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대한민국 양극화

기사입력 2014.05.30 15:56
댓글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선데이뉴스=나경택칼럼]시인이자 신흥사 조실 조오현 스님이 문상갔다가 염하는 일흔 노인을 봤다. 노인은 죽은 이를 어찌나 지극하게 매만지던지 어진 의원이 진맥하듯 했다.
 
염을 마치고는 끌어안고 싶어하는 눈길을 주더니 냄새까지 맡고서야 관뚜껑을 닫았다. 스님이 묻자 노인이 말했다. “40년 염을 하다 보니 남모를 정(情)이 들었습니다. 시신이 내 가족 같기도, 나 같기도 하고. 시신에 남은 삶의 흔적을 걷어주고 나면 내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노인은 사람들 건네주는 나룻배처럼 이름 없는 성자였다.

스님이 시 ‘절간 이야기’에 쓴 사연이다. 진도 팽목항 뒷전에서 염습을 해 온 이들이 있다. 차가운 바다에 갇혔다 뭍으로 나온 시신이 가족 만나기 앞서 정성껏 닦고 가다듬는 장례지도사다. 울며 시신 수습하느라 눈은 퉁퉁 부었고 밥도 못 넘겨 거르기 일쑤다. 전남 여러 곳에서 봉사 나와 봉사하고 있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자식을 단정한 매무새로 맞으라고 미용사들은 가족의 머리를 다듬어준다. 음식 수발하러 왔다가 간이 미용실을 차렸다. 하얀 커튼 두른 두 평 공간에 싹둑싹둑 가위질 소리만 울린다. 머리 손질이 끝나면 “고마워요” “힘내세요” 두 마디만 오간다.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새롭고 참다운 자원봉사를 본다. 소리 내지 않으면서 공감 · 진심 · 위로를 가득 담은 봉사다. 연인원 2만여 시민이 온갖 궂은일을 했다.
 
체육관 바닥을 걸레로 닦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빨래 설거지 하고 이불 말려 털어줬다. 울다 짓무른 얼굴 다독이게 물수건 삶아 건네고 휴대전화를 충전해줬다. 입맛 돌리라고 요리사들은 햄버거 굽고 탕수육 차렸다. 터키인들은 케밥을 나눴다. 가족들을 나르느라 안산 개인택시 기사들은 연료 값과 통행료 치르며 진도까지 400㎞를 내달렸다. 봉사자들은 빨랫감을 찾아다니면서도 말없이 ‘세탁’ 팻말만 들었다. 발소리 안 내려고 조심조심 걸었다. 진도에서 배운 수칙대로다. ‘가족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화를 내면 조용히 듣는다.
 
음식은 꿇어앉듯 낮은 자세로 권한다.’ 매뉴얼이 휴지조각 돼버린 세월호 참사였지만 봉사자들은 차근차근 매뉴얼을 지켜 움직였다. 파견 나온 여경 30여명은 가족들이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면 함께 울고, 어깨를 안아주며 휴지로 눈물을 닦아준다. 고 김초원 교사의 유족은 조의금을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운영 지원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했다.

장례비가 당국에서 지원된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가장 저렴한 수의와 관을 선택해 검소하게 장례를 치르는 유족도 있다. 남은 실종자가 울면서 체육관에 빈자리가 늘었다. 봉사자들은 “마지막 한 가족 남을 때까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키겠다”고 했다. 서로 돕고 아픔을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진도의 이런 풍경과 대조적으로 서울과 안산에서 열린 추모 집회엔 민주노총 · 법민련남측본부 · 참여연대 · 민변 · 전교조 같은 단골 시위단체가 망라해 참가했다.

광우병 촛불시위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여러 정치 집회에서 보던 얼굴도 적지 않다. 서울 청계천 집회에선 참가자들이 ‘세월호 학살’, ‘신유신 독재’ 같은 극단 용어를 동원하면서 ‘수첩공주 끌어내라’ ‘무능정권 퇴진하라’고 마음껏 외쳤다. 청와대 앞 가족 농성에선 전문 시위꾼들이 선동하려 들자 가족들이 “우리는 시위하러 온 것 아닙니다.
 
유가족 아닌 사람들은 자제해주세요”라며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일도 있었다. 시위꾼들은 유족들 마음을 위로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거 없고 어떻게든 이 사건을 활용해 한판 벌여보려는 마음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참담한 비극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국가 복원력이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많은 국민은 진도의 자원봉사자들을 보며 희망을 갖다가도 서울 · 안산의 전문 시위꾼들을 보면 다시 절망하게 된다. 어느 쪽이 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지는 국민이 더 잘 알고 있다.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저작권자ⓒ선데이뉴스신문 & newssund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