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위정자(僞政者)’들의 욕심과 거짓말 그리고 위정자(爲政者)들의 선택

기사입력 2021.06.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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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신문=권오은 국장]
‘위정자(爲政者)’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의 ‘위정자(僞政者)’란 가짜 정치인 즉‘ 정치하는 사람이 궤변과 술수로 좋은 정치를 허울 좋게 포장하여 국민을 속이고 본인의 이익만 챙기는 뻔뻔스러운 쓰레기정치인을 뜻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위정자(僞政者)의 모습이자 화신은 ’히틀러‘인데 당시의 독일인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서도 행복했다고 했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논어의 ‘정명론(正名論)’에서는 세상의 정치는 보는 각도에 따라 그 의미의 차이는 있으나, 나라가 망국에 다다르면 바로 서지 말아야 될 참(眞)의 명분은 참이 되고 참(眞)이어야 될 명분은 거짓이 되는 세상이 온다고 했다. ‘성경’의 마지막 날의 경고에서도 마지막 날이 되는 날이 오면 ’거짓이 참이 되고 참이 거짓이 되는 세상이 된다고 경고했다. 그때가 되면 거짓이 성하며 수많은 사람의 사랑마저도 식어진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는 국민의 심리적 불안정을 거짓의 안정으로 온통 도배하고 있다. 주요 메인 언론들도 어느 시간대를 막론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어느 곳을 보드라도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언론을 통해 맹목적인 언어의 반복과 뻔뻔스러운 위정자들의 표정의 내면과 외면의 두꺼운 면을 접하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국민의 마음을 아프도록 찢게한다. 주요 도로변, 사거리와 길거리에 주변에도 정치인들이 걸어 놓은 현수막의 구호는 국민을 위하는 정치하는 것처럼 세뇌의 홍수 물결이 출렁이고 있다. 나랏돈을 그들 멋대로 국민을 위해 선심을 쓰는 듯하게 나부끼고 있다. 국
민의 세금이 국민을 위해 당연히 지출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무료로 지급한다고 한다. 최고 지도자들의 생각조차 그러하니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닌가! 근 현대사에서 공생하는 대다수 정치인들의 욕심은 개인이 우선이지 국가는 없다. 그리고 이들은 뻔뻔하고 질기다. 거짓말에는 능숙하다. 거짓에는 더 두꺼운 얼굴로 포장하고 태연하다. 진보,! 그들은 남들이 가보지도 못한 곳을 가기 위한 과정인가! 국가 속 나보다도 나 지배하의 국가로 보는 건지는 몰라도 그들에게는 절대 잘못이란 없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거짓말은 있어도 참은 거짓말을 키우기 위한 거름일 뿐이다.
 
청문회에 나와 답변하는 이들을 보면 한마디로 ‘내로남불’에 익숙하고 탄탄해진 진보라 자칭하는 정치꾼들이 다수이다. 이들 외에도 함께 춤을 추며 놀아나는 언론인들! 함께 춤을 추는 연애인들, 언론인들, 법관들, 방송인들, 대담자들, 줄줄이 엮어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많다.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법관들마저 저울을 맘대로 흔들어 대니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 나라가 성경의 마지막 날의 경고처럼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국회는 소수의 당을 무시하고 일방이다. 무조건 법을 만들고 없애고 하는 형식과 절차는 형식이 형식을 만들어 아예 없어진 지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언론을 내세워 온종일 내뱉어 낸다. 아무리 마지막의 날이 온다고 해도 국가의 법치만이도 바로 서면 될 것 아닌가! 법치가 무너지는 판국이 되다 보니 국민은 이제 이 한 가닥 희망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법(法) 아래 사람이 아니라 법 위 권력자의 독재에 아부하는 대법관의 처신들이 다수이니 국민은 무슨 진실과 자유를 외칠 수 있겠는가! 다 썩어빠진 이러한 정치들의 욕심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국민은 자포자기라도 하도록, 무조건 이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욕심과 거짓말에 능숙한 궤변 정치인들!! 정치를 올바르게 하는 참 정치의 ‘위정자(僞政者)’ 들과  ‘위정자(僞政者)’ 에 관한 판단의 시간마저 빼앗아 갔다. 선택의 길은 국민 개개인 스스로 반성해 볼 여유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국민은 더 신중하고 더 세밀하게 국가를 걱정해야 한다. 국가 속의 국민이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치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국민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잠시 잃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잠시 개인 위주의 순간 행복을 원하고 편해지길 원했다. 국가의 주인으로서 위정자(僞政者)를 선출했는데 갑자기 권력을 움켜잡은 이들은 위정자(僞政者)로 변신해 있는 이들을 잠시 잊었다.
 
이들에게 무기력하게 이끌려 갈 필요가 없는데에도,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을 감시해야 하는데도 지난 2세기 동안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과 동시에 국민을 이끄는 위정자에 대한 억압을 당하고 있음에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모순 속에서 국가 통치자들의 자질과 능력은 오직 권력의 방망이이었고 협박 정치를 하는 정치꾼들 뿐이었다. 최근 다수당의 거만스러운 언어와 행동들은 차마 민주주의 국민의 인권과 의사를 국민을 팔아 무시했다. 똑똑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스스로 바보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국민 다수(40%)만을 바보로 만들어 놓으면 성공이란 이론이 머리에 박혀 있는 듯하다. 이들에 의해 장기집권도 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랏빚이 많이 늘어나는데도 개인에게 돈을 주면 그편에 서는 국민 40%만 만들어 놓으면 확고하게 장기집권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보는 크나큰 착각에 승부를 거는 이들일지도 모르지만 착각이다.
 
이제라도 국민들은 이들만의 정치 게임에는 다 국력보다 개인의 우선이기를 원하는 개인주의적 욕심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안 이상, 이제부터라도 이들의 거짓말에서는 헤어나야 한다. 도덕과 참의 진실보다 거짓이 참이 되어 버린 세상을 보고도 묵시적 인정을 용납하며 살아가는 세태가 되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위정자(僞政者)들이 저지른 분명한 잘못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국민의 힘으로 위정자(僞政者)들의 사고의 근본부터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정치는 민중을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소통하는 ‘조정자’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욕심의 언어 즉 기득권 언어’에 중독이 되면, 안타깝지만, 올바른 정치를 하는 사고의 위정자(爲政者)’가 독재로 변한 위정자(僞政者)들의 새로운 정치적 인식의 관점으로 바꾸기가 어렵다. 하지만 참의 정치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거짓의 영원 하에서 허덕이는 이들 위정자(僞政者)로 삶이 양심으로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권오은 기자 kwon78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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