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영원한 명배우 전무송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기사입력 2018.08.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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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전무송-인터뷰-조선일보 자료.

 

[선데이뉴스신문]<조선일보>(2018년8월16일字) 문화면 기사의 주인공은 “연기 56년, 이 역할만 7번째…난 진짜 배우 되려면 멀었다”고 토로(吐露)했습니다. 8월 17일(금) 개막된 연극「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역 전무송 님은 “이 작품엔 개인적 의미도 깊다. 올해는 1984년 처음 윌리 역을 맡겨줬던 극단 성좌의 연출가 고(故) 권오일(1932~2008) 선생 10주기다. "'내년에 세일즈맨 꼭 한번 하자'고 하시더니 이듬해 돌아가셨어요. 연습하면서 선생님을 떠올리고, 선생님이 이 연극에 바랐던 점들을 되새깁니다."라고 했습니다. 순간 권오일 교수님이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권 대표님은 극단 <성좌>를 이끌며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존 오스본 작, 1970),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테네시 윌리엄즈 작, 1980), 「시련」(아서 밀러, 1982), 「적과 백」(이재현 작, 1983),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 작, 1984), 「봄날」(이강백 작, 1984), 「검은 새」(정복근 작, 1985),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유진 오닐 작, 1985), 「초승에서 그믐까지」(윤조병 작, 1986), 「쟁기와 별」(오케이시 작, 1989),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작, 198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즈 작, 1998) 등을 연출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연출가였습니다.

 

이미 타계한 연극인 중 필자가 가장 사랑했던 권오일 선배님과 김의경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김의경(1936~2016) 선배님은 서울사대부고 선배님이고, 극단 <현대극장> 대표 시절에 필자의 <창원현대극장>과 교류하면서 연극 활동이 함께 했습니다. 전무송 님과의 첫 만남은 창원의 연극 무대에서 였습니다. 첫 인상은 평생 연극의 길만 걸을 것 같은 배우였습니다. 그때 싱가폴에서 구입한 휴대용 재떨이를 선물했는데...그리고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전 선배님과 해후(邂逅)를 했었습니다.

 

신문은 영원한 배우 ‘전무송’을 “1962년 평생 스승 유치진(1905~1974) 선생의 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첫발을 뗀 연기 인생이 이제 56년. 얼굴 주름살이 연기에 바친 세월만큼 또렷하다. 그가 17~2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의 보험외판원이자 가장(家長) 윌리 로먼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이 역할만 7번째”라고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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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배우-전무송,박순천.정상철,한인수.

배우 ‘전무송’은 인터뷰에서 "34년 전 처음 윌리를 연기할 때 '거참, 울 아버지랑 똑같네' 싶었거든. 그때는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 옛 모습을 그리고 상상했어요.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돼 그 체험의 절실함으로 연기해요. 아버지 마음엔 동서양 구분이 없나 봐. 부드럽고 힘 있는 말투다.

 

 자식 밥그릇에 고봉밥을 조심조심 눌러 담는 아버지 손길 같다.“고 했습니다.“배우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남 험담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으며, 스스로 내세우거나 비하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마음의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신문이 그의 삶을 소개했는데...여기서 이 기사를 인용해 봅니다. -젊을 때 그도 술 취하면 싸움질이 예사인 적이 있었다. 그의 연기를 아낀 유치진 선생이 따로 불러 말했다.

 

"무대에서 말하는 데 10년, 제대로 연기하는 데 또 10년 걸린다. 그걸 넘어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 전무송은 "그 말씀이 평생 나를 쫓아다녔고 아직도 진짜 배우 되려면 멀었다"고 했다. "이건 겸손이 아니에요, 욕심인 거지. 선생님이 말한 그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욕심. 안 되는 걸 아니까 채우려고 계속 하는 거고." 전무송이 빙긋 웃었다.-

 

-무대를 반세기 지켜왔으나 대중은 임권택 감독 영화 '만다라(1981)'의 승려 지산으로 그를 처음 알아봤다. 그 역할의 모델이 된 스님을 만나기로 한 전날 밤 꿈을 꿨다. 낡은 바랑을 메고 가던 스님이 평상복에 비닐 가방 든 남자로 바뀌는 꿈이었다. 가방 안엔 연습 뒤 끓여 먹을 라면 한 봉지와 담배 여섯 개비 든 담뱃갑이 들어 있었다. "이거다!" 전무송은 배우인 자신과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의 길이 하나임을 봤다.

 

"배우에겐 그런 순간이 있어요. 고민을 거듭하다 절실함의 극치에 다다르는 순간. '안 되면 관두지 뭐'하고 생각하면 벽뿐이야. 꼭 해내겠다는 절실함이 내면에서 응결되면 퍽, 하고 뭔가 와요." 전무송은 "절실하면 길이 보이고 조금씩 완성으로 가는 것 같다. 이 나이에 건진 건 그것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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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분장실-전무송 배우와 필자.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1915~2005)의「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의 줄거리, 30년간 오직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윌리 로먼은 그 일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육체적·정신적 노동은 계속 늘어가는 반면 수입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생활고를 겪게 됩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두 아들 비프와 해피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방황하고 타락합니다. 현실과 자식들에게 배반당하고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완고한 윌리는 늘 다투어오던 비프와 화해하던 날, 아들에게 보험금을 물려줄 생각으로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자살하고 맙니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퓰리처상과 연극비평가상을 받았습니다.

 

배우 ‘전무송’은 "이 연극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싶어졌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아버지로, 엄마는 엄마로, 아들은 아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스스로 질문해보게 되는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는 아역배우 출신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맡고, 배우인 딸 전현아가 제작하고, 아들 전진우가 극 중 아들 비프 역으로 나오고, 외손자는 회사 사장 아들 목소리로 출연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해서 더욱 빛난 이번 공연은 한마디로 훌륭한 수작(秀作)이었습니다.

 

8월 18일(토) 공연을 마치고 분장실에서 만난 전무송 님은 첫 만남에서 느낀 ‘평생 연극의 길만 걸을 것 같은 배우’였고, 여전히 아름다운 ‘청년’처럼 보였습니다. “연극이 배우의 예술임을 증명해 보인 역사적인 인물”이 틀림없었습니다. 행복해하는 배우의 모습에 필자도 행복했습니다. 미구(未久)에 재회(再會)를 약속하고 대학로예술극장을 나선 필자는 ‘세일즈맨의 죽음’이 고마웠습니다. 분명 훌륭한 수작(秀作)이었습니다. 8월 26일(일)까지 관객의 행렬이 장사진(長蛇陣)을 이루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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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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