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②하얼빈과 뤼순의 안중근

기사입력 2019.01.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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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렌 뤼순감옥 안중근 의사 감방 앞에서 필자.jpg
중국 다렌 뤼순감옥 안중근 의사 감방 앞에서 필자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조선대백과사전26>]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안중근! “안중근(1879.9.21.-1910.3.36).. 1907년 겨울 고향을 떠나 로씨야 원동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반일의병 투쟁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그는 반일의병대의 참모총장으로서 부대와 함께 1909년 6월 은덕에 진격하여 일제침략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의병대는 그 후 회령에서의 일제침략군과의 격전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타승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그는 조선침략에 앞장 선 일본의 고위급 반동정치가들을 처단할 것을 결심하고 첫 번째로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개인 테로의 길로 나가게 되였다. 이 무렵 그는 울라지보스또크의 <대중공보사>에서 독립운동자 리강, 우덕순 등과 손을 잡았으며 그 후 류동하, 조도선과도 알게 되어 뜻을 같이하게 되였다. 그해 10월 이또가 로씨야 재무대신 꼬꼬브쪼브와 만주침략문제를 둘러싸고 회담하기 위하여 할빈으로 온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이 절호의 기회에 이또를 처단할 결심 밑에 면밀한 계획을 짰다. 조도선, 우덕순이 책임진 조가 채가구역에서 이또를 처단할 계획을 실패하자 혼자서 할빈을 담당한 안중근”(518쪽)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만단의 준비를 갖춘 후 일제와 로씨아 군경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환영> 군중 속에 끼여 홈으로 들어갔다. 이또가 예정대로 할빈역에 도착하자 안중근은 권총으로 그자에게 조선민족의 원한이 서린 복수의 총탄을 안기여 사살하였고...그리고 쓰러진 원쑤들 앞에서 통쾌하게 <조선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위 사전, 518쪽)/ 안중근의 활동무대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북한:울라지보스또크)였는데,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위해 하얼빈 땅을 밟은 것입니다. 과거 필자가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대학교(現 극동연방대학교)에 학술교류 협의차 방문했을 때, 그의 독립운동에 대해 들었는데, 전설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하얼빈은 한순간의 역사 현장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업적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그 증거입니다. 2014년 대한민국 외교부는 하얼빈역에 중국 하얼빈시와 하얼빈 철도국이 건립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고 밝혔었습니다. 기념관은 의거 현장 바로 앞에 있던 귀빈용 대합실 일부를 개조해 200㎡ 규모로 건립됐으며, 중국 정부 관리 하에 무료로 개방되었습니다. 참관자들은 유리창 너머로 의거 현장인 플랫폼을 살펴보는 한편, 안중근 의사의 생애 및 의거사진과 설명자료 등을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 천장에 '안 의사, 이등박문 격살 사건 발생지'라는 문구도 붙였는데, 기념관 입구 외부 벽면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에 맞춰 오전 9시 30분에 고정된 대형 벽시계가 걸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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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렌 뤼순감옥 옛터 사형장 건물

 

중국 정부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을 비밀리에 진행해온 끝에 2014년 1월 19일 첫 공개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개관식에는 쑨야오 흑룡강성 부성장과 송시빈 하얼빈시 시장 등 중국 측 관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중국 신화통신은 사설을 통해 '안중근 기념관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후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뮤지컬 영웅 보면서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일본이 역사를 반성하는 날은 언제일까".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중국 가면 꼭 가봐야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최근 하얼빈을 방문했던 한 중국통은 하얼빈 신역 신축 현장을 소개하면서, “지금 현재 하얼빈역 신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역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 측에선 서둘러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재개관을 위한 협의를 중국정부와 하여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앞서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에서 소개한 감옥 이야기에 ‘사형장’을 덧붙입니다. 사형장 한복판에 안 의사 영정이 놓인 의자가 있습니다. 처형 직전 어머니 조마리아(?~1927) 여사가 보낸 흰 한복 차림입니다. 교수대에는 올가미가 매달려 있습니다. 처형장은 예전에 박물관 창고·직원식당으로 사용됐습니다. 1997년 다롄 상수도 공사도면이 발견되면서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됐고, 2006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습니다. 교수대 맞은편에 안 의사가 어머니·아내 등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걸려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 인사를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의 사형 선고 소식을 듣고 “우리 모자의 상면은 이승에서 없기로 하자. 살아서 나라와 민족의 욕이 될 때는 오히려 죽음을 택하라”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처형실 곁에는 큼직한 전시관이 있습니다. 안 의사 흉상을 중심으로 양쪽 벽면 가득히 안 의사의 유묵(복사품)이 진열돼 있습니다.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에게 써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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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哈爾濱)에서 한국 침략을 획책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탄환 세 발로 쓰러뜨린 안 의사는 11월 3일 뤼순감옥으로 이감됐습니다. 이듬해 3월 26일까지 144일간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했습니다. 자서전 <안응칠(安應七) 역사>(가슴과 배에 검은 점 7개가 있어 어릴 적 이름이 응칠이었다)를 완성했고, 동북아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동양평화론>(미완성) 앞부분을 썼습니다.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독립을 유지하며 서로 힘을 합쳐 근대문명국가를 건설하자는 내용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의군-푸른 영웅의 시대'가 2019년 하반기 KBS에서 방송된다고 합니다. 하얼빈시를 비롯 상해, 북경의 메이저급 미디어회사들과 한중 공동투자 및 중국 내 촬영에 참여...북미지역의 글로벌플랫폼회사까지! 이를 계기로 안 의사의 공적이 널리 알려지기 바랍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일은 유해 발굴입니다. 안 의사가 "내가 죽은 뒤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라고 했는데...하얼빈과 뤼순 곳곳을 샅샅이! 2019년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발견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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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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