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량강도 김정숙군 신파혁명사적지의 전모(全貌)

기사입력 2018.09.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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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최근 남한의 북한 전문 언론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김일성 가문(家門)의 우상화물이 설치된 지역의 주변 도로를 지나가던 한 주민이 동상 초소 경비대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8월 18일 오후 ‘양강도’ 김정숙군에 있는 신파혁명사적지 주변을 지나가던 20대 청년이 초소 통과를 요구하자 경비대가 우회할 것을 요구하면서 시비가 붙었고, 폭행을 당한 청년이 병원에 급히 실려갔지만 의식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내부 소식통이 8월 26일 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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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량강도 김정숙군 김정숙 동상-북한 월간 조선 자료

 

소식통은 위 언론매체와의 통화에서 “이곳 혁명 사적지와 김정숙 동상은 평소에도 무장 경비대가 주야로 보초를 서고,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면서 “폭염 속에서 사적지 주변을 지나던 청년이 통과를 요구하자 경비대가 이를 거부했고, 이 와중에 격한 말들이 오고가면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신파혁명사적지는 1930년대 후반 김정숙이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이 지역에 조국광복회 지하 조직 등을 건설했다고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김씨 일가 사적지와 동상 훼손과 공격 시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변에 감시 초소 증설, 순찰대 편성 등 경비를 대폭 강화해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권 이후’가 아닙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더 했습니다.

 

북한에는 ‘양강도’는 없고 ‘량강도’가 있습니다. 량강도(兩江道) 김정숙군(金正淑郡)은 남한의 인터넷 사전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전은 “양강도의 북서부 압록강(鴨綠江) 연안에 위치하며, 동쪽은 삼수군(三水郡), 서쪽은 김형직군(金亨稷郡), 남쪽은 함경남도(咸鏡南道) 부전군(赴戰郡)과 자강도(慈江道) 낭림군(狼林郡),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하여 있다...1981년에 신파군(新坡郡)을 김정숙군으로 개칭하였다. 신파군은 1952년에 신파지구를 중심으로 설립된 군이라는 데서 비롯된 이름인데, ‘신파’는 ‘신갈파(新乫坡)’의 준말이다. 신갈파는 1444년 경에 갈파지역에 새로 개척된 고장이라는 뜻이고 ‘갈파’는 갈과 칡이 많은 고장이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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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량강도 김정숙군 신파혁명사적관-북한 월간 조선 자료

 

그러면 북한에서는? 북한 <조선대백과사전(4)>은 “김정숙군 : 량강도 북서부 장진강 류역에 있는 군...군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1968년 7월에 친히 찾아주신 특별한 곳이다. 군에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신 김정숙동지께서 1937년 여름에 혁명활동을 벌리신 사적이 깃들어있다...군에는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시며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의 동상이 정중히 모셔져있다. 또한 혁명사적비와 헌시비가 세워져있으며 ⪡신파혁명사적관⪢과 신파혁명사적지, 장항혁명사적지가 꾸려져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일개 행정구역을 이렇게 설명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김정숙군의 설명에 있는 ‘신파혁명사적지’가 바로 앞의 폭행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김정숙의 아들 김정일이 살아있던 2006년에 북한 월간 홍보잡지 <조선>(8월호)은 “신파혁명사적지”라는 기사에서 “항일의 영웅이신 김정숙동지의 혁명활동 자료들이 보존되여 있는 신파혁명사적지는 량강도 김정숙군에 자리잡고 있다...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26(1937)년 봄 김정숙녀사께 도천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신파에 나가 삼수지대에 지하조직망을 꾸리고...조국광복회 조직망을 확대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그때 5월 신파에 나오신 녀사께서는...적극적인 혁명활동을 벌리시였다.”고 기술했습니다. 잘 꾸여진 픽션 드라마 ‘젊은 혁명가 부부의 독립운동’이 연상(聯想)되는 것은 왜 일까요? ‘불요불굴(不撓不屈/의지 따위가 흔들리지 않고 굽힘이 없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뿐 더러, 각본(?)이 미숙하다는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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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 부인 김정숙 생일 기념우표

 김정숙! <조선대백과사전(4)>은 “김정숙(1917.12.24.~1949.9.2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친위전사이시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어머님이시며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신 항일의 녀성영웅!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덕의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에서 탄생하시였다. 모진 가난으로 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일가와 함께 1922년 봄 두만강을 건느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연길현 북구에서...생활하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섯 살 때 고향을 떠났다는 얘긴데, 지금 그곳은 김정숙 우상화의 도시처럼 되어 있습니다. 아들 김정일 덕분에!

 

과거 구(舊) 소련연방의 하바로프스크 교육대학교와 경남대학교간의 국제교류에 대한 세부규약을 확정하기 위해 출장을 갔었는데, 그 때 로마노프 총장이 필자에게 북한 서적 <문예론문집(4)> 등을 선물했습니다. 그 속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나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허룡갑이라는 문학비평가의 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니!!! 그 어머니가 ‘김정숙’입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나의 어머니 ;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고 나를 품어 키우신 나의 어머니/ 만가지 소원을 헤아려 보시며 조선의 고운 꿈 꽃 피워 주셨네/ 비 와도 눈 와도 먼 길 떠나도 손 잡아 이끄신 나의 어머니/ 순간을 살아도 빛나게 살라고 길러 준 그 품을 내 어이 잊으랴/ 기쁘나 힘드나 부르고 싶은 정답고 미더운 나의 어머니/ 그 은혜 못 잊어 세월의 끝까지 수령님 받들어 한길을 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뜨거운 그 사랑 내 크게 알았네. / 주체 49(1960).7.15.”

 

김정일의 “나의 어머니”가 고전적 명작이라는 것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이고 , 더 더욱 시(詩) 속에 “세월의 끝까지 수령님 받들어 한길”을 간다고 한 것도 후계자 야욕의...우리 속담에 “어머니 품속에 밤이슬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밤이슬’은 따뜻하게 감싸 주거나 보호해 주는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사별한 어머니를 그리는 노래가 하늘나라 김정숙의 품속에 ‘피이슬’을 내리게 한 것은 아닌지...그래도 그리운 모정은 있었겠지요!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처럼 할머니를 정치에 이용하지 않으리라 믿어봅니다. 특히 할머니를 우상화하는 것도 가족의 입장에서 중요하겠지만,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도자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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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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