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뷰] 『쿠르스크』, 실화가 주는 슬픔, 답답함 그리고 분노.

마티에스 쇼에나에츠, 레아 세이두, 콜린 퍼스 열연!
기사입력 2019.01.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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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김건우 기자] 2일 오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2000년 8월 바렌해에서 발생한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쿠르스크(Kursk)』(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언론시사를 갖고 공개되었다.

 

쿠르스크 스틸컷.jpg

[사진='쿠르스크' 스틸 컷, 미하일과 타냐의 행복한 마지막 순간 / 출처=조이앤시네마]

 

(本 리뷰는 이미 결말이 난 실제 사건이므로 엔딩이 스포일러가 될 수 없음을 밝힙니다.)

 
쿠르스크 잠수함의 침몰은 2014년 세월호 참사와 닮아있다. 충분히 생존자를 구할 수 있음에도 러시아 해군(그리고 정부)은 낡아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잠수정을 가지고 몇번이나 구조에 실패를 거듭하고도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영국군이나 노르웨이의 구조 장비의 투입을 끝까지 거절하다가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허가를 내리지만 23명의 해군은 이미 희생이 되고 난 후였다. 그 결단의 시간을 조금만 앞당겼더라면 23명의 해군은 살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세월호에서 그렇게 외쳐댔던 골든 타임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이미 끝나버린 냉전시대의 연장선에서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러시아의 관점 혹은 자존심이 23명 자국 병사의 소중한 목숨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다. 어딘가 당시 세월호의 상황과 닮아 있지 않은가?

 

영화는 크게 두 개의 공간을 오가며 이 긴박한 스토리를 이어간다. 잠수함에 갇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을 비롯한 23명 승조원의 갇힌 공간과 그 바깥에서 그들의 생환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해군과 갈등하는 미하일의 아내 타냐(레아 세이두)를 비롯한 승조원들의 가족이 있는 항구 마을의 공간이 그곳이다. (물론 러셀 준장(콜린 퍼스)이 있는 영국 해군의 공간이 있고 그곳은 관조적 관점이라는 면에서는 중요한 공간이지만 감정적 비중을 따진다면 크게 이 두 공간으로 나누어도 무방할 것이다.) 두 공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떻게든 그들 자신보다 정부 혹은 해군을 믿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점점 불신으로 바뀌면서 잠수함의 승조원들은 자신들의 생존 본능을 믿으려고 하고 가족들은 해군에 대한 믿음을 거두고 항의로서 그들 가족의 적극적인 구조를 촉구한다. 하지만 개인이 권력기관인 국가나 해군을 이길 수는 없다.  그 절망 속에서 골든 타임은 지나가고 결국 희망은 마지막 절망으로 돌아오는, 가슴 아픈 결말을 맞닥뜨리게 된다.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는 잠수함에 갇힌 승조원의 살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사실적으로 연출한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다시 절망에서 희망으로 오가는 그들의 심리상태를 다양한 장치(세트나 미장센, 액션 혹은 승조원 간의 공포를 잊기 위한 유머스러운 대화 등)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관객들에게 이미 결말은 알고 있지만 그 순간 만큼은 그들의 희망을 응원하고, 질긴 생명줄을 최대한 지속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이 결국은 절망이 되리라는 것을 아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응원도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드는 비극점을 안겨준다. 마지막 부분, 물 속에서 부유하는 미하일의 공허함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다. 
 
또한 가족의 공간에서도 희망과 절망의 감정 기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어, 결국, 관객이 잠수함 공간에서는 승조원에게 이입이 되고 가족의 공간에서는 가족에게 이입이 되게 만들어 두 공간의 그 비극적 감정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만든다. 결국 그러한 감정의 정점은 미하일의 아들이 제독의 악수를 거절하는 장면에서 모이게 되는데 관객 또한 철저하게 미하일의 아들 편에 서서 해군(정부)을 바라보며 분노의 냉소를 짓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앞서 말한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의 치밀한 연출력에 의한 것들이다.
 
세상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사고를 국가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쿠르스크 사건과 세월호 참사는 충분히 국가의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가동되었다면 그 비극을 막을 수가 있었다. 『쿠르스크』는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 속에서 여전히 발생하게 될 비극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비극이 주는 사회적 아픔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영화였다.    
   
『쿠르스크』는 오는 1월 17일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김건우 기자 geonwoo3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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