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魯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③용어풀이로 살펴본 북한의 교예예술

기사입력 2019.08.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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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교예-실황록화-평양모란봉교예단-공연.jpg
북한 교예-실황록화 평양모란봉교예단 공연. 비디오 표지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朝鮮語辭典>에는 ‘곡예(曲藝)’, ‘교예(巧藝)’, ‘곡마(曲馬)’라는 어휘가 없습니다. 1946년에 발간된<조선어사전>(문세영,조선어사전간행회)에는 “곡마”만 들어 있습니다. 해방 후 간행된 남한의 사전에는 ‘곡마’는 어느 사전에나 있고, 대부분 ‘곡예’가 들어 있습니다. <국어대사전>은 ‘곡예’를 “연예(演藝)의 한 가지. 줄타기․공타기․곡마 등 보통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여러 재주를 부림”(278쪽)이라고 했고, <우리말 큰사전>은 “주로 사람들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묘한 기술로 부리는 여러 가지 재주. 곡마, 요술, 재주넘기, 줄타기 따위.”(326쪽)라고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2>은 ‘곡예’를 “고도의 훈련으로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흥행적 연예(演藝). 신체의 유연성이나 민첩성 등을 응용하여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동작을 취하거나, 도구나 동물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능을 총칭한다. 전통적인 것으로 줄타기․장대타기․죽방울받기․공놀리기․접시돌리기․마상재(馬上才)․불토하기․굴레엮기․굴레빼내기․무동(舞童) 등이 있고, 현대의 공중그네와 동물곡예 등이 있다.”(699쪽)고 했습니다.

 

남한의 사전과 백과사전 대부분에선 ‘교예’라는 말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브리태니커세계대백과사전>(279쪽)은 ‘교예’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백과사전은 “북한에서 단순한 서커스와는 달리 곡예의 체육 문화적 측면과 무용․연극 등의 예술적 측면을 적절히 결합한 군중예술의 하나. 북한은 남한에 없는 ‘교예’라는 독특한 공연종목을 발전시켜왔는데, 교예는 문예 및 대중오락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군중노선에 입각하여 대중예술로서 자리를 잡아 온 것으로 알려진다. 곡예는 조선시대에 유랑예인집단에 의한 묘기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른바 서커스가 들어오고, 전래의 곡예들은 전통이 단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백과사전은 용어풀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군중예술’입니다. ‘군중예술’은 남한과 북한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없는 용어입니다. 북한에서도 ‘군중예술’은 과거에 사용하던 말입니다. 연간(年刊)인 <조선중앙년감>에선 1963년판부터 ‘군중예술’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북한에는 ‘군중무용’, ‘군중문학예술’등의 단어가 있습니다. <조선말대사전(1)>은 ‘군중문학예술’을 “전문 작가, 예술인들이 아닌 광범한 대중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는 문학예술.”(343쪽)이라고 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3)>도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는 문학예술”(289쪽)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에서의 ‘교예’는 일반 백성들이 창조하고 연희하는 예술이 아니라, 음악예술이나 무용예술처럼 예술인들에 의하여 창조되고 연희되는 문학예술의 한 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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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교예-인기있는 공중교예. 북한 월간 조선

 

‘교예’라는 용어의 어원은 중국어입니다. <漢韓大辭典>(제4권)을 보면, “巧藝 ① 재주. 기예(技藝). 《晉書, 載逵傳》 少博學, 好談論, 善屬文, 能鼓琴, 工書畵, 其他巧藝, 靡不畢綜. ② 세설신어(世說新語)의 편명(篇名)”(945쪽)이라고 기술했습니다. 일본에서 발간된 <大漢和辭典>(卷四)도 《漢韓大辭典》과 동일하게 기술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은 ‘교예’를 “육체의 기교동작을 기본적인 형상수단으로 하여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감정을 반영하는 예술. 고도의 부단한 숙련으로 이룩한 기교로써 인공적으로 조성해놓은 장애를 극복하거나 요술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또는 동물을 길들여 재주를 부리게 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최대한의 창조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예술”(642쪽)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예술>이란 문예전문 월간지에 ‘교예’라는 어휘가 처음 쓰인 것은 1972년 4월호입니다. 이 책에 “어버이사랑의 품속에서 태여난 교예”라는 글이 수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북한에서 쓰인 ‘곡예’나 ‘교예’를 영문으로 표기할 때는 지금도 똑같이 ‘circus’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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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교예-2000년 남북정상회담기념 평양교예단 공연

 

<조선대백과사전(18)>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문학예술→교예)를 보면, ‘교예예술의 진정한 발전’은 김일성이 1945년 9월 19일 소련 함정 푸카초프 호를 타고 원산항에 내린 뒤부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10 여 년간의 <조선중앙년감>들을 보면, ‘문학예술’편(1945~1956)에 ‘교예’나 ‘곡예’에 대해 전혀 거론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선중앙년감(1957)>에 ‘곡예 및 대중예술’이 처음 수록되었는데, “1956년 년간에 민족 곡예 예술의 발전과 평이하고 다양하며 대중에게 친근한 예술 쟌르 발전에서 현저한 전진을 보았다. 국립 곡예 극장에서는 민속 잡기와 기타 민족 곡예 유산을 발굴 계승하여 이를 현대 곡예에 광범히 도입 적용함으로써 4월 공연에서 조형 곡예―1인 탁상, 3인 탁상, 그네 재주―원형 그네, 삼중 그네, 동물 곡예―말 재주, 개 재주, 곰 재주, 발 재주― 사람 다르기, 우산 돌리기, 사다리 재주 그 밖에 상모와 법고, 단지 꼽기, 공중 비행등이 새로 보충되였으며 제10회 공연에서는 4월 공연의 레빠또리들을 더욱 완성시키는 한편 장 대 오르기, 줄 돌리기, 의자 비행, 이중 사다리, 이마 재주, 회전 그네, 대 그네 등이 새로 보충되였다.”(115쪽)고 기술했습니다.

 

<조선중앙년감(1958)>에는 “곡예 및 대중예술-1957년에 민족 곡예를 개척 발전시키며 평이하고 다양한 예술 쟌르 발전에서 현저한 전진을 보았다. 국립 곡예 극장에서는 민족 잡기와 기타 민족 곡예 유산을 발굴 계승하여 이를 현대 곡예에 광범히 적용 도입하는 창조 사업과 공연 활동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였다. 1957년에 새로 창작 공연된 우수작으로서는 널뛰기, 류동 그네, 공중 조형, 2중 발사다리와 동물 곡예로서 곰 권투, 곰 장해물 넘기, 기타 개, 원숭이 재주가 있으며 기마술로서는 선거함, 만물상자, 병안의 수건 없애기, 오리 나오기, 물색 변하기 등 일련의 작품등이 있다. 그중《줄타기》《널뛰기》《그네》등은 위대한 사회주의 10월 혁명 40주년 기념 각국 친선 무대 곡예 공연에 참가하였다.”(147쪽)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교예’ 와 남한의 “서커스‘ 모두가 동일하게 ’서커스.circu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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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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