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人文學 特講★ (2)레프 톨스토이와 영화 [戰爭과 平和]

기사입력 2020.12.1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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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러시아제국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Граф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1910)은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입니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7)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M. Dostoevskii(1821~1881)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文豪입니다.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에 남러시아 툴라 근처의 야스나야폴랴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니콜라이 일리치 톨스토이 백작과 마리야 톨스타야 백작부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습니다. 카잔 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 교육 방식에 실망을 느껴서라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위 장편 외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등,


‘톨스토이’하면 ‘寫實主義’입니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심리 분석’과 ‘개인과 역사 사이의 모순 분석’을 통하여 최상의 리얼리즘을 성취해 냈습니다. 그는 일상의 형식적인 것을 부정하고 인간의 거짓, 허위, 가식, 기만을 벗겨내고자 했습니다. “톨스토이 이전에는 진정한 농민의 모습이란 없었다”는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I. Lenin/1870~1924)의 말처럼, 톨스토이는 러시아제국에서 혁명이 준비되고 있던 시기를 적확(的確)하게 묘사하면서, 그의 문학과 사상을 려시아의 사회혁명에 용해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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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하는 남자-경작지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유채화.1887년.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삶을 사랑하는 톨스토이’와 ‘청교도적 설교자로서의 톨스토이’라는 ‘두 얼굴의 톨스토이’가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세계에서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서로 싸웁니다. 후기로 갈수록 톨스토이는 ‘삶을 사랑하는 시인’에서 ‘인생의 교사’이자 ‘삶의 재판관’이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얼굴을 가진 분열된 자아가 계속해서 서로 싸우는 그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만 볼 수도 있지만, 주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전일성이 드러난 세계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사랑과 진리에 대한 관념들을 일반적·보편적 형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술가이자 인생의 교사로서 이런 관념들에 대한 해답을 인류에게 제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예술 세계에서는 자족적 관념이 만들어내는 자기 완결적 순환 구조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관념을 통하여 그리고 그 관념의 실천을 통하여 절대적 지각자로서의 자기완성에 이르고자 하고, 자기 구원과 인간 구원에 도달하고자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1860년 고향 툴라에서 농민학교를 운영하여, 부모의 강요로 아동노동을 하는 게 전부였던 농민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게 해주었습니다. 당시 부모들은 처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여 자녀들이 학교에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톨스토이가 진심으로 농민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아이들을 기꺼이 학교에 보냈습니다. 농민학교는 자유로웠는데, 이는 자유로운 교육을 통해서 진짜 교육이 진행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1871년에는 직접 교과서를 쓰기도 했는데, 농민과 귀족이 평등하게 교육받도록 한 내용 때문에 자기들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농민을 멸시하는 귀족들은 농민들과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며 거센 반발을 일으켰지만, 자신들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 농민들에게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는 前述한 바와 같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정점이자 혁명의 거울, 위대한 사상가로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안톤 체호프는 “톨스토이는 모든 이를 대변한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문학에 거는 기대와 희망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라고 말했으며, 막심 고리키는 “한 세기에 걸쳐 체험한 것의 결과를 놀랄 만한 진실성과 힘과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라고 말하며 톨스토이를 '세계 전체'라고 일컬었습니다. 대표작은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와 <부활>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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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1978년 발행된 탄생 150주년 기념 우표.

 

소설 <부활>(1899년)은 19세기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종교적 모순을 드러낸 문제작이자 ‘흔들리는 인간’에게서 부활의 가능성을 모색한 만년의 걸작입니다. <부활>은 톨스토이가 일흔이 넘어 완성한 만년의 역작으로 고골, 푸쉬킨, 도스토옙스키를 아우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한 오마주이자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와도 맞닿는 인간과 구원에 대한 최종적인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1869년)는 1812년 일어난 나폴레옹 전쟁을 중심으로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작으로, 보르콘스키 가, 로스토프 가, 쿠라긴 가의 인물들과 피에르 베주호프 백작 등을 중심으로 전쟁 속에서 인간의 운명을 그려 낸 작품입니다.

 

톨스토이 등을 ‘세계적 文豪’라고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에서 네흘류도프 공작은 살인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카츄샤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합니다. 카츄샤는 러시아의 여자 이름입니다./ 필자는 전에 인문학 특강(러시아 문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청중들 대부분은 소설 속의 주안공 ‘카츄사’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가수 송민도의 “카츄사의 노래” 속 카츄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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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원작 영화-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원작 영화 <전쟁과 평화>은 ‘흘러간 명화’로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작자보다 여자 주인공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1929~1993) 때문에 더 유명해졌습니다. 영화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는 1956년 제작된 영화로 오드리 헵번, 헨리 폰다, 멜 페러, 비트리오 가스만, 존 밀스 등이 출연했습니다. 영화 <전쟁과 평화>은 톨스토이보다 오드리 헵번이 더 유명합니다. 原作을 사랑하는 우리의 삶이 필요합니다.

 

[톨스토이 名言] ⓵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는 법이며 나이가 들고 지혜가 자랄수록 정신적인 삶을 최고로 여기는 법입니다./ ⓶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⓷현명하고자 한다면 현명하게 질문을 하는 방법, 주의깊게 듣는 태도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말을 그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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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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