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한많은 대동강, 대동강 김선달 설화, 대동강 단상(斷想)

기사입력 2018.09.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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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녘땅 오백리길 목숨 걸고 왔다만/ 찾아온 내 님은 옛 친구의 아내더냐/ 그토록 기다리던 그 님이건만/ 눈물로 바라보며 돌아선 심정/ 너만은 알고 있겠지 한많은 대동강아// 행복을 빌어주며 몸은 비록 간다만/ 그리운 그 모습 어디 간들 잊을소냐/ 그토록 자나깨나 그리던 님을/ 한마디 말도 없이 돌아선 심정/ 너만은 알고 있겠지 한많은 대동강아”- ‘한산도 작사 · 백영호 작곡 · 이미자 노래’의 “한많은 대동강”(1966년)입니다. 동명(同名)의 영화 주제가로 영화의 줄거리...해방 직후 주인공은 북한군 군관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후, 남한으로 내려옵니다. 이후 6.25가 발발하자 그는 평양 탈환 작전에 참여합니다. 평양에 입성한 그는 옛 애인을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북한군 군관이 된 친구의 아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픔을 뒤로 하고 그녀의 행복을 빌며 전선으로 떠납니다...

 

당대(當代)의 최고 배우들, 김지미 · 남궁원 · 최무룡 · 박노식 등이 등장하는 <恨많은 大同江>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인기가 있었습니다. 월남전이 한창이었던 1966년 필자는 정부에서 구성한 제1차 파월장병위문단의 일원으로 한 달간 베트남과 타이완을 방문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필자는 전쟁영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당시 불어학과 4학년이었던 필자는 알랭 드롱(Alain Delon)이 주연하는 프랑스 영화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래선지 “한많은 대동강”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아직도 ‘대동강’이 뇌리(腦裏)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대동강은 필자의 관심 대상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동강-주체사상탑에서-바라본-평양-대동강변.jpg
.대동강-주체사상탑에서 바라본 평양 대동강변

 

그때 필자는 김선달의 설화에 매료되었습니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김선달의 이야기는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지역에서 발생했는데, 각종 야담집과 입소문을 통해 조선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설화 속 김선달의 사기행각 중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어수룩한 한양의 부자 상인을 속여 대동강을 팔아먹은 사건이다. 조선 후기의 풍자적인 인물인 봉이 김선달에 관한 설화는 이미 19세기에 퍼진 이야기인데, 기발한 재치와 재주, 지혜, 풍자, 익살, 유머가 총동원된 일종의 소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재미있게 읽고는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선달은 여타 재담가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황해도에서 전래되는 설화에는 그가 대동강뿐만 아니라 대동강변의 오리 떼까지 팔아치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평양의 봉이라는 사람은 어수룩한 시골 부자에게 대동강에 있는 오리를 팔아먹기로 했습니다. 김선달은 겨울날 시골 부자를 대동강변에 데려간 다음 물 위에서 놀고 있는 수천 마리의 오리를 가리키며 “저 오리들은 다 내가 기르고 있는데 길이 잘 들어서 내 말을 잘 듣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그가 오리가 날아갈 만한 시각에 지팡이를 번쩍 드니 오리 떼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잠시 후 지팡이를 아래로 내리니 오리 떼가 모두 물가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시골 부자는 감탄하면서 봉이에게 거금을 주고 오리 떼를 사들였습니다. 며칠 후 시골 부자가 대동강변에 나와 보니 오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놈들이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하면서 사방으로 찾으려 다녔고, 지금까지도 찾으러 다닌다고 합니다.

 

대동강(大同江)! 필자가 2005년 평양에서 첫 상봉한 대동강은 고고(高古)하고 고고(孤高)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장막 속에 갇힌 듯 애잔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양안(兩岸)에는 주체사상탑 등 거대한 기념물들이 자리 잡고 있고, “이수일과 심순애”에 등장하는 대동강변 부벽루(浮碧樓)는 초라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강은 여전히 한반도의 중심이었습니다. 대동강은 평안남도 낭림산맥에서 발원하여 평안남도를 관류한 후 서해로 흘러들고, 평안남도 대흥군 낭림리 북부 2,118m 지점 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영원군·덕천시·개천시·순천시·평양특별시와 황해북도 송림시·황주군 일대를 지나 남포직할시와 황해남도 은율군 경계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거대한 강입니다.

   

대동강-멀리-주체사상탑이-보이는-대동강변(필자).jpg
대동강-멀리 주체사상탑이 보이는 대동강변(필자)

 

최근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평양은 크게 각광을 받았고, 평양랭면·순안국제공항·백화원·목란관·만수대창작사·대동강수산물식당 등은 뉴스거리가 되었지만, 정작 소개되어야 할 대동강은 외면(?) 당했습니다. 오히려 ‘대동강변에 배 모양으로 세워진 대규모 레스토랑’ 때문에 대동강이 화면에 보였습니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야당 대표가 “대동강변에 낚시꾼들도 많이 나와 있고 중국 사람들 모여 체조하듯이 모여서 체조하고…."라고 말한 기사!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시장에게 대동강의 수질을 언급했다는 뉴스! 실제로 평양시의 열악한 하수 처리 시설 때문에 나빠진 대동강의 수질! 이미 서울시의 평양과의 포괄적 협력 방안에 수질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협력하면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동강’하면 짚고 넘어야가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1968년 1월 23일 오후 2시경 강원도 원산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 (USS Pueblo)가 북한 경비정에 붙잡혀 원산항으로 끌려갔습니다. 북한은 약 30년이 흐른 1999년 나포했던 푸에블로호를 원산 앞바다에서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겼습니다. 1866년의 '미제 침략선 미국의 셔먼호 격침 기념비' 옆이었습니다. '대미 항전 승리'의 전리품으로 전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2013년엔 대동강 지류인 보통강변의 전승기념관 '노획무기 전시장'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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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평양 대동강변에 있는 푸에블로호

 

북한 <로동신문>(2018년 1월 23일)은 푸에블로호 나포 50주년을 맞아 “항복서를 밟으며 지나온 노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미제가 우리 군대와 인민 앞에 바친 항복서에서 피 절은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끝끝내 침략전쟁의 길을 택한다면 원수들의 모든 본거지가 멸망의 최후 무덤으로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올 1월과 9월의 온도차는 매우 큽니다. 북한의 핵무기 폐기보다 푸에블로호 반환이 미국인들에겐 훨씬 더 크고 값진 선물이라는 여론도 있습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하는데...아름다운 이 가을에 푸에블로호 문제를 쉽게 푸는 김정은 위원장이 된다면 조금은 신뢰받는 지도자로 평가될 것입니다.

 

단상(斷想)! 심순애는 비관하고 대동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했으나 이수일의 친구에 의해 구출됩니다. 친구는 이수일에게 재회를 권하지만 금전에만 몰두할 뿐 듣지 않습니다. 그러던 이수일도 신경쇠약으로 휴양 차 청량암에 머무는 동안 자살하려는 어느 남녀를 구출해주고 심경이 변합니다. 한편 심순애는 친정으로 돌아와 이수일에 대한 연모의 정이 지나쳐 광증을 일으킵니다. 둘은 결국 서로 과거를 뉘우치고 재회! 북한의 과거에 대한 참회(懺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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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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