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중국 <人民日報>를 통해 본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

기사입력 2018.12.1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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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이번 2018학년도 2학기에 필자의 사이버강좌(경남대·경기대 학생 9백명 수강)을 마치고 새롭게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2학기 총 3,800명 수강 학생들의 성적 평가 때문에 잠시 촬영을 중단했는데, 다음 주 속개할 예정입니다. 그 와중에 자료를 틈틈이 보았는데, 기존 강의 자료 중에서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이 눈에 띠었습니다. 그 자료는 [난징대학살 추모관 르포]입니다. “유골 1000구 발견된 곳에 추모관. 12초마다 죽어나간 희생자 기려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폭염에도 하루 수만명 관람 "먼저 반성해야 용서도 하는 법, 일본을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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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1937년 12월 13일, 난징에 입성하는 일본군

 

"병사들이 웃는 얼굴로 어린이를 공중으로 던진 뒤 날카로운 총검의 끝으로 받아내고는 그것을 스포츠라고 부르는 모습을 봤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이런 일은 처음이다." - 중국 작가 린위탕(林語堂)은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의 참상을 이렇게 고발했습니다. 여름 어느 날,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시의 낮 기온은 38도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시내에 있는 난징대학살 추모관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부터 학생 단체 관람객, 노(老)부부까지 뙤약볕 아래 줄지어 추모관을 찾았습니다. 추모관 관계자는 "전국에서 온 방문객이 오늘 하루에만 수만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곳은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간 일본군이 난징에서 30만명의 중국인을 학살한 만행을 기록한 비극적 역사의 현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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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난징대학살 추모관

 

난징대학살 추모관에 들어서면 마치 무덤처럼 지하로 들어갑니다. 추모관은 1000구가 넘는 학살 피해자 유골이 발굴된 '만인갱(萬人坑)'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중국은 1982년 일본이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중국 침략'이란 문구를 '진출'로 바꾸자 격분했습니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일본) 침략의 비석을 세우라"고 지시했고, 1985년 추모관이 완공됐습니다. 추모관의 원래 명칭은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난징 동포 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입니다. 덩샤오핑이 직접 비석 글씨를 썼습니다...

 

난징에서 일본군이 중국 여성에게 저지른 만행은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성폭행한 뒤 학살한 사진만으로 벽면이 가득 찼습니다. 추모관 입구의 여성 조각상에는 '살해된 아기도, 생매장된 남편도 돌아오지 못하네', '달아나자, 악마가 온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추모관에는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공간이 있습니다. 한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당시 12초마다 중국인이 죽어나갔다는 의미"라고 알려줬습니다. 당시 희생된 시신은 기차 2500량을 채우고, 시신을 포개면 빌딩 74층 높이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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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2018년 12월 13일, 난징대학살 81주년-희생자 국가추모일

 

필자는 새로운 자료를 찾기 위해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를 검색했습니다. 마침 12월 13일이 제5회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 추모일이었습니다. 중국은 2014년 2월, 12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12월 13일을 난징대학살 국가 추모일로 지정했습니다. 중국은 지난 13일 난징대학살 81주년을 맞았는데, 일정에 따라 추모일 당일 난징대학살 희생자 추모식 개최 외에 별도로 6가지 추모 행사를 진행했는데, 반기 게양식, 난징시 일부 지역 추모 행사, 전국항전주제기념박물관 추모 행사, 해외 화교 및 교민 단체 추모 행사, ‘세계평화법회’, ‘촛불제’ 행사 등입니다. 그리고 첫 국가 추모 지역 관련 법규의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조례>는 또 추모 행사를 거행하거나 관련 시설을 참관할 경우에 진심으로 희생자들을 기리고, 조용하고 엄숙한 태도로 국가 추모 시설을 모독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되며, 시설 환경과 분위기에 맞지 않는 표식이 있는 옷차림을 삼가해 공공질서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습니다.

 

현지시간(미국 캘리포니아) 12월 8일, ‘미중평화우호촉진회’, ‘미국화교사회단체연합회’가 공동 주관한 ‘난징대학살과 진주만 사건 희생자 추모 행사’가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중미 2차 대전 기념비’ 앞에서 거행됐습니다. 현지시간(토론토) 12월 9일, 캐나다 첫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비가 토론토에 세워졌습니다. 현지 화교 단체, 토론토 주재 중국 총영사관, 캐나다 연방, 성, 시의회 및 유태인계 등 기타 민족 단체 대표 약 천여 명이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습니다. 이 밖에 일본에서도 난징대학살 희생자 추모 및 일본 침략군 만행 폭로를 위해 일본 지식인들이 히로시마,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해 역사를 되새기고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내일을 열어가길 호소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 언론은?

 

대한민국 <위키백과>는 “난징대학살이란 중일 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 이로 인해 약 30만 명의 중국인들이 학살되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1939년 4월에는 1644 부대가 신설되어 생체실험 등이 자행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를 난징 대도살이라고도 부르며, 일본에서는 난징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서구권에서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도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100인 참수(경쟁斬首競爭)은 중일전쟁 시기의 중국에서 일본의 두 군인들이 누가 먼저 100인을 군도(軍刀)로 살해하는지를 겨루었다고 알려진 사건. 1937년 11월 30일자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大阪每日新聞)과 12월 13일자 ‘도쿄 니치니치 신문’(東京日日新聞)에서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소위가 일본도(日本刀)로 누가 먼저 100인을 참수시키는지를 겨뤘다고 보도”했다고 기술했습니다.

 

1771년(영조 47)에 장한철(張漢喆)이 지은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에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는 비록 살생(殺生)만하고 표독(慓毒)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도록 했고, 뱀은 간악(奸惡)하나 약제(藥劑)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그놈의 표독하고 간악(奸惡)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라고. 일본 극우파(極右派)의 선조? 필자와 친한 일본 현대인들은 아주 예의(禮儀) 바르고 심성(心性)이 정말 곱습니다. 다만 일본 지도자들의 품성(品性)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매년 12월 13일이 되면 중국을 찾아 속죄(贖罪)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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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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