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

기사입력 2019.05.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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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랴오닝 성 뤼순 시 뤼순커우 구 '뤼순 일아(日俄)감옥 구지(舊地) 박물관(뤼순 감옥) 앞에서 필자.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 <조선대백과사전 26>] “안중근(1879.9.21.-1910.3.36) : 일제의 조선 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한 애국렬사. 황해도 해주에서 안태훈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하는 한편 말타기와 총쏘기를 련습하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다. 일제의 조선침략책동이 날로 더욱 로골화되고 봉건통치배들의 부패타락이 극도에 이르러 망국의 위협이 짙어 가고 있던 정세에서 안중근은 나라의 독립을 지켜 싸울 방책을 모색하고 해외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1903년에 중국 상해와 치프 등지를 돌아보았다.

 

일제침략자들이 1904년 로일전쟁을 일으켜 우리나라에 대한 무력침공을 감행하고 1905년에는 침략적인 <을사5조약>을 날조해 내자 애국적 의분을 참지 못한 안중근은 반일구국투쟁에 용감히 나섰다...1909년 10월 26일 만단의 준비를 갖춘 후 일제와 로씨아 군경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환영> 군중 속에 끼여 홈으로 들어갔다. 이또가 예정대로 할빈역에 도착하자 안중근은 권총으로 그자에게 조선민족의 원한이 서린 복수의 총탄을 안기여 사살하였고, 그자를 구원하려고 모여 온 일제의 가와시마 령사, 모리 서기관, 다나까 만철리 사장을 차례로 쏘았다. 그리고 쓰러진 원쑤들 앞에서 통쾌하게 <조선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였다...(이상 “청로 이용웅 칼럼-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 2019년 1월 19일 기사)

 

필자는 위 “①다렌 뤼순 감옥과 안중근”에 이어 ②하얼빈 역과 안중근”을 집필 중이었는데,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보도자료’ 때문에 <“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를 먼저 적습니다. 기록원은 “2019년 5월 29일(수) 조간.(5.28. 15:00 이후)부터 보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국내 언론들은 앞 다투어 기사를 올렸는데, 대부분 자료를 설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어떤 신문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필자는 ‘보도자료’를 원문 그대로 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다음은 ‘보도자료’입니다.

 

“나는 조국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 그는 역시 영웅이었다.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기사 수집·공개/ -체포과정, 심문내용, 러시아의 상황인식 등 사료적 가치 매우 높아/ □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너희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일제의 첫 심문부터 사형집행까지 안중근 의사의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과 발언 내용 등을 소개한 러시아 언론 보도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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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5월28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국가기록원이 안중근 의사 의거와 사형집행 등을 담은 러시아 신문을 공개한 가운데 국가기록원 직원들이 신문기사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28일 설립 50주년 및 공공기록물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하바로프스키 등의 지역신문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관련 기사 24건을 수집·공개한다./ ❍ 공개된 기록물은 국가기록원이 지난 2015년 독립운동과 우리 동포 관련 기록물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대상으로 기획·수집하던 중 발굴된 것인데, 안 의사 의거일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안의사 관련 보도이다./ ❍ 그동안 안중근 의사 관련 러시아 신문기사가 단편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으나, 러시아 극동지역 여러 신문의 관련 기사를 망라하여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들 신문에는 시종일관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 차이쟈고우에서의 의거 준비, 체포과정,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 ❍ 「달리니 보스톡지(紙)」는 의거일 이틀 뒤인 1909년 10월 28일자에 26일 아침 9시 최전선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공작(당시 조선 통감)은 치명적 총상을 입었고, 조선인으로 밝혀진 범인이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붙임 1 번역문 참조)


「쁘리 아무리예지(紙)」 11월 2일자는 10월 24일 정오, 하얼빈에서 남쪽으로 가는 차이쟈고우의 우편열차 정거장에서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이 내리는 것부터 다음날 아침, 거사를 위해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날 때 서로 눈물을 흘리며 큰 절로 인사하는 장면까지 르포형식으로 게재했다. 아울러 일본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병을 얻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해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실었다.(붙임2 번역문 참조) / ❍ 「보스토치나야 자랴지(紙)」 11월 4일자는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다.”라고 말한 안 의사의 진술을 그대로 실었다.(붙임3 번역문 참조)


신문들은 안중근 의사가 현장을 지휘하는 러시아 장교에 의해 기차역으로 옮겨진 뒤 감옥으로 이송되는 과정도 상세히 보도했다. / ❍ 「쁘리 아무리예지(紙)」11월 6일자는 1일 있었던 이송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기차에 오르는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의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안중근은 손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열차에는 마지막으로 안중근이 올라탔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완전히 무관한 모습을 보였다고 묘사했다.(붙임4 번역문 참조)


또한 신문은 안중근 의사의 법정진술과 사형선고 당시의 상황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 ❍ 「쁘리 아무리예지(紙)」 1910년 2월 27일자는 사형을 선고한 2월 26일 재판 상황에 대해 보도하였는데, 1시간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였고,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으며, 안중근의 어머니는 가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한 것으로 보도하였다.(붙임5 번역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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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하얼빈 의거’ 후 체포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첫 심문 내용이 보도된 러시아 ‘프리 아무리예지(紙)’ 1909년 11월 2일자 지면. 국가기록원 제공

 
특히,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와 관련된 보도기사가 주목을 끈다. 「우수리스까야 아끄라이나지(紙)」 1910년 4월 21일자는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직후 교도소의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하였다.(붙임 6 번역문 참조) 종전 안중근 의사의 매장지는 교도소 내의 묘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공개와 관련 이소연 국가기록원장은 “안중근 의사와 하얼빈 의거에 대한 러시아의 인식뿐만 아니라, 의거 준비, 체포와 일본영사관 인계과정 등 사후 조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안다.”라며,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을 맞아 독립정신을 실천했던 안 의사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을 국민과 함께 하고자 공개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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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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