바뀐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남북이 가깝게 보입니다. 남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직은...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倒何事不成)이라...우선 필자는 현충일에 원충원을 찾아갑니다. 여러분! 현충원에서 만나실래요? 우리는 6.25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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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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