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북한 수장들의 쌀밥과 고깃국

기사입력 2019.03.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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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죽 (떡갈나무잎 길경이나물 칡가루 등 함께 넣어 조리).jpg
강냉이죽 (떡갈나무잎 길경이나물 칡가루 등 함께 넣어 조리)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남한의 <우리말 큰 사전>(한글학회)을 보면 '남새'를 "무우, 배추, 아욱 따위의 심어서 가꾸는 나물."(752쪽)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1)>은 '남새'를 "부식물로 먹기 위하여 심어 가꾸는 밭작물 곧 ≪배추, 무우, 오이, 가지, 고추, 호박, 마늘, 파 같은것≫을 통털어 이르는 말. 잎남새, 열매남새, 뿌리남새가 있다. // ~를 심다. ~를 가꾸다. △ 겨울~, 고급~, 저장~, 줄기~, 풋~, 햇~, 뿌리~, 양념~, 얼갈이~, 열매~, 온실~, 잎~, 여름~, 봄~."(567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선 '의식주'를 '식의주(食衣住)'라고 합니다. 뜻도 남한의 "사람 생활의 세 가지 요소인 옷과 음식과 집." 보다 넓은 의미, 즉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위 사전,1909쪽)이라고 합니다. 이 풀이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집'을 '쓰고 사는 것'이라고 한 것과 '식(食)'이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 점만 가지고 북한에선 먹는 것이 삶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쌀밥에 고깃국'은 고(故) 김일성 주석이 1962년 10월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처음 언급한 말입니다. 하지만 1994년 그가 사망 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후 북한은 수십만~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한 '고난의 행군'을 겪었습니다. 이후 '쌀밥에 고깃국'이란 표현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2010년 1월 재등장했습니다. 당시 아들 김정일은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야 한다는 수령님 유훈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며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했습니다.

 

월북 문인 김동석이 1946년 쓴 수필을 보면 "아내는 강냉이밥을 푸면서, 배가 고파 상(床)에 덤비는 네 살 된 놈을 보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북한의 '강냉이밥'은 우리 주변에서 건강식으로 먹는 옥수수밥과는 다릅니다. 옥수수 낱알을 말려 정미소에서 쌀과 비슷하게 가공한 '강냉이쌀'로 지은 밥입니다. 탈북자 출신 식품학 박사 이애란씨는 강냉이쌀을 본 적이 없는 남한 학자들에게 그게 뭔지 설명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 인민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흰 쌀밥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동신문>이 전했습니다. 김정일은 그전에도 김일성의 '흰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 유훈(遺訓)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강냉이’는 남한의 ‘쌀’과 같았습니다.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강낭밥=강냉이밥’은 “쌀과 강냉이를 섞어서 지은 밥 또는 강냉이만으로 지은 밥.”, 그리고 ‘강냉이 가공’는 “강냉이를 가공하여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드는 일. 가루, 물엿, 포도당, 전분, 단백질, 옥쌀기름, 항생제, 집짐승먹이 등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흰쌀밥에 고깃국’이 꿈이었던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1993년 12월에 행해진 제3차 7개년 경제 계획의 총결산을 통해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한 김일성은 ‘경제 살리기’에 안간 힘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1992년 신년사에서 ‘이팝과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은 채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직접 현장에 나가 ‘일꾼’들을 다그쳤습니다. 김일성은 기근에 대한 공포 때문에 1994년 상반기에만 50여 차례의 현장지도에 나섰습니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는 옛말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7월 25일의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도 ‘죽어 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하지만 1994년 7월 9일 정오 북한은 방송을 통해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2시에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음을 보도하였습니다. 그의 ‘흰쌀밥에 고깃국’ 꿈이 깨저버린 것입니다.

북한-조선인민군-534부대-직영-농장-보리밭에-선-故-김정일.[사진자료-2003.8.KOREA].jpg
북한 조선인민군 534부대 직영 농장 보리밭에 선 故 김정일.[사진자료-2003.8.KOREA].

 

1990년대에 천재지변이 계속되자 김정일은 '비공개 연설'에서 “배고파 일하러 나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불러 일으켜 풀 먹는 집짐승과 버섯 같은 것이라도 기르게 하면 식량보탬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다큐멘터리 김정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고 했던가. 계속되는 물난리와 가뭄(북한에선 보통 가물이라고 함)에 '나랏님'인들 어찌 했겠습니까. 2011년 12월 19일 정오, <조선중앙방송>은 이틀 전인 12월 17일 김정일이 현지 지도 방문을 위해 탑승한 열차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도 ‘흰쌀밥에 고깃국’ 때문에 저승길?

 

북한은 1993년부터 역사적으로 유래 없는 자연재해와 공산주의권 나라들의 붕괴, 그리고 서방세력의 경제봉쇄 등으로 최악의 경제난 및 식량난을 겪었는데, 이를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릅니다. 약 6년간의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북한은 이제 강성대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주민 33만 여 명이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굶어 죽었습니다. 2003년에 발표된 국제앰네스티의 리포트에서는 북한 인구의 절반을 넘는 1,300만 명이 기근(饑饉)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평양강냉이가공공장이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출처-조선의 오늘].jpg
평양강냉이가공공장이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출처-조선의 오늘]

 

2019년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혹한 시련과 난관'을 언급하며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월 9일 보도했습니다. 김정은은 또 '북한의 영원한 경제 목표'로 불리는 '흰쌀밥에 고깃국' 표현도 집권 이후 처음으로 썼습니다. 그가 이를 언급한 것은 3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書翰)에서입니다. 김정은은 서한에서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과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은이 ‘수령님(할아버지)과 장군님(아버지)의 평생 염원(念願)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요? 부자 나라 수장(首長)과 만나 이름을 날린다고 해결? ’비핵화‘는 굶주림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백성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려면 무엇보다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입니다.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은 <生活의 發見>에서 “민중이 굶었을 때, 몇 개의 제국(帝國)은 붕괴하고, 여하한 강력한 정권도 공포정치도 사라져 갔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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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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