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중국 난징(南京)대학살과 2021년의 추모(追慕) 행사

기사입력 2021.12.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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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1937년 12월 13일, 난징에 입성하는 일본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중국 <인민일보>는 2021년 12월 13일 “84년 전 오늘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일으킨 참혹한 대학살로 인해 30여 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기리지만 눈물로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기념은 원한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 나아가기 위함이다. 우리가 역사를 되새김은 민족의 아픔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불굴의 항쟁과 평화에 대한 소망 및 수호를 기억하고자 함이다.”라고 했습니다.


 중국 난징대학살!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 난징대학살 추모관! 난징대학살 추모관에 들어서면 마치 무덤처럼 지하로 들어갑니다. 추모관은 1000구가 넘는 학살 피해자 유골이 발굴된 '만인갱(萬人坑)'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중국은 1982년 일본이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중국 침략'이란 문구를 '진출'로 바꾸자 격분했습니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일본) 침략의 비석을 세우라"고 지시했고, 1985년 추모관이 완공됐습니다. 추모관의 원래 명칭은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난징 동포 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입니다. 덩샤오핑이 직접 비석 글씨를 썼습니다.


 난징에서 일본군이 중국 여성에게 저지른 만행은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성폭행한 뒤 학살한 사진만으로 벽면이 가득 찼습니다. 추모관 입구의 여성 조각상에는 '살해된 아기도, 생매장된 남편도 돌아오지 못하네', '달아나자, 악마가 온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추모관에는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공간이 있습니다. 한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당시 12초마다 중국인이 죽어나갔다는 의미”라고 알려줬습니다. 당시 희생된 시신은 기차 2500량을 채우고, 시신을 포개면 빌딩 74층 높이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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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시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난징대학살 84주년을 맞아 조기 게양.

 

대한민국 <위키백과>는 “난징대학살이란 중일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 이로 인해 약 30만 명의 중국인들이 학살되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이뤄졌으며, 1939년 4월에는 1644 부대가 신설되어 생체실험 등이 자행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를 난징 대도살이라고도 부르며, 일본에서는 난징 사건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서구권에서는 아시아 홀로코스트라고도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100인 참수(경쟁斬首競爭)은 중일전쟁 시기의 중국에서 일본의 두 군인들이 누가 먼저 100인을 군도(軍刀)로 살해하는지를 겨루었다고 알려진 사건입니다. 1937년 11월 30일자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大阪每日新聞)과 12월 13일자 ‘도쿄 니치니치 신문’(東京日日新聞)에서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소위가 일본도(日本刀)로 누가 먼저 100인을 참수시키는지를 겨뤘다고 보도”했다고 기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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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 84주년 추모식-2021.12.,13.

 

중국이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난징대학살 84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2021년 12월 13일 중국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1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장쑤성 난징시 '난징대학살 희생자 기념관'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개최됐습니다. 오전 10시 1분(현지시간)부터 1분간 난징시 모든 지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리기도 했습니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묵념했고 차량과 기차, 선박 등도 일제히 멈춰 경적과 기적을 울리며 추모에 동참했습니다.


쑨춘란 부총리가 중국 지도부를 대표해 이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밖에 84명 난징시 청소년이 ‘평화선언’을 낭독했고 각계 인사 6명이 평화의 종을 울리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중국 당국은 온라인 추모 행사도 준비했습니다. 네티즌은 인민항일기념관이 마련한 온라인 추모 캠페인을 통해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 2014년부터 12월 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희생자를 애도해 왔습니다. 2015년 10월에는 중국이 신청한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고령의 난징대학살 피해자들이 별세하면서 등록된 생존자 수가 61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난징시의 난징대학살 희생 동포 기념관 행사 외에도 상하이, 선양 등에서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국가의 치욕을 잊지 말고, 중화의 꿈을 실현하자”라는 주제의 올해 행사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을 포함한 국가 최고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부총리가 참여해 추도사를 했습니다. 시민들도 기념비에 꽃을 가져다 놓으며 난징대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기념비 앞에서 묵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날 친중 단체들이 홍콩의 일본 영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중국, 일본 국기와 현수막을 들고 반일을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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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징대학살 국가추모일 포스터-중국 인민일보 한국어판.

 

난징대학살(南京大虐殺)! 그 안에는 중국인들의 한(恨)이 가득합니다. 거기에는 한민족의 ’한‘도 서려있습니다. ’한‘은 잔잔한 ’원한‘입니다. 일본을 향한 원망인지 허약한 민족에 대한 원망인지조차 분간할 길이 없는 감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극조차도 가져보지 못한 한국인의 불행인 것입니다. ’한‘을 영어로 마땅하게 번역할 수 없다고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곧 그 한이 우리 특유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한‘, 그것은 체념해 버린 분노, 체념해 버린 슬픔입니다. 그 슬픔을 안겨준 과거의 일본 위정자들! 


1771년(영조 47)에 장한철(張漢喆)이 지은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에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는 비록 살생(殺生)만하고 표독(慓毒)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도록 했고, 뱀은 간악(奸惡)하나 약제(藥劑)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그놈의 표독하고 간악(奸惡)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라고! 일본 극우파(極右派)의 선조? 필자와 친한 일본 현대인들은 아주 예의(禮儀) 바르고 심성(心性)이 정말 곱습니다. 다만 일본 위정자들의 품성(品性)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매년 12월 13일이 되면, 신사(神祠)가 아니라 중국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찾아 속죄(贖罪)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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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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