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29건 ]
향군‧LH, 장기복무 제대군인 주거안정 '맞손'
향군‧LH, 장기복무 제대군인 주거안정 '맞손'
[선데이뉴스신문] 향군과 LH가 손 잡고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주거복지 안정을 꾀한다. (사진=향군과 LH 관계자들이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주거복지를 위해 업무협약을 맺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오는 23일 LH성남판교사업본부에서 장기복무 제대군인을 대상으로 지역수요 맞춤형 매입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수요맞춤형 주거복지사업을 하는는 LH가 제대군인으로 구성된 안보단체인 향군과 함께 10년 이상 복무한 제대군인들의 주거복지 지원차원에서 기획됐다. LH는 보유중인 매입 임대주택을 지역수요 맞춤형으로 장기복무 제대군인들에게 제공한다. 향군은 지자체와 입주 희망 제대군인의 수요를 조사해 자격조건을 갖춘 대상자를 선정하여 통보, LH가 검증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을 할 예정이다. 전국에 10년 이상 장기복무제대군인은 2019년 12월말 기준 7만명이다. 이번 협약은 현재 주택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기복무 제대군인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것으로 보인다. 향군과 LH는 서명한 협약사항을 구체화하고, 업무추을 위해 상호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변창흠 LH사장은 “이번 협약을 통해 장기복무로 국가에 헌신한 제대군인들에게 주거소요를 반영한 매입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다양한 지역 수요맞춤형 공공임대주택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진호 향군회장은 “국가안보를 위해 청춘을 다 바친 장기복무 제대군인들이 주거 불안정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번에 수요 맞춤형 공공임대주택을 특별공급하게 됨으로써 복지사각지대를 해소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1천만 노인사회… 노인과 공생하는 나라 만들기,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인터뷰
[인터뷰] 1천만 노인사회… 노인과 공생하는 나라 만들기,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인터뷰
(사진=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이 '혜인(慧人)' 글씨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상꼰대’ ‘틀딱충’ ‘늙은악마’ 이 단어들은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노인들은 과거 가난과 전쟁의 아픔를 견디고 오늘날 경제 10위권 대한민국을 이끌어 낸 주역의 세대지만, 이제 세대의 갈등 속 화석으로 남겨진지 오래다. 노인들은 이제 갈곳 없이 길을 배회하는 떠돌이의 신세로 남았다. OECD국가 중 노인빈곤률, 노인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한 대한민국.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며 웃어른을 공경했던 우리의 문화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물론 이를 어느 한 계층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세태를 지켜볼 수만은 없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 또한 이제 노인 인구 1천만 이상의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최근 10월 취임한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과 함께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호일’입니다. 이전에 14,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 1천만 이상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죠.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 의원때 ‘국회 노인복지 정책 연구회’를 창립하고 회장을 맡았었습니다. 그렇게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게 됐죠. 그렇게 지금은 대한민국 노인 분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3번째 출마만의 일입니다. Q. 대한노인회장에 출마하시게 된 계기는? 의원직을 마치고 난후 제가 거주하는 아파트 경로당에서 노인분들과 어울리기 위해 경로당에 갔었어요. 그런데 당시 입주자 대표가 노인분들의 호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65세 이상 노인분들 명단을 뽑아서 선물도 돌리고, 같이 대화를 나누며 그분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지요. 당시 주변에서 “국회의원 때부터 노인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으니, 자리를 하나 맡으셔서 노인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왔습니다. 해서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선거에 나서게 됐지요. 대의원들을 찾아다니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첫 선거인 16대 선거는 안타깝게 2등에 그쳤어요. 그후에 제 17대 회장 선거가 있었어요. 현재 봉착한 에로사항이나 어려움을 파악해서 공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약 7년을 전국연합지회를 찾으며 대화와 조사를 했지요. 당시 또 일이 있어서 당선이 되진 못했죠. 그런데 전 회장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임하게 되면서, 18대 선거를 하게 됐고 드디어 회장에 당선됐습니다. 표 차이는 2등과 2배 차이로 압도적이었습니다. Q. 정말 축하드립니다. 대한노인회장으로서 보신 국내 노인 분들의 복지 수준은? 수명이 늘면서 사람들이 장수하게 됐지만, 늘어난 수명만큼 경제적 대책은 수립돼 있지 않아요.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연금을 받는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무방비 상태로 노후를 맞이하고 있어요. “노인에게는 한 달 용돈이 최소 30만원은 필요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어요.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기에는, 대부분의 자녀가 자기 먹고살기도 급급하거나, 양육과 결혼 생활 때문에 노부모를 지원할 수가 없는 벅찬 현실이죠. 한국은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율,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어요. 장애인·아동 복지 등은 사회 각층에서 목소리를 내 복지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노인들의 경우, “나라가 힘든데 우리까지 목소리를 내냐” 등 상대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노인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함께 모여서 한목소리를 내야 해요. 1천만 노인 시대가 오는 가운데 노인 복지는 이제 필수가 됐으니까요. 저는 앞으로 정치권에서 일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노인 복지에 대해 정부와 계속해서 소통해 노인 복지를 늘여나갈 계획이에요. Q. 좀 더 구체적으로 개선돼야 할 국내의 노인 복지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쉽게 말하면, 선진국이라 하는 복지국가들은 노인에 대해 경제적 지원을 후하게 주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딱히 마땅한 복지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요. 최근 각 지자체 별로 교통비 지원을 하는 등 단계별 복지를 하는 곳이 점차 생기고 있기는 하나, 각 지역별로 천차만별입니다. 동시에 노인들에게 한달에 3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안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노인 지원은 노인의 생활 지출을 줄여 기초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대한노인회는 앞으로 노인들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몇 가지 정책을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첫째,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비를 전국의 모든 노인들에게 제공하자고 제안할 예정입니다. 지하철을 탑승함으로 노인 분들은 자연스레 걷게 되고 운동도 할 수 있죠. 그럼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와 동시에 노인 의료비 지출액(연평균 33조원 상당)도 줄어들죠. 노인들도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기를 원하지, 아픈 상태로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는 싫을 겁니다. 둘째, 종교 단체와의 자매 결연을 통해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대한노인회에서 자금을 마련해 종교 단체 등에 재료값을 제공하고, 노인 분들은 그곳에 가서 밥을 먹고 또래 노인들과 어울릴 수도 있게 됩니다. 셋째, 주말에 근무를 원하는 노인들은 주민센터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심심함과 무료함을 덜어주고, 일할 욕구를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생활비도 벌 수 있게 합니다. 물론 그 일자리는 청·장년층의 일자리를 뺐는 개념이 아니라, 노인에게 알맞은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겁니다. 요즘 청년 일자리를 정부서 많이 강조하는데 그만큼 또 중요한 게 노인 일자리 입니다. 예로 ‘문화재 발굴 사업’과 관련된 일자리의 경우, 청년층보다 노인층에 더 적합한 일자리라고 봅니다. 노인 분들이 청년들보다 흙과 유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흙을 걷어 내는데에도 더 조심스러워 효과가 있겠죠. 그렇게 ‘노인 전용 일자리’를 탄생시키는 것이죠. 노인들에게 적합한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정말 일하기 힘들 정도로 건강과 환경이 어렵지 않은 이상은 노인들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열악한 분들은 나라에서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해줘야겠죠. Q. 노인 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맞아요. 유엔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기준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고령화 시대가 돼서 노인 연령을 70세 이상으로 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노인의 기준 연령이 높아지면 동시에 정년퇴직의 연령기준도 높아져야 하기에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모순이 있어요. 모든 계층이 전부 연관이 돼 있는 거죠. 한쪽만 생각하면 다른 한쪽에 피해를 보게 된다는 한계점이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봉급 상한제, 차등제 등을 적용해서 유기적으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인들은 많은 급여가 필요하지 않지만 급여를 적게 받더라도 성취감을 느끼며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거죠. 또한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는 등 상담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계층의 일자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청년층과 노인층의 삶의 상황과 패턴은 분명히 다릅니다. 노인은 노인으로서 적합한 일자리를 하는 게 잘실합니다. 그렇게 국가도 지출을 최소화하는 거죠. (사진-대한노인회 건물 1층 로비에 붙어 있는 글귀) Q. 한국 사회에서의 ‘노인’에 대한 인식은?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을 ‘늙은이’‘꼰대’라 칭해서 “사회에서 물러나라”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영국 속담에서는 노인을 ‘지혜가 담긴 한 권의 책’이라고 존중하는 ‘공경과 공생’의 문화가 존재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인식의 전환도 시급한 상황입니다. 그러려면 노인들도 함께 존중 받을 수 있는 인품과 모습을 갖춰 가야겠죠. 최근 고민을 하다가 제가 ‘노인’이라는 단어를 ‘혜인’으로 바꾸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해서 추진하고 있어요. 노인은 단순히 ‘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식을 바꿔 가는 것이지요. 젊은이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경험을 노인들에게 들어서 지혜를 구하고,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전해 줌으로 뿌듯함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게 각 세대가 서로에게 힘이 돼 줄수 있게 말이죠. Q. 고령화 사회와 관련한 사회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 노인 인구가 늘면서 홀로 된 노인들을 짝지어 주는 문화도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여러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더라고요. 서로 외로움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쉽지는 않아 보였어요. 또한 정치 분야에서는 미국의 경우, 원로 의원을 뽑는 제도가 있습니다. 노인만이 노인의 입장에서 무엇이 불편하고 어려운지 알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노인 문제만 다룰 수 있는 원로 의원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인의 경우, 대부분의 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데 이런 부분은 정책 개선을 통해 노인들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을 따로 개발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저는 정치에 몸 담았던 입장에서 경륜과 경험을 통해 공식적으로 노인 문제에 대해 현직에 있는 정치인들에게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군 이하의 지역에는 노인 인구가 35%이상이 될 거란 전망이 있어요.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경륜과 경험 등이 정치에도 적용돼야 진정한 복지 사회가 설립될 수 있다고 믿어요. 최근에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 나라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 예전에 고 김수환 추기경처럼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고,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수용해 더 옳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김호일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의 화환) Q. 정말 동감합니다. 회장님께선 혹시 인생의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이웃과 사회를 위해 유익한 사람이 되자. 내 스스로가 살아오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릴 때 가정의 덕을 크게 보지 못했었어요. 모든 것을 내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했지요. 매마른 땅을 스스로 일궈냈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제 자녀들에게도 이 얘기를 늘 해주고 있지요. Q. 한국의 노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성숙한 노인 복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한 덩어리가 돼 한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단결해야 목소리에 힘이 있고, 노인을 위한 복지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단결하고 단합하기를 호소드립니다. 대한노인회를 중심으로 함께 뭉쳤으면 합니다. 지역 선거 시에도 노인들의 표가 하나가 됐을 때, 정치권에도 목소리를 내고 힘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정치인들도 노인들을 의식하고 노인 복지에 더 신경을 쓸 것입니다. 노인 분들에게는 권력·돈보다도 친밀한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노인들끼리 서로 얽히고 얽혀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즐기면서 살 수가 있는 최소한의 복지가 마련돼야 합니다. Q. 인생에서 가장 회장님께 큰 영향력을 준 사람? 우리 어머니가 평생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자식 둘을 키우기 위해 희생을 많이 하셨죠. 그 희생정신을 값지게 여기면서 저는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가장 큰 교훈이 되신 분이죠. 다시 뵙고 싶네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오늘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국내의 노인 복지를 위해 전심으로 뛰겠습니다. 대한민국 노인 여러분, 늘 지켜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청소년 언론, 청소년 목소리 담기에 충분할까
청소년 언론, 청소년 목소리 담기에 충분할까
[선데이뉴스=이동규 기자] 청소년 언론을 논하기 전, 일반 언론부터 살펴보자. 국내 언론계의 벽은 높고도 험하다. 한국 언론계의 벽은 언론 고시부터 시작한다.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선 입사 시험인 언론 고시에 합격해야 하고, 이차적으로 면접 등의 절차를 거쳐 입사하게 된다. 하지만 고난은 끝이 아니다. 언론계 위계질서는 안다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심각하다. (사진=영화 1984 캡처, 이동규 기자) 기자가 청소년 기자로 생활하면서 가장 큰 `고충`이었던 것은 `글을 쓸 마땅한 언론사가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실질적인 청소년의,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언론사는 과연 몇 개일까. 본 기자가 아는 언론사는 3개 내외. 그중 실질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기사가 올라오는 언론사는 1~2개이다.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기자단을 제외한 값이다. `청소년이 기자를 쓸 공간이 없다`는 게 얼마나 걸림돌이 되는지 모를 수 있다. 비유하자면 `공부하는 데 펜을 빼앗은 기분이랄까`. 개인 블로그 등 SNS에 글을 쓸 수도 있지만, 내 글을 봐주고 반응을 보긴 힘들 것이다. 청소년 언론이 왜 흔하지 않을까. 기성 언론사는 오직 '홍보'의 목적으로 이를 운영할 것이고, 이 경우 운영을 잘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언론사는 청소년 언론도 운영해요'라는 멘트 하나 때문이다. 정부기관에서는 그 전문성을 자랑하진 않는다. 취재와 작성에 도움을 주는 반면, 기사의 노출수가 적어 '내가 기자를 하고 있는지, 블로거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청소년이 직접 만든 청소년 언론은 사업자 등록, 정기간행물 등록 등 언론사를 창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혼자서 하긴 힘들다. 이건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기성 언론에서, 기자로서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기사 피드백은 기자에 대한 질책으로 바뀌었고 결국은 발전이 없는 기사들이 무차별적으로 생산돼 언론을 망치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낸 `양산형 기사`는 그저 보도자료를 인용하고,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태로 그대로 적어낸 기사다. 예를 들자면 이른 시간 내로 소식을 정해야 하는 `속보` 기사는 이러한 형태가 맞다. 하지만 사태를 종합하여 송출하는 `종합` 기사와 같이 기사를 쓸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글은 그만큼 정확하고 중립적인 면을 지키되, 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청소년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기성언론의 양산형 기사가 판을 치는 언론사 사이트에서 본 기사의 형식을 따라 해서 작성하는 청소년 기자는 좋은 기자와 작가가 될 수 없다. 청소년 기자는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각과 함꼐 기사를 써야 청소년 기자의 기사라는 가치가 있고, 성인과 청소년 모두의 관심을 얻을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본 기자는 언론사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어느덧 1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스트레이트 기반 기사를 작성해왔다. 하지만 깨달았다. 이건 다른 언론사의 기사와 다를 게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내 이야기를 담고, 내 생각을 담은 기사를 써 내려가기고 결심했다. 글로밥상이라는 언론사에서도 내 마음을 담아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정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기자단처럼 보이기 위해 '대한민국 대표 청소년 미디어' 등 키워드를 사용하는 한 청소년 언론의 소개 페이지 화면, 이동규 기자 캡처) 다만, 청소년 언론사라고 모두 좋은 언론사는 아니다. 한 언론사는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웹사이트에 정부24 청소년 관련 서비스를 링크하는 등 정부 공식 청소년 기자단인 '행세'를 한다. 또한 청소년에게는 거액인 17만 원이 되는 돈을 '입단비' 명목으로 입단하려면 필수적으로 납부해야한다. 메신저, SNS 등에서 '제 값을 안한다'는 기자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경우 즉각 해촉하며 고소 등 법적 조치까지 한다. '허위사실'을 말했다는 이유이다. 청소년들이 기사를 쓰기 위해, 원고료 등 돈을 받기는 커녕 돈을 내고 글을 쓰는 신세이다. 또한 이 언론사는 참가비를 뺴돌려 개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비리 의혹도 존재한다. 이런 식의 수익이 목적인 청소년 언론, 더 나아가 청소년 단체는 말 그대로 그저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더 낫다. 청소년을 사회적 약자로서 배려하며 그 취미를 즐기기 위해 도와주는 단체가 올바르고 정직한 단체가 말할 수 있다. 이러하게 청소년 단체와 언론의 체계, 그 시작부터 일은 꼬였다. 청소년 언론은 더 발전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고, 그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청소년 전문 언론사가 많이 생겨나 글을 쓸 공간이 많아질 것이고 기성 언론의 양산형 기사가 없어져야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은 언론과 기사가 탄생할 것이다. 청소년 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거만하지 않게, 겸손하며 자신의 일을 다 해야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 될 청소년의 목소리는 과연 어디 있을까.
멈추지 못하면 비로소 보이는 'FLEX'... 종교계 어디까지 갈까
멈추지 못하면 비로소 보이는 'FLEX'... 종교계 어디까지 갈까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이름을 알려 최근까지 강연, 각종 사업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혜민스님이 ‘남산자택 소유 논란'에 전격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사진=혜민스님, 유튜브 '한겨레TV' 캡처) 혜민스님은 과거 부동산 소유, 사업 확장 등으로 “사치가 과하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논란의 핵심은 ‘무소유’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무소유’는 법정스님이 쓴 책이다. 원칙적으로 스님들은 불도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사유재산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부처님의 계율과 연결된다. 논란은 혜민스님의 사유재산이 이런 불교의 ‘무소유’의 가르침에 어긋났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몇몇 스님들 또한 대형교회 목사님들처럼 물질의 노예가 된지 오래인데 뭐 새삼스럽게 그러냐”는 목소리도 있다. 장용진 아주경제 기자는 YTN인터뷰에서 “스님은 원래 재산을 가지면 안된다는 계율은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처님 계율엔 스님은 음식물도 저장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탁발을 해서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 먹으라고 한다”며 “남방 불교에선 여전히 유지하는데 그 이유는 수행자의 삶이라는 건 재가자의 후원으로 하는 거니까 항상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수행에 전념하라 이런 말이다. 그런데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오며 변질이 된 거죠. 겨울철을 나야 하고, 음식물이 풍족하지 않아서 저장하게 된 건데 그게 현대에 들어오며 거대한 부와 결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조계종 총무원장을 몇차례 대면했다는 한 시민은 “물론 모든 스님들이 다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 실제로 불교계에서도 돈‧권력 때문에 스님끼리 분쟁이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며 “혜민스님처럼 노출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사유재산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는 스님들도 많다”고 말했다. (사진=서의현 조계종 전 총무원장, 중앙포토 캡처) 지난 11일에는 1994년 조계 종단에서 헌법을 어기며 3선 연임을 시도하다가 승권을 박탈당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이 복귀 후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후보로 거론돼 거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불자회의 추진위원회는 ‘반역사적인 멸빈자 서의현 전 총무원장에 대한 승적처리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며 “1994년 부패와 독재의 상징이었던 서의현 총무원장을 징계하고 승단에서 영원히 몰아낸 ‘94년 종단개혁’은 현 조계종의 근간이자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며 “멸빈자는 승적을 다시 회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조계종 총무원은 서의현 전 원장의 승적을 몰래 살리는 행정처리를 했다고 한다. 또한 중앙종회에 대종사로 추천하는 동의 요청을 했다고 한다. 실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과거의 종단개혁 정신이 다시 흐려졌다는 지적이다. 개신교 목사님들이 돈‧권력‧이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불교의 스님들 또한 세속의 유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공교롭게도 두 종교의 경서는 모두 “돈, 권력, 이성 등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세속을 멀리하고 도(道, 말씀)의 수행과 전파에 전념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상식적으로 아는 내용이다. 고로 종교인들의 관련 문제는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잣대는 일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교회는 미국으로 가서 기업이 됐고, 한국으로 와서 대기업이 됐다(영화 쿼바디스)” “혜민스님 정도면 재산 많은 것도 아냐, 토굴치곤 비싼 토굴(YTN 뉴스)” 이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는 우리 사회의 종교. 이는 종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든 욕심 가득한 각자의 마음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종교는 과거 세속를 청산하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깨닫는 영적인 영역이지만, 이제는 아닌 듯하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진정한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는 가장 먼저 이 종교계에 불어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북방문제연구원‧2032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 민간추진위원회 공동포럼 '맞손'
북방문제연구원‧2032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 민간추진위원회 공동포럼 '맞손'
(사진=2032 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민간추진위원들과 대표 법학박사 정광진 교수)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북방문제연구원과 2032 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민간추진위원회가 남북 통일을 위해 함께 나선다. 북방문제연구원과 ‘2032 하계 올림픽 서울 평양 개최 민간 추진위원회’는 이달 25일 경기대학교에서 성공적인 준비를 위하여 학술포럼을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주제는 정별진 발제자의 미국대선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정국진 발제자의 팬데믹 이후 남북한과 미·중 관계 및 2032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민간추진위원회의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의견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포럼에 광복회 서울지부장이신 장호권회장님, 국회외교통일위원회 간사인 김영호 국회의원, 2032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 법안을 발의한 외교통일위원회 안민석 국회의원, 서호 통일부차관, 박상철 부총장 등이 축사와 격려를 위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대선에서 대북강경노선의 기조를 유지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한 남북교류협력 등에 많은 변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럴수록 우리는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여 한반도의 불안전성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팬데믹과 수해 및 3제재로 북한정권이 위험한 행동을 취할수록 우리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을 통하여 2032년 하계올림픽서울평양개최가 순항을 하여 남북통일을 이루는데 일조를 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난극복 국민대회, 코로나19 극복 "함께 기도합시다"
국난극복 국민대회, 코로나19 극복 "함께 기도합시다"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달 출범한 국난극복 국민대회. 이번엔 국민단합을 앞장서기 위해 국난극복 기도회를 15일 개최했다. (사진=칼빈교회 집행부와 국난극복 국민대회 관계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김근수 칼빈대학교 총장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기도회에서 강유택 담임목사는 “코로나 여파로 고난을 겪고있는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온 국민이 단합하는 슬기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며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지역주민과 동네 소상공인들을 돕고 섬겨야 한다는 말씀을 강조했다. (사진=장정구 전 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온(공동대표)가 김근수 칼빈대학총장에게 박태옥화백의 서예작품을 전달했다) 각 교회마다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는 이날 기도회에는 전 평화UN사령관 안충준 장로와 한국역사학자 서굉일 장로도 참석해 국난극복 기도회 릴레이를 선언했다. 이날 백양 박태옥화백의 서예작품을 칼빈대학교 김근수 총장에 기증했으며, 가수 황충재씨가 참석해 자신의 노래 ‘힘을내자 대한민국”을 함께 불렀다. (사진=김윤영 공동대표가 국난극복 국민대회 경과보고 및 내빈 소개를 하고 있다) 그 동안 국난극복 국민대회를 기획하고 대장정에 나선 공동대표 김윤영(작가)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IMF위기를 극복한 대한민국의 단결력을 떠올리며 코로나위기를 극복하는 한민족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보여드리고 싶어서 국민운동을 준비하였는데, 칼빈교회에서 앞장서줘서 매우 감사하다"고 전했다. (사진=김윤영 공동대표가 국난극복 국민대회 경과보고 및 내빈 소개를 하고 있다) <국난국복 국민대회 5대 실천 사항> 1. 온 국민 스스로 방역에 앞장서며 건강지키기 2. 이웃사랑 재능기부 3.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국민단합 4. 소외계층 취약계층 보살피기 5. 착한 소비운동으로 경제살리기
궁궐한복 한류의 새 바람... 모델경연 제주대회 열려
궁궐한복 한류의 새 바람... 모델경연 제주대회 열려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궁궐한복 한류의 새 바람 불다... 궁중한복 모델경연 제주대회 열려 궁중코리아(총회장 차혜숙)는 ‘2020 한류월드스타 궁중코리아 제주’ 궁중한복 경연대회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제주 금강산콘도와 산방산유람선에서 열렸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선발된 32명의 모델들이 참가해 과거 조선시대의 임금, 왕비 포졸의 전통의상을 재현했다. 행사는 코로나19로 비대면으로 무관중 하에 온라인으로 중계됐다. 행사는 32명의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워킹. 궁중코리아 제주 트롯가요 페스티벌까지 다채로운 행사로 채워졌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가수 구도윤씨가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차혜숙 궁중코리아 총회장은 “아름다운 우리 전통 궁중한복을 통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전세계에 홍보하고, 이를 통해 코로나19로 한국여행을 오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와 제주를 알리고 온라인으로 시청하도록 하기 위해 무관중 SNS로 거행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신미숙 모델은 “아름다운 제주에서 이런 대회가 열리는 것은 우리 전통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고, 특히 제주라는 관광명소에서 거행된 것은 한국의 관광산업에도 큰 홍보효과가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궁중코리아는 6년 전부터 전국 시‧도별로 예선을 치루며, 년말에는 총결산대회를 열어 홍보대사로 위촉해 전세계에 우리 고유 궁중 전통한복을 홍보해오고 있다.
[인터뷰] '보라빛청춘, 들꽃 같은 여인아' 가수 국희를 만나다
[인터뷰] '보라빛청춘, 들꽃 같은 여인아' 가수 국희를 만나다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세월이 가네 청춘이 가네 인생길 가슴만 타네 새 장 속에 갇힌 청춘 던져버리고 북치고 장구치고 살아보잔다“ -국희 '보랏빛청춘' 中 오늘은 꽃처럼 아름다운 트롯 가수 ‘국희’님을 만나 그의 삶을 들어 보았다. 긴말은 생략. 가수의 삶을 느끼기 위해선 노래를 감상하면 된다. 먼저 그녀의 인생 노래를 읊어보자. (사진='보라빛청춘, 들꽃 같은 여인아'를 부른 가수 국희) Q. 안녕하세요. 가수 국희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수 ‘국희’입니다. ‘보라빛 청춘, 들꽃 같은 여인아’ 현재까지 두곡을 내서 활동을 해 왔습니다. 저는 가수 생활을 뒤늦게 시작했어요, 평범한 주부이자 두 아들의 엄마로 살다가 50대가 돼서야 가수의 삶을 시작하게 됐죠. Q. 성격이 굉장히 밝게 느껴지는데, 좀 어떠신가요? 제 성격이요? 혼자 있을 때는 좀 덜렁덜렁 해요. 좀 천방지축이에요. 제가 집에서 셋째 딸이에요. 어릴 적 누가 이야기를 하면 꼭 반대되는 말을 했어요. 반항심 때문은 아닌데...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작은 것들에 욕심이 많았어요. 엄마가 무언가를 사오면 꼭 저 혼자 먹었어야 했어요. 성격이 좀 모났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언니들이 있다 보니 질투가 많았던 듯해요. Q. 가수가 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오셨나요? 음... 학창시절에도 그렇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방황이라고 할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어요. 살다가 힘들어서 집을 나와서 살기도 했었죠. 물론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금방 돌아왔지만요. 저는 굉장히 자유분방한 성향이라서 더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장사를 하면서 두 아이를 키웠는데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엔 분식집, 고깃집, 횟집, 다양하게 했지요. 늘 아침에 셔터를 올리고, 치열한 장사를 한 후에 다시 셔터를 닫는 인생을 살았었죠. 그러다 어느 날 삶에 큰 회의를 느끼게 됐어요. “이제 나도 내 삶을 살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지금은 두 아들이 다 자라서 벌써 한놈은 장가가고, 한놈도 곧 가요. 남편과는 헤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났거든요. 기분이 묘했어요. 어느 제 생일날 아들 내외와 식사를 하는데 큰 아들이 저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이제 엄마만 가면 된다”고요. 참 의젓하고 든든한 아들들이에요. 큰 아들은 아버지나 오빠 같이 든든한 남자친구 같고, 작은 아들은 묵묵한 딸 같은 친구 같아요. 작은 놈은 엄마가 어질러 놓은 옷까지 다 정리할 정도로 가정적이라니까요. (사진=가수 국희와 국희의 두 아들, 한 며느리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Q. 가장 보람됐던 일은? 제가 가장 잘했던 일은 두 아들을 기른 것도 있지만, 지금은 그를 넘어서 지금 제 자리에서 ‘국희’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에요.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해요. Q. 목표가 있으시다면? 원래 목표가 5층 건물을 갖는 거였는데,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고 다 까먹고, 이젠 사라졌네요. 하하... Q. ‘보라빛청춘’은 어떻게 받게 됐는지? ‘보라빛 청춘’은 가사를 받았을 때 가슴이 울컥했어요. 왜냐면... 노래 가사가 제 가슴을 울렸거든요. 사실 저는 원래 노래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장사를 하다가 큰 슬럼프가 와서 좀 쉬려고 하다가 우연히 시작하게 된 거죠. 우연히 알게 된 가수 신태풍 선생님이 계신데, 인연이 되서 곡을 받았아요. 그때 받았던 곡이 첫곡인 ‘들꽃 같은 여인아’에요. Q. 곡을 받으셨을 때, 보라빛 청춘의 어떤 구절이 마음에 와 닿으셨을까요. “세월도 가고, 청춘도 가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구절을 보고 제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짐했죠. 나도 멋진 인생 한번 살아보자고. 다짐 후에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신기하죠? 신인상도 받고 연예‧예술 시상식에서 모범상도 받았어요. Q. 인생에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은? 저희 둘째 언니요. 저는 우리 엄마랑 1시간만 있으면 싸워요. 그런데 언니는 한결같이 어머니와 대화하고 모시더라고요. 언니는 언니인가 봐요. 최근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은 언니가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됐어요. 또 가수 한분이 생각나는데 '도훈' 선생님께도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이 자리를 들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진=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가수 국희) Q. 좋아하시는 곡이나 가수가 있으신지? 주현미 선생님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집에서 연습하면서 항상 따라 불러요. 또 김용림 가수님 노래를 좋아해요. 집에서도 혼자 노래를 불러요. 요즘은 유튜브로 다 볼 수 있잖아요. 어떤 식으로 부르는 지 관찰하려고 TV에 연결해서 큰 화면으로 따라 부르면서 연습을 해요. Q.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남은 삶은 계속 가수 '국희'로 살고 싶어요. 두 아들도 결혼을 했고 오롯이 제 자신만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가수 국희로써 이름을 알리고 위해 활동에 전념하고 싶어요. 저는 주현미 선생님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늦게 갑작스럽게 시작했으니까요.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게 전부에요. Q. 다음 곡은 언제쯤 준비가 될까요? 이종민 선생님이라고 계셔요. 그분한테 제가 가사를 드리고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어요. 가사를 좀 더 수정해서 발매할 예정이에요. 제목을 ‘인생노래’라고 짓고 싶은데,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행복의 노래’라고 지으면 어떠시냐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든 결정되겠죠. 어떤게 나아요? Q. 좋아하시는 곡이나 가수가 있으신지? 주현미 선생님 노래를 정말 좋아해요. 집에서 연습하면서 항상 따라 불러요. 또 김용림 가수님 노래를 좋아해요. 집에서도 혼자 노래를 불러요. 요즘은 유튜브로 다 볼 수 있잖아요. 어떤 식으로 부르는 지 관찰하려고 TV에 연결해서 큰 화면으로 따라 부르면서 연습을 해요. Q.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남은 삶은 계속 가수 '국희'로 살고 싶어요. 두 아들도 결혼을 했고 오롯이 제 자신만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가수 국희로써 이름을 알리고 위해 활동에 전념하고 싶어요. 저는 주현미 선생님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늦게 갑작스럽게 시작했으니까요.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게 전부에요. Q. 다음 곡은 언제쯤 준비가 될까요? 이종민 선생님이라고 계셔요. 그분한테 제가 가사를 드리고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어요. 가사를 좀 더 수정해서 발매할 예정이에요. 제목을 ‘인생노래’라고 짓고 싶은데,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행복의 노래’라고 지으면 어떠시냐고 하시더라고요. 어떻게든 결정되겠죠. 어떤게 나아요? Q. 두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제가 생일이었어요. 그전 날에 아들 부부와 식사를 했는데 아들이 “엄마 내일은 뭐해?” 물어보더라고요. 자고 있는데 큰 아들이 온 거예요. 소고기‧미역‧쌀‧간장 등을 사 온 거예요. 엄마가 미역국을 안 먹을 것 같아 만들어 줬데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너무 고마웠죠. “앞으로 더 잘해주려고 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달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바람이 있다면, 아들들은 형제니까 우애를 지키며 살겠지만, 며느리들은 피도 안 섞이고 남으로 만났잖아요. 그러니 며느리들끼리 서로 친하게 자매처럼... 다복하게 살면 좋을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터뷰를 하고 나니까, 저도 사랑이 하고 싶어졌어요. 잔잔한 밀물처럼 살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거친 파도처럼 살아왔거든요. 오직 저만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또 만인이 보는 방송에서 작은 언니랑 작은 형부 자랑을 하고 싶네요. 언니, 형부 사랑해요! (인터뷰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