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魯 李龍雄 칼럼] 중국의 연날리기와 대한민국의 민족 技藝 연날리기

기사입력 2020.10.20 22:26
댓글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제37회-중국-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사진-1.jpg
제37회 중국 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玉에도 티가 있다는데, 가을하늘에는 티끌 하나 없구나! 누구 솜씨로 물들인 것이냐? 남(藍)이랄까, 코발트랄까 푸른 물이 뚝뚝 듯는 듯 합니다. 내가 언제부터 호수(湖水)를 사랑하고 바다를 그리워하고, 대양(大洋)을 동경(憧憬)하였던가? 그러나 내 심장은 저 창공(蒼空)에 조그만 조각배가 되어, 한없는 항해(航海)..”(이희승/淸秋數題)

 

아름다운 가을 하늘! 오늘 관악산은 노래하는 ‘유리상자’의 “그댄 아침이어라/ 나는 바람이어라/ 파란 하늘 내려와/ 그대 뺨에 불고 싶어라/ 가을 하늘이 좋아라 나는 좋아라/ 그냥 봐도 좋더라/이런 날엔 그대와 둘이서/ 사랑하고 싶어라”입니다. 오늘 2020년 10월 10일의 관악산은 코로나 없는 하늘입니다. 참! 저 푸른 하늘에는 코로나 없지요. 문득 TV에서 본 태국의 푸른 하늘과 연날리기가 떠올랐고, 중국의 연날리기대회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1999년 한국민속 연협회 설립되여 다양한 행사를 해온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연혁’이 2011년 이후가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계국가별연합회-일본·태국·싱가폴·터키·영국·독일·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남아공연합회“이 있었습니다. 연날리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열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국 <인민일보>의 기사 ”제37회 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 개막…연 날려 의료진에게 경의 표해“를 발췌·정리해 봅니다.

 

제37회-중국-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사진-2.jpg
제37회 중국 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

 

”제37회 웨이팡(濰坊)국제연날리기대회가 ‘위안두’(鳶都: 연의 도시) 산둥(山東) 웨이팡에서 개막했다. 이에 연 애호가들은 방역을 주제로 연을 제작하며 의료진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번 대회에는 총 700명이 참여해 각양각색의 연과 화려한 연날리기 기술을 선보였다. 그 밖에도 30여 개 연날리기팀이 2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해 솜씨를 선보였다./ [사진] 1.연 애호가들은 방역을 주제로 연을 제작하며 의료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사진] 2.연날리기팀 팀원이 ‘백의의 천사’ 연을 상공에 날리며 의료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사진] 3.‘노아의 방주’라는 이름의 연이 천천히 하늘로 오르고 있다. 이번 연날리기대회 조직위원회에서는 특별히 ‘노아의 방주’ 연을 제작해 홍수 방지 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제37회-중국-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사진-3.jpg
제37회 중국 웨이팡국제연날리기대회

 

한민족의 연날리기는 원래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 행하던 민족 전래의 기예(技藝)로 연을 공중에 띄우는 민속놀이“입니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 전래의 기예의 하나로서 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흥미를 끌어 제2차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우리 나라 각처에서 성행하여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였다. 연을 날리는 데는 연실을 한없이 풀어내어야 하므로 연날리기는 주위에 장애물이 없는 데서 행하여졌습니다.

 

서울에서는 옛날 청계천변(淸溪川邊)이 중심지였고, 시골에서는 대개 신작로변이나 개울가 또는 동산 같은 데서 많이 날렸습니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인데, 대체로 12월 20일경이면 벌써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월 보름 며칠 전이면 절정에 달하는데, 구경꾼들의 성원도 이때쯤에는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끊어진 연실을 걷느라고 서로 다투어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갈 때도 있고, 심지어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는 일도 있어 말썽을 빚기도 했습니다. 또 끊어져 나가다가 가라앉는 연을 줍느라고 논바닥 속으로 뛰어가다가 빠져서 옷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연날리기-사진.jpg
대한민국 연날리기

 

연날리기에 대한 세시풍속은 18세기 말엽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志)》와 19세기 초 김매순(金邁淳)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및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그 기록이 있습니다. 《경도잡지》상원조(上元條)에 “아이들이 액자를 연에다 써서 해질 무렵에 줄을 끊어 날려 보낸다. 그 날리는 법도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종횡으로 휩쓸어 남의 연과 마주쳐 남의 연줄을 많이 끊어 쾌락을 삼는다. 실을 겹치고 아교를 문질러 매끈하기가 흰말 꼬리 같다. 심한 사람은 자석가루나 구리가루를 바르기도 한다. 그러나 연줄을 잘 교차시키는 능력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서울 장안 아이들 중에 연싸움 잘하기로 이름난 아이는 양반집이나 부잣집에 가끔 불려가기도 한다. 매년 정월보름 전 하루 이틀은 수표교(水標橋) 연변 상하를 따라 연싸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을 쌓듯이 모여 선다. 여러 아이들은 기다렸다가 연줄을 끊는데, 혹은 패하는 연을 따라 담을 넘고 집을 뛰어넘기도 하므로 사람들은 대개 두려워하고 놀란다. 그러나 보름이 지난 다음에는 다시 연을 날리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연날리기는 세계 여러 민족들 사이에 다 있는 풍속이지만, 각기 그 모습이 약간씩 다르다고 합니다. 말레이시아나 태국 같은 나라에서는 해안지대에서 주로 많이 날리는데, 연을 잠시 날렸다가는 얼마 뜨지 못하고 곧 지상으로 내려오므로 이 지역에서의 연날리기란 그저 곧이어 내려오는 연을 자주 공중으로 날려보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연실을 풀어서 높이 날리기는 하여도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서로 끊어먹기를 한다든가 자유자재로 기술을 부리면서 연을 날리는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일본의 빈대머리 ‘다루마(達磨)’형 연이나 ‘후카(상어)연’·‘가메고바다연’·‘분부쿠연’ 같은 것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자유자재로 또는 끊어먹기는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나 태국의 물고기·새모양의 연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연은 크고 작은 것들을 막론하고 그 전부가 짧은 장방형 사각(四角)으로 되어 있으며, 바람을 잘 받아 잘 뜨게 되어 있을 뿐더러 연의 가운데에 둥글게 방구멍이 뚫어져 있어 강한 바람을 받아도 바람이 잘 빠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바람이 다소 세더라도 연 몸체가 상할 염려가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구촌은 다양한 연날리가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민족 기예 연날리기는 음력 정월에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荒漠한 코로나시대에 아름다운 가을하늘을 연(鳶)들이 장식한다면...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慰安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 속담에 “육모 얼레에 연줄 감듯”(무엇을 줄줄 잘 감는다는 뜻)이라고!

 

20190501100102_d97be04a749428e38150f96c98b8e259_8bcw.jpg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저작권자ⓒ선데이뉴스신문 & newssund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