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기사입력 2014.03.0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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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자식보다 악처가 낫다. 

남편은 권위적이어서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입만 열면 도덕책 같은 소리를 했다. 넌더리를 내던 아내는 딸의 대학 진학을 핑계 삼아 서울로 와 별거했다. 남편은 다달이 봉급을 아내 통장으로 입금했다. 은퇴한 뒤에도 연금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을 찾아가지 않았다. 박완서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부부의 결혼은 껍데기만 남았다. 많은 아내가 벼른다. ‘남편 늙어 아파도 눈 하나 깜짝하나 봐라.’ 자식은 부부를 이어주는 끈이다. 낯 붉혔다가도 아이들 봐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다 자식 크고 남편 은퇴하면 일이 꼬인다.
 
남편은 할 줄 아는 게 없어 집에만 붙어 있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고생했으니 편히 수발 받고 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손가락 까딱 안 하는 남편에게 세끼 챙겨주자니 열불이 난다. 갖은 살림 참견을 해대는 '남편 살이'에 시달린다. 애들 키우고 이제야 하고 싶은 일하려는데 남편이 발목을 붙잡는다. 10개구 조사에서 한국 50대 여성의 행복도가 꼴찌였다. ‘불행하다’는 답이 37%였다. 일본에 ‘나리타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가 막내 결혼식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 보낸 뒤 갈라선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인천의 이별’이 닥쳤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에 결혼 20년 넘은 부부가 26.4%를 차지했다. 그동안 가장 높던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비율 (24.7%)을 처음 넘어섰다. 자식 뒷바라지 끝났고, 이혼을 보는 사회 시선이 너그러워졌고, 여자 몫 재산 분할이 나아지면서다.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가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단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 아내는 남편의 모기 물린 정강이를 어루만지며 화해한다. 박완서는 그것이 측은한 마음도 동정도 아니라고 했다. “세월을 함께 하며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자, 늙음과 삶의 허망함에 대한 연민”이라고 했다.

우리 중, 노년 이혼이 늘어나지만 대다수는 결혼 서약을 지키며 산다. 유대 금언집 탈무드에 '아내의 키가 작으면 남편이 키를 낮추라'고 했다. 결혼은 둘이 다리 하나씩 묶고 뛰는 이인삼각이다. 일흔 세 살 남편은 25년 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치매에 걸렸다. 부모 자식도 기억 못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은 알아본다. 불편한 대로 걷고 밥 먹고 책 본다. 일흔 두 살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간병 일지를 쓰며 지성으로 수발한 덕분이다. 남편은 아내가 장 보러 간 사이 마루 걸레질하고 세탁기 돌린다.
 
아내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부부는 늘 손을 꼭 붙잡고 다닌다. 부부가 추억 어린 계곡에 갔다. 처녀 총각 때 남편이 나오라고 했던 곳이지만 아내는 바람을 맞혔다. 남편이 “여기 온 생각이 난다.” 더니 노래를 불렀다. “내 사랑 양춘선은 마음씨 고운 여자 / 그리고 언제나 나만을 사랑해···.” 남편이 결혼식 때 불러줬던 노래다. 의사는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도 “병이 나아진 건 아니다” 고 했다. 아내는 말했다. “남편이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용기가 있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 서귀포 노부부 이야기다.
 
“부부 사랑은 주름살 속에 산다”는 말이 있다. 좋든 싫든 기대고 부대끼며 서로 닮아 간다. 이혼을 바라보는 시인 김종길은 늙은 부부를 한 쌍 낡은 그릇에 비유했다. “오십 년 넘도록 하루같이 붙어 다니느라 때 묻고 이 빠졌을망정 늘 함께 있어야만 제격인 사발과 대접”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들 명이 짧아 해로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0년만 해도 예순다섯 넘는 고령자 성비는 여자 1000명당 남자가 62밖에 안 됐다. 통계청이 지난해 ‘고령자 통계’에서 노인 성비가 70.7까지 올라갔다고 밝혔다. 부부 함께 사는 노인비율도 2000년 52%에서 2010년 57.7%로 높아졌다. 남자 수명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2030년이면 노인성비가 81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늙도록 오래 사는 부부가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속담에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고 했다. “곯아도 젓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는 속담도 있다. 늙은 남편 너무 타박할 일 아니다.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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