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공천제 저질 정치문화

기사입력 2010.04.2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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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4월 20일 밤의 일이다.

서울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최모씨가 모당 공천을 책임진 사무총장 승용차에 1만 원짜리 100장 묶음 다발 2000개씩 든 사과상자 2개를 실었다.

현금 4억 원이다. 사무총장은 호텔을 나서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잡혔다.

최씨는 8일간 숨어 다니다 오피스텔 다락방에서 체포됐다.

김제시장 후보 공천대가로 오간 돈이었다.

 그 무렵 다른 당에선 원내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의 부인이 서초구청장 후보 공천 대가로 4억 4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돈은 ‘주스 상자’에 담아 여러 번 전달했다.

같은 당의 다른 중진 의원은 서울 중구청장 후보 출마자로부터 케이크 상자에 담은 21만 달러를 받은 것이 드러났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구린 냄새를 피우는 것이 각종 상자다.

사과상자는 2002년 대선 ‘차떼기’ 때 활용했다.

 2억~2억 4000만 원을 넣을 수 있다.

 라면상자는 그 절반 정도여서 꾹꾹 눌러 담으면 1억 2000만 원이 들어간다. 2003~2004년 서울시와 인천시 건설업자 비리 사건 때는 굴비상자가 등장했다.

2005년 마사회 비리 사건 등을 거치면서 2000만 원이 든 곶감상자, 3000만 원을 넣을 수 있는 간고등어 상자, 100만 원 다발 3개가 들어있는 초밥상자 등으로 종류가 다채로워졌다. 여주군수가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에게 현금 2억 원을 전달하려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번엔 홍삼선물세트 상자가 사용됐다. 5만원권 덕분에 현찰 2억원 부피가 사과상자에서 홍삼상자로 축소됐다. 4년 전 지방 선거 때는 “5억 내면 공천이 되고 4억 내면 안 된다.” 며 ‘5당 4락’ 이란 말이 돌았다. 이번에는 ‘7당 6락’ 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번 달 들어 의원 보좌관이 기초의원 예비후보자에게서 공천현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입건됐다. 중앙선관위는 7000만 원의 공천현금을 제공한 지방의원 예비후보자, 입후보 예정자에게 1억 원을 요구한 지방의원 등을 고발했다.

민선 지방선거를 시작한 지 15년이 됐건만 아직도 돈으로 공천을 따내겠다는 저질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이나 군수 공천을 받으려면 2억 원은 껌값이라고 하더라.” 는 말이 버젓이 떠도니 기가 막힐 뿐이다.

 ‘공천 장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기초(일반 시·군·구) 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공천제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정당 책임자들이 이를 남용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적발돼 왔다. 특정 지역에선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 그러니 돈 뿌리는 걸 마다할 턱이 없다. 바로 ‘매관매직’ 행위인 것이다.

 여주도 공천이 당락을 결정하는 곳으로 분류된다. 재선에 도전하려던 이 군수는 공천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기수 여주군수는 서울에서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의 차 안에 ‘기념품’ 이 든 쇼핑백을 두고 갔다고 한다. 이를 돌려주려던 이 의원 측은 이 군수 차량을 궁내동 서울 틀게이트까지 쫓아가 경찰이 입회한 가운데 현금 2억 원을 확인했고, 이 군수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공천용 돈다발’을 놓고 대낮에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량 레이스를 펼치는 코미디가 연출된 것이다. 한심한 정치 수준이 부끄러울 뿐이다. ‘여주 사건’ 은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정치권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당 공천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도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 는 정치인들의 오만이 자신들의 ‘묻지마 투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관위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적발한 불법행위가 1675건인데 이 가운데 금품, 향흥제공이 530건이다. 현 4기 지방자치 기초단체장 중 42%가 감옥에 갔거나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홍삼상자를 보고 5기 단체장들 앞길도 뻔히 보인다.

[나경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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