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정미 교수 “스스로의 경쟁력이 있다면 그것은 열정과 다양한 경험이다”

공부 30년, 운동 20년, 선거방송토론 10년, 교수 22년, 방송통신대 강의 19년 등 다양한 ‘경력’
기사입력 2018.11.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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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갈 수 있는 다양성’이 중요
-친일파와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운 대표적 민주운동가 장준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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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과 열정을 강조하는 서정미 안양대학교 교수

 

 [선데이뉴스신문]올해는 장준하 선생 태어나신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 분의 삶과 죽음은 오로지 ‘민(民)’을 위함이었다. 본인의 무덤을 쓰는 일에서도 국민의 삶을 걱정하여 밤나무를 심게 하였다. 이러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대한국민’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서정미 교수는 제헌국회의원이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의원 선거운동을 도왔던 경험으로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정치가의 꿈을 간직해왔다. 2008년부터는 안양시 만안구 제 18, 19, 20대 국회의원선거 토론회의 사회를 맡았었고, 경기일보에 고정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피해자들을 심리적 경제적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운영이사와 녹색어머니회, 도서관 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역사회 복지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서 교수는 “나의 열정과 다양한 경험은 진정한 소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맞고 틀림이 아니라 장준하 정신이기도 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갈 수 있는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이해하는 데에 견인하고 조력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정미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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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즉위교서 반포식 재현 때 숙빈 이 씨로 분함

 

할아버지는 제헌국회의원이고, 아버지의 시의원 선거운동을 도왔던 경험이 있어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꿈이 정치가였다. 민주주의 열망이 한참일 때 대학에 입학해 학생회 활동을 하며 야학에서 국사를 가르쳤고, 부모, 가정환경으로 제 때 배움을 충족하지 못한 분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이해하였다.

 

여성으로서의 핸디캡을 줄이고자 공부에 매진하여 안양대 교수가 되었다. 그 후에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통일교육분야도 관심을 가져 북한학 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경기대 대우교수, 한국방송통신대 외래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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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글쓰기’과목을 강의하는 모습

 

2008년부터는 안양시 만안구 제 18, 19, 20대 국회의원선거 토론회의 사회를 맡았었고, 경기일보에 교육관련 고정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사외이사가 되어 대주주의 횡포에 맞서 회사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피해자에게 심리적 경제적 법률적 지원을 하는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운영이사로 항상 약자의 편에 서 있었다. 지금도 사회복지협의회 자문위원과 신안초, 성문중 운영위원장, 근명중 운영위원, 녹색어머니회, 도서관 봉사 등 지역사회 복지와 청소년 교육을 위해 일하고 있다.
 
안양대학교에서 사고와 표현, 글쓰기, 의사소통, 인성교육, 한구석밝히기 리더십, 아름다운리더 리더십 등을 가르치며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안양시 제1선거구의 도의원(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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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토론회 사회를 진행하는 모습

 

한편 최근 2018년 여름에는 경기지역 안양시에 소재하고 있는 대학교수가 고 장준하 선생의 정신계승에 앞장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준하100년위원회는 포천시와 MOU를 체결하였고 서 교수는 국제위원장으로서 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맡는 등의 장준하100년위원회의 다양한 활동과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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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안양시 제1선거구의 도의원(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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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100년위원회는 포천시와 MOU를 체결
 
서정미 교수 스스로의 경쟁력이라면 열정과 다양한 경험이라고 이야기 한다. 먼저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지속하는 마음이 특별하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10년 이상을 한다. 공부 30년, 운동 20년, 선거방송토론 10년, 교수 22년, 방송통신대 강의 19년, 오랜 기간 지역사회의 각종 봉사활동 등 하고 싶고 마음이 닿는 일은 보수나 이익에 상관없이 몸과 마음을 다해 열중한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단순히 교수라는 직업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중학교 국어교사, 학원 강사,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다문화 교육,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 녹색어머니회, 범죄피해 운영이사, 더불어청년기업가네트워크 정책위원장,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사회자, 사외이사이자 소액주주대표 등의 역할로서 대상인 학생, 학부모 등 일반 주민들과 소통하고 약자의 이야기를 단순히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안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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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대학교 한구석밝히기 민들레코스 코디네이터로 진행하는 모습

 

이러한 진솔한 열정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맞고 틀림이 아니라 쌍방의 소통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다양성을 중요시한 고 장준하 선생의 정신을 계승 확산시켜 나가고자 한다. 보편적 상식 속에 다양성이 인정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장준하100년 어울림한마당’ 행사 소개?
2018년 8월 27일은 장준하 선생 태어나신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 분의 삶과 죽음은 오로지 ‘민(民)’을 위함이었다.
본인의 무덤을 쓰는 일에서도 국민의 삶을 걱정하여 밤나무를 심게 하였다. 그러기에 어울림한마당은 ‘대한민국’, ‘대한국민’의 사랑을 실천하며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정신을 실현하는 ‘장’이다.
 
하루 전인 지난 8월 26일 열린 장준하100년 어울림한마당에서는 “장준하 100년 메시지”를 통하여 문재인 정부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국민적 지지와 함성을 전달하였다.
 
장준하 선생 100년을 맞아 미완의 독립인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통일세상을 이루기 위한 축하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또한 장준하 선생과 함께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통일놀이 한마당이기도 하였다.
 
장준하100년위원회는 상임고문으로 이희호 여사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공동위원장으로는 박원순 서울시장, 장호권 사상계 대표,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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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100년 어울림한마당’ 사회자로서 진행하는 모습

 

장준하100년위원회는 “장준하 100돌”을 맞아 ‘장준하100년위원회’ 발족 및 기자회견, 8월 14일 인천 미추홀구 공연을 시작으로, 8월 18일에는  43주기 추모식을 포천시 약사계곡에서, 8월 26일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장준하 100년 어울림 한마당’을 열었으며 향후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면 연하동의 선생 생가 방문과 복원도 계획하고 있다.
 
장준하100년위원회 국제위원장을 맡으셨는데 소감을?
행사를 준비하며 여름방학 내내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했다. 하늘에서 이 행사를 내려다보는 장준하 선생께서도 기뻐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장준하 사건 등의 진실규명’에 좀 더 박차가 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준하100년위원회에서는 고 장준하 선생의 애국애족과 함께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고자 했던 그 정신을 계승하는 “장준하100년위원회” 발족 및 기자회견, ‘장준하선생 43주기 추모식’, ‘장준하100년 어울림한마당’ 등의 일련의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행사의 사전보도자료부터 당일 기사문을 작성하였고 무엇보다 모든 행사의 ‘사회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었다.
 
한편 어울림한마당 한 프로그램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부인인 ‘고 김희숙 여사의 시각으로 본 장준하’ 편집 영상 속 김희숙 여사로 분하여 내레이션을 하여 많은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천명’을 살게 될 때까지의 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모두 풀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의 역량과 열정을 맘껏 풀어내 용광로에서 녹여낼 수 있어서인지 활동 내내 기쁘고 신나게 일하였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나비들같이 서로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민의 가슴을 향해 날았다. 나는 이번 활동을 통해 앞으로 100년의 메시지인 평화와 공존에 가장 큰 의미를 담고자 했다.
 
이러한 행사들이 서울뿐만이 아니라 안양에서도 장준하의 나라사랑하는 정신을 알리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많이 개최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장준하 선생이 걸었던 지난 100년을 밑거름 삼아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할 미래 100년과 관련하여 그가 꿈꾸었던 ‘독립과 자주, 민주주의 정신’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지도할지를 고민 중이다.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장준하 선생의 다양한 개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정신을 이해하고 삶속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고자 한다.

장준하 선생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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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민을 위한 사랑, 한 마디로 돌베개의 여정이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8월 27일 평북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방 후 김구 선생과 함께 친일파와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운 대표적 민주운동가다.
 
장준하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쑤저우〔徐州〕지구에 배속되었으나 6개월 만에 탈출해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5년 1월 충칭〔重慶〕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도착하고, 곧바로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었다.
 
특히 미국 전략사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이 주관하는 특별군사훈련을 받고 국내에 특파되었으나 작전 도중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광복 이후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잡지『사상계』를 창간 간행하였고, 민주화운동에 누구보다 활발하게 나섰다. 이 과정에서 독재에 항거했던 그는 여러 차례 투옥되었으나, 옥중 당선으로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지난 1975년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모종의 거사를 준비 도중,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했다. 당시 유신정권은 하산 도중 실족사로 발표했으나, 사건 직후부터 박정희 정권에 의한 타살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원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아직까지 타살 여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1991년 8월 15일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1993년 4월 15일 제1회 한신상이 추서되었다. 1999년 11월 1일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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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특별법(장준하 사건 등 진실규명과 정의실현을 위한 과거사 청산 특별법)’ 국회통과는?
  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기도 한 국회의원 김해영 의원이 2016년 8월 16일 고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인 장호권 대표, 고상만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조사관과 함께 장준하 선생님을 비롯하여 과거 독재 권력에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을 규명하는 내용이 담긴 장준하 사건 등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을 위한 과거사 청산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이 특별법의 발의 이유는 기존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기간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장준하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장준하 선생 탄생 100돌, 올해 반드시 장준하 특별법이 통과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되는 대한민국 국민 대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별법 통과가 올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남북관계와 함께 곧 우리의 새로운 미래 100년을 알리는 출발점이자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원한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올 한해에만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남북관계가 전환적인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았던, 그래서 그저 이렇게 주저앉을 뻔 했던 분단체제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의 변화(CHANGE)는 곧 삶의 기회(CHANCE)이다. 우리의 삶속에 전쟁의 위협이 아닌 평화가 일상화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 기회를 통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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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신부가 스무 살 때 예약한 주례 약속을 2012년 44살때 이행

 

열심히 사는 사람이 더 잘 사는 사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며 모두가 행복한 사람,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민주를 넘어 평화와 통일에도 작은 힘을 보태 우리 아들딸들에게 꿈과 희망이 있는 미래를 전해주고 싶다. 이렇게 이루어진 한반도는 장준하 선생 등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 민주열사가 원하는 세상과도 진배없을 것이다.
 
[서정미 교수 대표경력]
안양대학교 교수(현)
안양시사회복지협의회 자문위원(현)
더불어청년기업가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겸 경기도 부대표(현)
장준하100년위원회 국제위원장(전)
안양시 만안구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위원, 사회자(전)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경기서부지부 운영이사(전)

 

 [기사는 선데이뉴스 235호에 게재된 내용이다]


 

[홍원표 기자 sundaynew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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