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행복을 찾아 떠나는 나그네

홍성민/컬럼시인(교육학원론 저자)
기사입력 2019.12.2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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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컬럼시인(교육학원론 저자)

 

[선데이뉴스신문=홍성민 칼럼]인생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취향의 행복을 찾아 떠도는 나그네가 아닐까 싶다. 오늘 저녁 서울에서 인천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예쁘장한 두 청춘 남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볍게 끌어안고 이마에 키스하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귀여운 모습을 보았다.

 

 

 

 저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할 대상이 있고 의지할 대상이 있고 서로의 기쁨을 나눌 대상이 있으니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저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영원할 것 같은 꿈과 희망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유효기간이 삼년 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사랑도 결혼 이전과 결혼 이후의 삶은 또 다를 것이다.

 

 이 청춘 남녀 옆에 한 어른이 있었는데 그 분은 어디가 아픈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찡그린 얼굴에 짜증난 표정을 보면서 이 청춘 남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쪽은 행복에 겨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한쪽은 괴로워서 당장 누군가에게 화풀이라도 할 그런 표정으로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심하게 자기의 일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인생은 행복이냐 아니면 짜증난 인생이냐 아니면 무심한 인생을 사느냐의 세 갈래로 구분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모든 인생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행복이 자기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고뇌와 슬픔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행복은 누구나 원하지만 그렇게 쉽게 잡히지 않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제 대략 육십년을 살다보니 행복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아는 때가 온 것 같다. 책으로 경험으로 명상으로 오랫동안 행복을 생각해 보니 행복이 뭔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행복에는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채우는 행복, 둘은 비우는 행복, 셋은 깨닫는 행복, 끝으로 행하면서 완성되는 온전한 행복이다.

 

 먼저 채우는 행복이 행복의 시작이다. 돈이 있어야하고 건강이 있어야하고 지식이 있어야 행복의 기초가 이루어진다. 돈과 건강과 지식이 없이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기초적인 요구가 채워져야 기본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자신의 재능을 채워야 행복하다. 이러한 기본을 채우지 않고 행복할 수는 없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한 후진국에서 행복이야기는 무의미하다. 

 

 두 번째는 비우는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채우는 행복에는 열중하지만 비우는 행복에는 아직 배우지를 못한 것 같다. 인간은 욕심을 비우고, 집착을 비우고 자아를 비워야 행복해 질 수 있다. 붓다는 그래서 인생의 문제를 욕심, 분노, 어리석음 이 세 가지로 보았다. 인생이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오는 것은 내 안의 욕심을 비우지 못해서 오는 것이다. 있는 것으로 자족하고 감사의 인생을 살려면 내 안의 욕망을 비울 때 가능하다. 행복은 비워야 오는 것이다.

 

 세 번째 행복은 깨닫는 행복이다. 임종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이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였나요? 물었더니 대다수가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라고 말했다. 필자가 삼십대 시절 마땅한 직업이 없어서 영업을 할 때가 있었다. 마침 동창을 만났다. 그에게 나는 “이 치약 좀 사줘라 그러면 너는 복 받을 거야” 이 말을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너 이런 식으로 영업하지 그래가지고 물건이 팔리겠니.” 하더니 물건도 안 사주고 그냥 갔다. 그 때 필자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창피하던지 아 맞아 내가 영업을 해야 하는데 엉뚱한 말로 영업을 하니 장사가 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어리석은 추억이 있었다.

 

 행복은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자신과 진리에 대해서 깨달아야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학문을 배우고 독서를 하며 경전을 탐구하는 이유는 인생과 자신을 진리의 눈으로 발견하여 지혜롭게 살기 위한 것이다. 물론 경전은 영생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짐승이냐 인간이냐 성인이냐의 삶의 구분은 내가 어느 단계에서 깨달음을 얻었느냐에 달려 있다. 깨닫지 못하면 짐승처럼 산다.

 

 마지막은 온전한 행복이다. 온전한 행복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인생이 있고, 내면의 영혼이 신과 일체가 되어 영원한 사랑의 존재이며 영광의 실체인 성화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자신의 재능을 완성하여 인류에 봉사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인간은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자리이다. 이것이 종교가 원하는 영원한 행복의 진리이다. 

 

 기본적인 것은 채워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채웠으면 이젠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비웠다면 깨달아야 참 인생을 살 수 있다. 깨달은 자가 마침내 진리의 실체로서 참 인생을 살 때 영원한 행복이 안팎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기본을 채우고, 탐욕을 비우고, 진리를 깨닫고, 사랑의 실체가 되어 온전한 행복을 누리며 인생을 멋지게 걷고 싶지 않으십니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채우고 비우면서 진리를 깨달아 사랑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고난이 오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진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돈과 지위 욕망의 행복은 갈증해소를 위해 계속해서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오늘부터 참 행복을 찾아 떠나는 멋진 여행길 함께 누려보는 것은 어떠할는지요.
 감사합니다.   

 

홍성민/컬럼시인(교육학원론 저자)

 

 
 

 

[선데이뉴스 기자 sundaynew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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