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3.1민족봉기”, 3·1운동 100주년, 3.1절 민족화합기도회

기사입력 2018.07.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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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인민봉기 주요지역도”(북한 조선대백과사전<13>)

 

★ “3.1민족봉기 :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주체8(1919)년 3월 1일에 폭발한 우리 인민의 전민족적 반일봉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만세!>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면서 강도 일제를 반대하여 전 민족적 투쟁을 전개한 날이며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준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 민족이 자기의 자유를 위하여 고귀한 피를 흘린 날입니다.⨠(<김일성전집> 3권, 185페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야만적인 무단통치로 말미암아 쌓이고 쌓인 조선인민의 민족적 울분과 사무친 원한은 마침내 주체 8년 3월 1일에 전만족적 반일투쟁으로 폭발하였다...⪡그때 여덟살이었던 나도 다 꿰진 신발을 신고 시위 대렬에 끼여 만세를 부르면서 보통문 앞에 까지 갔다. 성안을 향해 노도와 같이 밀려가는 어른들의 걸음을 나로서는 미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너덜거리는 신발짝이 거치장스러워 짚신을 벗어서 손에 들고 뜀박질로 대렬을 따라갔다. 어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 나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김일성 저작집> 45권, 36~37페지). 평양시민들의 시위대렬은 삽시에 10만여명으로 늘어났다...”(<조선대백과사전(13)>) / ‘3·1운동’을 ‘3.1민족봉기’이라고 하는 북한입니다. 타계한 김일성이 8세 때 시위에 가담했다니...믿어야겠죠!

 

★ 3.1운동(기미독립만세운동, 기미독립운동, 삼일만세운동) :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거국적인 독립만세운동.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중 서울에 있던 20여 명은 2월 28일 밤 재동 손병희의 집에서 최종 회합을 가지고 거사 계획에 대한 마지막 검토를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선총독부의 헌병·경찰의 정보망도 사전에 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3월 1일 정오경부터 민족대표 33인 중 29인(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 등 4인은 지방에 있었으므로 불참)은 서울 인사동 태화관(泰華館)에 모여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한편 최린은 태화관 주인 안순환(安淳煥)에게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 일동이 여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나서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게 하였다. 이 통고를 받은 일본경찰대 80여 명이 즉각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하였다. 이 때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를 들은 후,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의연하게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한의 3.1운동에서는 8세 소년의 시위 이야기는 없습니다.


★ “文 대통령, 김정은과 3·1운동 100주년 공동사업 추진 : 문재인 대통령은 7월 3일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남북이 함께 3·1 운동 100주년(2019년)을 기념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는 오는 8월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간 민간 교류 분위기를 내년 3·1운동 공동 기념행사로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거듭 대한민국 건국(建國) 시점을 1919년 임시정부로 규정했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3·1운동으로 분출된 민족의 역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며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조선일보>,20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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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문재인 대통령)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7월 4일, 정부가 100주년을 맞는 2018년 3·1절에 맞춰 남북 대표단이 함께 열차로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고위 당국자가 밝혔습니다. 이 당국자는 “지난 3일 3·1절 100주년 행사를 위한 기념사업추진위원회(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식 발족함에 따라 관련 사업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며 “관련 부처에서 공동 방중 계획을 연초부터 검토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남북관계 진전에 맞춰 남북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한 1단계 검토를 이미 마쳤다”며 “남북한의 대규모 대표단이 함께 열차를 타고 국내외에서 진행했던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대단한 일, 잘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국내외 많은 단체들과 한국인들, 외국인들까지도 3.1운동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3.1절 민족화합기도회가 그 중 하나입니다. 1986년 정근모(鄭根謨/1939~)박사가 민족화합(National Reconciliation)을 위하라는 ‘소명’을 받고, 1987년 초에 귀국하여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설립자인 최태섭(崔泰涉/1910~1998) 회장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벽산 그룹 김인득(金仁得/1915~1997) 전 명예회장, 이한빈(李漢彬/1926~2004) 전 경제기획원 장관, 서영훈(徐英勳/1920~2017)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1987년 3월에 민족화합기도운동을 발기하여 1988년 3월1일 종로성결교회(현 삼성제일교회)에서 제1회 3.1절 민족화합기도회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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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민족화합기도회 발기인 정근모 박사와 필자

 

과학기술처 12대(1990년), 15대 장관(1994∼1996년)을 지낸 정근모 박사는 미시간 주립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뉴욕공과대학 전기 및 핵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 KAIST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 설립을 주도했으며, 한국인 최초 세계 원자력한림원 회장과 세계 에너지회의 부의장 및 종신 명예 부의장을 지냈습니다. 또한 미국 국무부 국제개발처(AID) 자문위원, 호서대학교 총장, 명지대학교 총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 속에는 항상 3.1절 민족화합기도회가 있었습니다.

 

필자도 그와 3.1절 민족화합기도회에서 만났었습니다. 함께 일하면서 5명의 발기인들의 ‘3.1정신’을 확인했으며, 정근모 박사의 노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사업도 이런 노력들의 결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2018년에도 3월 1일 오전 7시 서울 삼성동 삼성제일교회에서 제31주년 3.1절 민족화합기도회가 열렸습니다. 2019년 3월 1일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3.1절 민족화합기도회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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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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