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人文學 特講★ (1)싸르트르(Sartre)와 [存在와 無]

기사입력 2020.07.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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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뽈 싸르트르(Jean-Paul Sartre) 生前 모습.

 

[선데이뉴스산문=이용웅 칼럼] [인문학(人文學/humanities)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합니다. 서양에서 인문학에 대한 연구는 시민들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의 기준으로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 동안에, 4과(음악, 기하, 산술, 천문)와 함께, 3학(문법, 수사 그리고 논리)을 포함하여, 7가지의 자유 인문 학문의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과목들은 인문학에서 기술들 또는 “행위의 방법들”로써 강조되어, 중세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하나의 중요한 전환이 발생했으며, 그때 인문과학은 전통적인 분야로부터 문학 및 역사와 같은 분야로의 전환에 상응하는, 실용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학문적인 과목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0세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에 의해 재차 논의되었습니다.]

 

筆者는 1963년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시작한 이래, 문학과 관련된 사람들을 수없이 접했습니다. 비록 책 속에서지만 진실을 찾아 헤매는 많은 문호들을 만났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勞心焦思하는 작가들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프랑스의 장-뽈 싸르트르 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고 국제적인 스타”였으며 “고갈된 프랑스가 아직도 세계에 제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출 상품”인 실존주의의 주역이었던 싸르트르의 삶과 죽음, 특히 인간해방과 인간혁명을 외치며 공산당원 ․ 노동자 등과 인간의 자유 실현을 생각했던 그가 전후(戰後) 공산당 비판에 몰두했던 사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삼팔선’의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민주․공산주의라는 양극 논리 속에서 성장한 필자에겐 싸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그의 공산주의적 사고(思考)가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해일(海溢)도 글짓기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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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뽈 싸르트르-프랑스 사진작가 브레송(Bresson이 찍은 사진.

 

장-뽈 싸르트르(Jean-Paul Sartre/1905~1980)는 아내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1908~1986)와의 계약결혼으로도 유명하며 보부아르와는 부부적인 관계 이외에도 학문적인 동반자로서 서로의 원고를 검토해주는 평생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철학을 실존주의로 명명한 최초의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1960)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자이자, 메를로-퐁티(Merleau-Ponty/1908~1961)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 및 현상학을 대표하는 文豪! 그의 별명은‘실존주의의 敎皇’입니다.

 

1964년에 자전적 소설〈말/Les Mots/1963)>을 써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그는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데올로기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나는 자본주의가 준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그런데 당시의 노벨상위원이었던 라르스 일렌스텐(Lars Gyllensten)의 회고록에 따르면 노벨상을 거절했던 싸르트르는 정작 몇 년 후 생활이 곤궁해지자 변호사를 통해 노벨상위원회에 뒤늦게라도 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위원회 측의 대답은 “나가라.”였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실존주의적 인간이었다고나 할까요?

 

몽파르나스 공원묘지(Cimetiere du Montparnasse)-싸르트르&보부아르..jpg
몽파르나스 공원묘지(Cimetiere du Montparnasse)-싸르트르&보부아르.

 

혹자는 싸르트르가 1945년에는 실존주의자였으나, 후일 구조주의자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의 대표작은 소설들 <구토(La nausée/1938)>, <벽(Le mur/1939)>, <자유의 길(Les Chemins de la liberté/1949)>, 철학서들 <상상력(L'Imagination/1936)>, <상상계(L'Imaginaire)/1940)>, <존재와 무(L'Etre et le néant)/1943)>,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1946)>, <변증법적 이성 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érature?/1948)>, 희곡들 <파리떼 Les Mouches/1943)>, <닫힌 방(Huis-clos/1944)>, <더러운 손/Les Mains sales/1948)>, <악마와 善神/Le Diable et le bon/1951)> 등.

 

그의 대표자 중에서 <존재와 무>를 소개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작가 싸르트르는 이 책에서 卽自存在(存在)와 對自存在(無)의 관계를 해명함으로써 현상을 성립시키는 존재의 구조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原題 <L'Être et le néant : Essai d'ontologie phénoménologique>는 싸르트르의 주된 목적은 개인의 존재에 앞서 개인의 실존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작성하면서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둔 것은 자유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싸르트르의 주장에서 인간은 그가 ‘ens causa suid’라고 부르고 많은 종교와 철학자가 신과 동일시한 "완결"의 환상에 시달리는 피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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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르트르-존재와 무(L'Etre et le néant))-한국어 번역본

 

그의 의식은 존재를 무화(無化)하는 것으로서, 어떠한 대상을 의식하는 것은 암묵리에 그 대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서의 자기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은 자기에 대해서 존재하는 것, 곧 대자존재(對自存在)라고 불리며, 사물처럼 의식을 갖지 않은 것은 그 자체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 곧 즉자존재(卽自存在)라고 불립니다. 대자(對自)가 자유롭다는 것은 즉자(卽自)를 무(無)에 의해 침식하는 것이며, 대자는 즉자로부터 무에 의해 단절되어 있으므로 지탱이 없는 불안으로서 자기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싸르트르는 반성이 자기 기만적으로 즉자와의 일치를 구하는 불순한 그것이 아닌 순수하게 대자에 철저하여 자유로운 자기에의 전적 현전(全的現前)을 수행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으며, 이렇게 해서 근본적 회심(回心)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순수반성 또는 정화적(淨化的) 반성의 동기부여에 대한 연구를 과제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반성은 스스로 타자가 되려는 의식이며 다른 의식의 존재를 예상하지만, 의식은 대자존재인 동시에 대타존재(對他存在)이므로, 인간은 자기에 대해서는 주체이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객체에 불과한 신체를 갖는 존재이며, 타인의 시선 밑에서는 그 주체성은 부정되고 자기에 속하는 세계가 상실되어 가는 것을 경험합니다...싸르트르는 이 책에서 즉자 존재(존재)와 대자 존재(무)의 관계를 해명함으로써 현상을 성립시키는 존재의 구조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끝으로 싸르트르의 소설 <구토(嘔吐)>와 함께 해봅니다. “긴요한 것은 그것이 우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는 것을 정의한다면 존재라고 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다만 단순히 거기에 있다고 하는 말이다. 존재하는 것은 나타나며 만나고 그냥 그대로이다. 허나 결코 존재하는 것은 연역(演繹)할 수는 없다. 이것을 이해한 사람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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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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