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장마를 통해 본 황해남도와 신천학살사건 · 九月山

기사입력 2020.08.1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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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극복을 위한 북한의 선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 前 首長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5년~1999년 사이에 일어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며 경제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여러 자연재해로 식량 생산에도 문제가 발생하면서 기아(饑餓)가 발생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아사자의 수는 명확하지 않으나,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 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1996~2000년 간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 대기근은 1995년의 대홍수로 촉발되었습니다.

 

그뒤 북한 경제는 ‘기아’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 경제가 지난 3년 만에 역성장에서 벗어났습니다. 농작물 수확량이 늘어난 데다 관광지구에 건물을 새로 올리는 등의 영향이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수준 만큼의 극심한 경제난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 “십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 산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한반도의 장마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장맛비 때문에 戰戰兢兢! 集中暴雨! 소 떼가 섬진강 홍수 피해 해발 531m 사성암까지 올라갔습니다. ‘지리산의 관문’ 구례읍내가 섬진강 범람에 물바다 됐습니다. 물 폭탄으로 물에 잠긴 부산(釜山), 철원 등 집중폭우...북한 땅도 장마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오늘의 북한 수장(首長) 김정은은 아마 코로나보다 장마가 더 두려울 것입니다. 그에게 ‘집중폭우’는 ‘惡夢’일 것입니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 폭우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황해남도 당위원회가 최근 비상회의를 열고 장마 피해 대책사업을 마련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황해남도 소식통은 8월 3일 “며칠 새 쏟아진 폭우에 피해를 본 황해남도 지역들에 대해 즉각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위의 지시로 도 당위원회가 최근 비상회의를 열었다”고 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황해남도에서는 최근 내린 많은 비로 상당수 농경지가 침수되었습니다. 북한은 1954년에 황해도를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했습니다.

 

道黨은 긴급회의에서 우선 조사된 피해 세대들에 가구당 옥수수 17kg씩을 공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식통은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도 안의 주민 세대 대부분이 식량이 부족한 상태인데,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도당의 지시에 따라 피해복구 작업에 나섰다”며 “주민들 속에서는 냄새가 심한 도랑 수로 파기, 외부공동변소 퍼내기가 그중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황해남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신천군 등입니다. 필자는 과거 황해남도 신천군 농기계수리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천군의 농촌은 땅이 비옥하고, 사람들은 비교적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在日本 <조선신보>는 2019년 10월 28일 황해남도 신천군 새길협동농장이 북한의 농업부문에서 처음으로 통합생산체계를 구축하였다고 평양발로 보도했습니다. 그만큼 신천군은 부유한(?) 농촌입니다. 그런데 최근 홍수를 만났으니 김정은이 걱정 泰山(?).

 

황해도 신천군 信川郡 → 황해남도 신천군! 동쪽으로 재령군 경계까지 30리, 남쪽으로 해주 경계까지 45리, 서쪽으로 송화현(松禾縣) 경계까지 8리, 북쪽으로 안악군(安岳郡) 경계까지 15리, 서울과의 거리는 4백 40리 입니다. 신천군은 원래 고구려의 승산군(升山郡)이었습니다. 고려조에 신주(信州)로 고쳤으며, 성종(成宗)조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습니다. 현종(顯宗)조 초기에 방어사를 폐지하고 황주(黃州)에 속하였으며,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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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신천군 신천박물관-반미(反美) 계급 교양 학습장-사진 조선DB.

 

현재 신천읍에 신천박물관(信川博物館)이 있습니다. 1958년 3월 창립되었고 김일성(金日成)의 현지 교시에 의해 1960년 6월 25일 개관하였습니다. “6·25 당시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자료나 증거물들을 통하여 근로자들을 반제·반미사상으로 교양하는 박물관” 입니다. ‘신천대학살’을 ‘선전선동’하기 위해 설립한 곳입니다.

 

과거 신천군은 ‘悲劇의 現場’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중 일어난 사건으로, 1950년 10월, 황해도 신천군에서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천 여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는 사건을 말합니다. ‘신천 학살’ 혹은 ‘신천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에서는 ‘신천대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신천학살 사건은 1950년 10월~12월 사이 북한 황해도 신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말합니다. 북한은 이를 두고 미군이 저지른 학살이라고 주장하며, 1958년 3월 김일성 지시에 의해 이곳에 신천박물관을 지어놓고 반미교육의 중심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신천에서 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주장하는 민간인 숫자는 3만5383명, 그 밖에도 안악군에서 1만9천여 명 等 황해도 일대에서만 12만여 명의 주민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언젠가는 한반도가, 한민족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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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신천군과 은률군에 걸쳐 있는 명산 九月山.

 

그런데 이곳에는 名山(5대 명산=백두산, 묘향산, 구월산, 칠보산, 금강산)이 있습니다. 황해도 신천군 용진면과 은율군 남부면·일도면에 걸쳐 있는 구월산(九月山)입니다. 높이 945m이고, 기반암은 흑운모화강암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월산이라는 말은 이 산이 소재하는 구문화현(舊文化縣)의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궁홀, 또는 궁올(弓兀)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궐구(闕口)로 변하였고, 다시 미화되어 구월산으로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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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신천군 농기계수리공장 앞에서 공산당원과 筆者(右)

 

구월산에는 고려 시대 이후 불교 사찰이 많이 지어졌는데, 정곡사 等 절과 미려(美麗)한 경관이 아주 뛰어납니다. 정곡사는 고려 시대의 여러 임금들이 절 부근의 산수풍경을 사랑하여 자주 수레를 멈추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관광하기 쉬운 곳이 신천군과 구월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신천학살’이라는 숙제는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아주 가까운 ‘구월산’의 절경(絶境)을 찾는 ‘韓民族觀光’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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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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