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안드레아 보첼리의 ‘希望의 노래’와 트로트 ‘希望歌’

기사입력 2020.10.23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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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꿈은 꾸는 만큼 이루어진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희망(希望)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희망을 품고 희망을 그리고 그 희망을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집니다. 매일 매일 ‘희망’을 쓰고 또 말하면 무의식에 기록되고, 그 무의식이 생각과 행동과 환경을 조정하여 결과적으로 꿈의 실현을 이뤄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희망을 말하십시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입니다.

 

영국 속담에 “큰 희망은 위인을 만든다.(Great hopes make great men.)”라고 했습니다. ‘희망(希望)’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보봐리 부인이 꿈꾸던 행복은 비소(砒素)의 독약이 되어 돌아왔고, 맥베드 부인이 꿈꾸었던 그 행복은 피 묻은 손의 악몽(惡夢)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희망이 크면 절망(絶望)도 큽니다. 통일(統一)이라는 희망을 꿈꾸며 살던 우리 한민족이 점점 절망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원뜻! 희망이란 말을 구성하고 있는 두 글자 중 ‘희(希)’에 다음과 같은 속뜻이 숨어 있습니다. 희(希)라는 글자는 점괘를 가리키는 육효(六爻)의 ‘효(爻)’와 수건을 뜻하는 ‘건(巾)’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앞으로의 운수를 알려줄 점괘를 수건이 가리고 있는 형국이므로 점괘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앞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보통 앞일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바람이나,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란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바라는 게 추상적입니다. ‘망(望)’-‘바깥에 나가고 없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달을 바라보며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어 ‘바란다’는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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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첼리(Andrea Bocelli) 사진.

 

이 ‘風塵 세상’! 힘듣 2020년에 ‘희망의 노래’를 부른 음악인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 중 한 성악가를 소개합니다.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1958)입니다. 이탈리아의 테너, 팝페라 가수. <미제레레>라는 곡으로 유명해졌습니다. 12세 때 축구를 하던 도중 부상으로 완전히 시력을 잃었지만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저명한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눈에 띄었고, 1995년에는 사라 브라이트먼과 부른 〈작별할 시간〉이 크게 성공했습니다. 여러 차례 한국 공연을 가졌던 그는, 육신은 시각장애인이지만 마음은 건강한 시각 소유자입니다.

 

2020년 4월 12일,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에 홀로 선 안드레아 보첼리! 그 무대에서 그가 부른 희망의 노래! 그날 천상의 목소리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었던 안드레아 보첼리! 영상 속 그의 마른 얼굴과 지금의 이탈리아의 상황, 홀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모든 이들의 기도의 힘을 믿는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조국 이탈리아와 전 세계를 위해, 홀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오르간 반주만으로 생명의 양식, 아베 마리아, 장엄미사, 천주의 성모,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5곡을 라이브로 노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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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첼리의 희망의 노래(Music for Hope) 공연. 2020.4.12.

 

안드레아 보첼리는 1958년, 농기구와 포도주를 제작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취미로 여러 악기를 배우며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녹내장을 앓았으며, 12세에 축구를 하다 다쳐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사대학에서 법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하고 변호사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도 저녁에는 야간 재즈바에서 피아노를 치며, 테너 프랑코 코렐리에게 성악을 배웠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32세였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목소리일까 귀를 의심하게 된다고들 합니다. 그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희망’이 源泉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입니다. ‘희망’은 기독교 사상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흔히 '소망'이란 표현을 씁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부활이 희망에 도덕적인 특성을 부여했다고 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희망은 선한 것, 미래에 있는 것, 희망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과 관련될 뿐이다.”/- 희망이 그 목적을 성취하고 나면, 희망은 더 이상 희망으로 존재하지 않고 소유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사랑은 끝이 없지만', 희망은 이 세상에서 유한한 인생살이에 국한된다고 합니다. 물론 擧皆의 종교들도 ‘희망’이 원천입니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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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의 주역 중 하나인 정동원君

 

위 “희망가”는 긴 세월 동안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색 논쟁으로 금지곡이 된 시절도 있었습나다. 그래도 한국 트로트 역사에서 빠질 수 노래가 <희망가>입니다. 사실 애초에 제목도 없었다고 합니다. 절망적인 노래인데 제목이 희망가가 된 아이러니가 있는 노래입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던 노래! 1921년에 발표되어 1930년대 크게 유행했는데, “원곡은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미국인 제레미아 인갈스의 찬송 모음집에 수록된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또는 When we arrive at home)라는 제목의 찬송가.”라고 합니다.

 

<희망가>는 일제강점기 <이 풍진 세상을>(작사-임학진)이란 제목으로 박채선·이류색 두 민요가수에 의해 192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한 소년가수가 불러 주목을 끌었습니다. 요즘 인기가 많은 TV음악프로 “미스터 트롯”의 주역 중 하나인 정동원(2007/선화예중)이 처음 부르고, 뒤에 김호중 등이 함께 부른 <희망가>! 이 노래가 인터넷 등에 선보이자 꽤나 다시 알려지지 시작했습니다. 이 절망적인 노래가 하필!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는 작사가·작곡가들도 참석, 박수를 쳤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힘겹게 지내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노래는 옛 ‘희망가’가 아닙니다. 가늠하면 많은 음악인들이 ‘希望·幸福’의 노래를 많이 만들어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대한민국 희망가 경연대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庶幾之望(서기지망:앞으로 잘 되어갈 희망)]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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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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