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29건 ]
청담 장윤숙 시인, '2021 한국노벨타임즈 유관순 문학상' 수상
청담 장윤숙 시인, '2021 한국노벨타임즈 유관순 문학상' 수상
(사진=청담 장윤숙 시인)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청담 장윤숙 시인이 ‘2021 한국노벨타임즈 유관순 문학상’의 영예를 얻었다. ‘한국노벨타임즈’는 지난 2일 서울 신상갤러리에서 열린 ‘2021 한국노벨타임즈 유관순 문학상’ 시상식에서 청담 장윤숙 시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이날 장윤숙 시인은 유관순 열사의 유언시와 이육사 시인의 광야를 낭독해 듣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장 시인은 한국방속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를 나와 2005년 ‘행복한 미소로’라는 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장 시인은 등단 전 생업을 위해 ‘청능사’로 활동하며 보청기 상담 및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는 ▲월간 시사문단 빈여백 동인 ▲북한강 문학비 추진위원, 사무국장 ▲황금찬 시인 동로페 수상 ▲아세아 문예지 글수록 ▲참좋은이들 21 글수록 ▲국제 문예지 고려달빛 수록 ▲ 경방필 백화점 시화전시 등의 문학 활동을 해 왔다. 장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민족 독립의 어머닝니 유관순 열사님의 유언시와 이육사 시인의 저항시를 낭독하게 돼 정말 영광”이라며 “과거 민족의 혼을 담은 위인들의 마음을 담아 아프고 병든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천지 교인 명단 유출한 목사 '징역' 선고
신천지 교인 명단 유출한 목사 '징역' 선고
[선데이뉴스신문=박민호 기자] 신천지예수교회 대전교회 교인들의 명단을 무단으로 수집, 유포한 개신교 목사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전지방법원에 따르면, 지난 5일 신천지대전교회 교인 4천549명의 개인정보 파일을 부인에게 전달해 인터넷 카페 등에 유포한 혐의 등으로 대전 동구 지역 목사인 이 모 피고인에게 징역 8월(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360시간)이 선고됐다. 피고인인 이 목사는 전국 신천지 교인의 개인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저장 보유하고 있었다.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부인 이 모씨가 주변에 신천지 교인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신천지 교인 명단을 요구하자 대전지역 교인 4500여 명의 명단을 편집해 전달했다. 피고인의 부인 이 모씨는 전달받은 이 명단을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직원들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업로드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위 개인정보를 열람하게 했다고 법원은 지적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될 경우 그 대상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물론 무분별하게 상업적으로 활용되거나 명의도용, 전화사기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개인정보 유출 범행의 죄책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이어 “피고인이 전송한 4500여 명의 명단에는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기재돼 있었으므로 유출한 개인정보의 규모가 막대하다”고 적시했다. 법원은 “개인정보 유출로 해당 개인정보주체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리라 판단되고 개인정보를 이용한 범죄에 노출될 위험성도 발생했다”며 “실제로 명단에 기재된 개인정보 주체들은 개인정보 노출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어 이 사건 범행의 불법성이 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신천지예수교회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발생과 함께 교인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심각했다. 이들 중에서는 직장 해고, 권고사직, 따돌림, 왕따, 문자 폭탄 등의 피해를 겪기도 했다”며 “해당 명단은 목회자들 사이에서 공유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되어 있고 정당한 방법에 따라 수집된 것이 아니기에 보관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 칼럼]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 : 80년 민주화 봄의 진실
[역사 칼럼]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 : 80년 민주화 봄의 진실
[기고=김평 시인, 칼럼니스트] [사진=김평교수, 시인, 칼럼니스트] 유럽에서 가장 슬픈 역사와 아우슈비처 수용소가 있는 폴란드 PL의 '슬픔의 노래' 작곡가인 헨릭 구레츠키는 예술가란 ‘남은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히 느끼는 자’라고 했다.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강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강이 있음을 깨우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예술가다. 그렇다. 우리나라 80년 민주화 봄의 민주화의 진실이 바로 그러하다. 필자는 예술가이자 교수로 80년 민주화 봄 당시 직선 대학학생회장으로서, 직접 현장에서 국내 최초 민주화를 선언하고 실천한 당사자로서 역사적 의무와 책임감으로 현재까지도 역사의 뒤안길에서 숨겨진 그 역사적 진실을 그 당시 계명대신문 축쇄판과 저의 경험과 담당 형사의 증언을 토대로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아 청사에 빛나는 민주 역사가 되는데 일조를 다하고자 함이다. 이점 깊이 깊이 재인식하시어, 민주화의 봄의 꽃 봉오리가 활짝 핀 오늘 이 시점까지도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혀 오도되고 잘 못 기록되어 있는데도, 그 누구도 역사를 바로잡아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고 있음에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으로 힘겹게 동분서주하며 이 글월을 고언드리오니, 부디 역사 바로 세우기에 관심과 격려있으시기를 앙망합니다. 이러할 때만이 대통령께서 얼마 남지 않는 임기를 마치시고 길이길이 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바랍니다. 현재까지 민주화의 봄 또는 서울의 봄의 기록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신군부의 1980년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까지의 일련의 과도기적 민주 역사로 의미있는 시기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를 회고해 보면 긴급 조치로 일관된 정치 암흑기로, 10.26사건을 계기로 암울했던 유신체제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민주사회로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넘쳐나고 꿈과 희망에 온 국민이 부풀어 있었던 혼란과 희망이 뒤범벅된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 이런 혼란을 틈타 암암리에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집권야욕에 불타서 제2 구테타인 12.12 군사반란을 자행하고, 계엄령 하임에도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김재규 일당의 검은 돈을 받아 전두환 합수부장의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제2군사 구테타인 12.12군사반란을 결행하고, 로보트 대통령 최규하에게 사후 재가를 받아 합법화 하여 군사정권 창출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중앙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현실을 모르는 채로 민주화의 봄이 왔다고 들떠서 민주화의 희망과 꿈으로만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지요. 심지어 정치 구단이라던 삼김씨들 마저도 서로 대통령병에 걸려 꿈만 꾸고 있었으니, 일반 민초들이야 당연히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학생회에서는 신군부가 정권을 창출해 향후 군사정부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중앙 정보국과 전국대학생연합회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민주화를 선언하고 전두환 퇴진을 미리 외쳤던 것입니다. 계명대학교 대학생회에서는 향후 전개될 민주화 항거 실행 계획을 미리 예견하고 그 때까지 산발적으로 우리나라 민주화를 외치면서도 또 한편 학내민주화도 병행하였던 것입니다. 민주화의 봄 또는 서울의 봄이란 이름으로 불린 연유는 그 당시 우리나라 민주화 상황이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있었던 민주화운동을 지칭하는'프라하의 봄'에 닮아있어 그 비유로 그렇게 명명되었던 것입니다. 타 대학은 우리대학이 민주화 운동을 외치고 결행하는데도 모든 대학이 불구경하듯 보고만 있을 때 우린 지속적으로 대학 내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국가 민주화 쟁취를 위한 항거를 병행하다가 결국 직선학생회장 선거 전,후로 국가 민주화로만 물꼬를 돌려 전국에서 최초로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민주화를 선언하고 '전두환 물러가라. 신현학 물러가라. 계엄령 철폐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민주적 절차로 대구 대명동 계명대학교 캠퍼스에서 2.28 민주 성지까지 행진한 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선언까지 대구지방을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익환 목사나 백기완 소장, 김동길 박사 등 민주투사들로부터는 계명대학교가 대학 민주화 성지로 일약 인정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정코도 용감한 어린 중,고등생들이 중심이 된 2.28학생의거가 거룩한 4.19혁명의 도화선과 길라잡이였듯 민주화의 봄 시절 대구 계명대학교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은 민주화의 가는 길에서 꽃 봉오리인 광주민주운동의 도화선이요, 길라잡이다. 따라서, 민주화 봄꽃이 활짝 핀 오늘 41년 전 그 당시 그날을 회상하고, 기억 하며 계명대학교 민주화 관련 기사내용과 현황 등을 계명대신문 축쇄판을 중심으로 사건 진행 과정별로 살펴보고, 기록하여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 가는 잘 못된 민주역사의 오점을 바로잡고, 기록함으로 청사에 빛나는 민주역사가 되도록 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한편 그 때 그 당시 민주화 과정 속에서 희생되거나 합수부에 끌려가 고문당하고 핍박받고 아직도 사회와 단절된채 아무른 보상도 명예도 회복되지 못한 진정한 민주열사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함에 그 목적이 있음을 깊이 인식하시어 선처 있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먼저, *2권(1974년~1980년,신문202호~401호) 739 Page를 살펴보면, 긴급조치 9호 해제로 데모사태로 구속되었던 본교학생 8명이 석방된다. (1979.12.8.)그 명단을 보면 권오국 임진호 이성면 이춘성 박찬수 박명규 정인석 이근무 등인데 왜 이들을 살펴보냐면 이 복학생들이 80년도 민주화의 봄 민주 항쟁 과정에서 학생회 구성과 데모사태를 이끄는데 주도적으로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긴급조치로 구속된 이들이 긴급조치해제로 구속에서 해제된 8명의 학생들이 80.2.19일 학칙및시행세칙 개정안 부칙을 근거로 모두 복교 조치되었고, 한편 여태까지 학생회가 대학교로부터 임명되던 호국단 체제에서 처음으로 자율적인 직선제 선거로 구성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학보 80.2.19일자를 살펴보면, 80.1.21일 오후2시에 총장및학생처장과 관계교수들과 학생대표 60명이 학생대표 간담회에서 80년 민주화 봄맞이 자율화 방안을 모색하였다. 1980.3.18일 신문을 보면, 1980.3.6일 이문용학생처장은 '학생 자율 최대한 보장하고 학도호국단 조직 준비위원회 준비위와 단규기초위원회 발족'하기로 하였다. 1980.4.1일자 신문에서는 1980.3.15일 총 학생회 새 체재 회칙 마련, 각급 학생회장 직선으로 결정한다로 발표되었다. 1980.4.8일자 신문을 보면, 80.4.1일 오후 본관 앞 빌라도 광장에 모여 총장 신일희 사태와 어용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학원 자율화 진통이 계속 되었고, 총장이 학생들에 의해 총장실에서 노천강당으로 끌려나와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사항을 해명 하고 사과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또한 1980.4.2일 계명대학교 학원 민주화 추진위원회 이름으로 5개항 결의문이 선택되고,80.4.4일 어용교수 10명이 발표 되었고, 교무처에서는 특별시험 실시도 발표하는 등 민주화 과정으로 가는 수 많은 진통 끝에 결국 이문용 학생처장은 80.4.7일 직선학생회장 선거를 4.17일에 실시한다고 담화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 후에도 민주화를 향한 진통이 계속되다가 *1980.4.15일자 신문에서는 1980.4.8.일 오전 12시 민주화촉진위에서는 노천강당에서 4.4백서에 대한 해명을 하다가 지난번 결의사항에 대한 총장의 확답을 요구하다가 오후 3시30분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기물을 들어내고 농성에 들어갔고, 긴급 소집 된 교수회의에서는8인 소위원회의가 구성되어 농성학생들과 함께 철야 농성에 함께 했다. 1980.4.9.일 오전 철야농성학생 일동은 9개항의 결의문을 발표하고 총장사퇴와 학원 민주화 선언하자 오후5시30분 동서 문화회관에서 속개된 교수회의에서는 총장지지를 선언하자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계속 교내 시위를 벌였다. 1980.4.10일 농성 3일째 되던 날 교수8인 소위원회가 해체되고 각 단대 학생대표와 학교 간부 3인으로 9인 소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오후2시30분급기야 300여명 농성학생들이 본관 교수실을 점거하자 교수 회의로부터 전 권한을 위임 받은 9인 소위는80.4.11일 휴교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한편 이날 교수실에서 농성 중이던 학생들은 밤11시경 복학생을 통해 외부인 개입이 되어 농성이 깊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극적으로 농성을 풀게된다. 그 후 새벽 1시에 순수학생으로 돌아가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일련의 사태에 대한 총장의 사과를 받고 자율화 터전을 극적으로 마련하였다. 9인 소위는 교수회의 결의사항 전문을 공개 발표하고 ,교내 민주화 사태에 대한 총장 특별 담화문을 전교생에게 서신으로 발신하여 사태에 대한 책임과 학원민주화 그리고 학원 정상화 방안 관련 내용을 통지하게 된다. 1980.4.22일 신문에 보면, 그러다가 드디어 그토록 갈구하던 6년 만에 학도호국단에서 되돌아온 직선 학생회장 선거를 위한 입후보자 지상소견발표가 선거일 이틀 전에 총학생회장 위주로만 소개되었다. 그 면면을 보면 기호1권봉이, 기호2 장일성, 기호3 이현묵, 기호4 장상호, 기호5 장지헌, 기호6 최상룡, 기호7 배희진 등 7명이 입보하였고, 각 단대 학생회장 소견발표는 단대별로 선거일 전에 노천강당에서 학생들이 집합된 가운데 직접 연설로 진행하였다. 1980.4.22일 신문에 의하면, 학생회장 선거는 대강당에서 4.24일 오후 9시30분까지 진행 후 4.25일 새벽2시경 개표 완료후 25일 당선 공고하게 되었다. 1980.5.6일 신문 발표에 의하면, 주간 총학생회장에 복학생들이 주축이 된 배희진군이 961표로와 154표 차점자를 누르고 당선되었고,2부대 학생회장 은 제가 5명의 후보자중 240로 차점와 27표차로 새벽 2시에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 외 단대 학생회장으로 문과대 박노덕 외국어대 이상윤 사회과학대 이지인 경영대 신 양 이공대 감수상 예술대 이영기로 총학생회를 구성한 후 바로 1980.5.1일 출범을 위한 5개항의 민주화관련 성명서부터 4월28일부터 5월1일까지 치르게 된 중간고사를4월26일 학생회가 교무처에 건의한데로 5윌8일 부터 각 단대별로 교수의 재량으로 맡기되 한학기 동안 옳은 강의가 없었으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레포트로만 담당교수가 평가해 학점을 준다고 교무처 허락 없이 벽보로 공개 발표했고 대학역사상 처음으로 중간고사를 변칙시행 한다고 공개 발표했다. 그래도 총장도 교무처장도 담당교수들도 인정하고 시행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행여 학생들로부터 어용교수로 몰려 집에 애기보러갈까 두려워 학생회장에게 잘 보이려 먼저 회장님으로 모시던 학생회장 천국이었으니 따를 수밖에 없는 해괴망측한 민주화 시절의 한 슬픈 단면을 볼 수있었다. 특히 계명대신문 축쇄판1980년~1985년(402호~560호)81년2월 3일호에 의하면 80년 9월9일 휴교중임에도 동서 문화회관에서 뻐젓이 직선학생회장 임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각 과 대표들을 모아 간선으로 김시학을 회장으로 선출하여 호국단을 재출범시키는 한 학교 2체제 학생회가 구성되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그 당시 국가적 혼란상을 잘 설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고 본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광주민주화의 도화선이요 시발점이 된 계명대학교 민주화 봄의 진실을 깊이 살피시어 잊혀져가는 민주화 봄의 진실을 바로 잡아주시어 빛나는 역사가 되도록 하시어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 여태까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보람되게 하시고, 그 당시 함께한 민주열사들의 젊음과 인생이 헛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학교환경위생협회,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 필요성 '강조'
한국학교환경위생협회,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 필요성 '강조'
[선데이뉴스신문=박민호 기자]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 비치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전국의 시군구에서 제정되고 있다. 갑작스런 화재상황에 처할 시 사망자의 상당수가 유독가스에 노출돼 의식을 잃어 질식한다. 이런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공기관, 교육기관 다중이용 시설 등 주요시설에 화재 대피용 방연마스크 비치는 필수 요소다. 안전한 화재대피 환경을 홍보함으로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게 개발된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는 골든타임 내에 안전하게 피난을 도와주는 제품이다. 한국학교환경위생협회는 별도의 교육 없이 편리하게 착용이 가능한 제품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긴급대피의 방연마스크는 남녀노소, 안경착용자, 노약자 등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착용이 가능하다. 또한 실전용 응급대피 방연마스크는 말 그대로 안구와 호흡기를 보호해 질식을 막고 호흡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다. Q. 화재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1. 유독가스 연기에 의한 호흡곤란의 질식사 2. 연기, 화염, 암흑에 대한 공포감으로 심리적 패닉현상 3. 생존 골든타임내의 시간을 놓쳐서 안타까운 사망 4. 연기와 암흑으로 인한 시야확보 문제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질식사 5. 화재로 인한 공기중 산소농도 부족으로 질식사 등 Q. 제대로 된 방연마스크를 선택하기 위한 확인방법은? 1. 제품포장을 어둠속에서도 쉽게 개봉(찢기)하여 빠른 착용이 가능한지? 2. 남녀노소, 안경 착용자, 노약자도 쉽게 쓰기 편한 구조인지? 3. 연기와 화염에 눈 보호로 시야확보를 통한 탈출구 찾기가 되는지?(물수건 형태는 이 기능이 취약함) 4. 어두운 환경에서 대피자 식별이 가능한지? 5. 안면방연마스크가 화염에 닷을 때 불에 붙지 않는 재질인지? 6. 방연마스크 착용 후 필터가 턱 구조에 잘 맞아 호흡이 원할한지? 7. 방연마스크 착용 후 불이 붙어서 착용자에게 위험이 더 초래되지 않는지? 8. 방연마스크에 부가된 기능이 복잡하지 않는지? 9. 일회용 포장의 부피와 무게가 비치에 적당한지? 한국학교환경위생협회 관계자는 “화재대피용 방연마스크는 긴급한 화재상황에서 개개인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라며 “제품 구매 시 사용목적에 맞는 제품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기고] 동학순례길을 걷다 '길 위의 꽃, 사람을 만나다'
[기고] 동학순례길을 걷다 '길 위의 꽃, 사람을 만나다'
[기고=조정미 동학민회 사무국장] 순례의 의미는 종교적 유적지나 가치 있는 곳을 찾아 여행을 하며, 선지자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데 있다. 순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을 순 없다. 삶의 쉼표를 찍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홀로 또는 여럿이 길을 걸으며, 각자의 색깔을 찾아 나서는 게 순례의 참모습이라고 본다. 동학순례길을 걷으며 코로나19로 인해 위축해진 몸과 마음에 기지개를 피길 바라며 6회에 걸친 동학순례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사진=동학공원 위령탑) 전국에 동학과 관련한 지역은 무수하지만 이번에 정리한 동학순례길 노선은 보은 장안을 중심으로 하였다. 장안을 중심으로 만든 이유는 1860년, 수운에 의해 시작된 동학이, 해월을 중심으로 1893년 보은장안 동학민회에서 신원교조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보국안민의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동학 총본부에서 개최한 동학민회는 스스로 민회라 칭할 정도로 근대의식이 싹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집회로 평화적으로 진행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장안에서 시작된 보은의 동학순례길은 전체 6코스로 되어있다. 온전히 실천하는 생을 살다간 해월최시형이 기거하고 늘 걸었던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동학혁명, 삼일운동, 임시정부의 초석이 된 동학의 시대정신을 드려다 볼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한생명공동체로 서로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탈코로나시대를 살아가야 할 평화의 지혜를 ‘만물은 생명이니’라는 동학세계관에서 되새김할 수 있다. 참여자는 가족끼리 또는 소규모로 걸으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회복하며, ‘길 위에서 사람꽃’을 피어내며 걷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하며, 잃어버린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바램과 삶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동학민회(동학혁명북접사업회)에서는 동학순례길 안내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음카페 ‘동학민회’에 상세한 지도가 안내돼 있다. 포스터 제작은 역사바로알기를 펼치고 있는 보은교육지원청에서 후원했다. 동학순례길 1코스, 동학민회지에서 문바위골까지 (사진=동학민회지) 동학순례길 1코스는 보은 동학민회지에서 옥천청산 문바위골까지 26km이다. 1박2일로 여유있게 걷기를 추천한다. 옥녀봉 아래 장안 동학민회지에서 출발해 장내교로 삼가천을 건너면 벙어리성터 아래 개안리와 봉비리를 지난다. 이어 밭 사이 농로를 걷다보면 불목리에서 우진플라임을 만난다. 곧 청주상주간 고속도로 밑을 가로질러 수문2구마을 회관을 만나고 감지고개, 구름고개를 넘어, 마로면 관기초등학교를 지난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매콤한 꼬막짬뽕에 이어 최근에는 돈가스집이 인기가 좋다. 다시 신발 끈을 다잡고 태화루 골목으로 들어서면 적암천 사여2교(관기교)를 지나 고봉정사로 가는 길이 황금들판이다. 사립교육기관이였던 고봉정사 뒤로는 적암천이 삼가천에 흡수된다. 하천변에 갈대와 억새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곧 이어 삼가천은 보청천에 흡수되어 기대교 아래로 흘러, 옥천으로 폭 100m를 빛내며 청산으로 고고히 흐른다. 기대1교를 지나 만나는 선애빌에는 캠프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하루 밤을 머무른다. 민박도 가능하다. 발 빠른 사람은 청산면까지 가서 머물러도 좋다. 이어서 원정리, 대성리로 이어진다. 예곡교 옆을 지나 교평리로 들어서면 청산면이다. 앞에 길이 마을길이라면 이 길은 물길이다. 청산면 입구 청산공원에는 동학재기포기념비와 해월의 딸 최윤을 억지로 결혼시킨 청산군수 박정빈의 공덕비가 함께 있다. 청산면에서 식사는 생선국수나 올갱이국을 추천한다. 식사 후, 정순철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정순철은 최윤의 아들로 동요작곡가이며 손병희의 사위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운동을 함께 한 인물이다. 정순철의 생가와 생애벽화거리, 최윤이 옥살이를 했던 옛 관아터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다시 발길을 돌려 청산교를 건너 인정리, 한곡리마을회관을 지나 문바위골이다. 해월이 피난처였던 집(당시 대접주 김성원의 집)과 강론을 펼쳤던 장소가 있으며, 문바위에는 동학지도자 7인(박희근, 김정섭, 박맹호, 김영규, 김재섭, 박창근, 신필의)의 이름이 음각화 되어 있다. 문바위 위쪽으로는 동학농민혁명탑이 있으며, 문암저수리 위쪽엔 해월의 아들 덕기의 무덤과 동학군들의 훈련장 터에 수령이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해월은 수운이 죽은 후 보따리 하나로 36년을 떠돌이로 살았다. 이런 이유로 ‘최보따리’라는 별명이 생겼다. 보은 장안은 1885년 이후 해월이 자주 머무르며 육임소, 대도소를 설치하면서 동학조직의 중심이 되었고, 1893년 동학민회는 보국안민의 근대적 민중운동으로 전개하는데 초석이 됐다. 옥천 문바위골의 임시대도소는 강론과 훈련장으로 동학혁명의 세력을 키우는 장소가 됐다. 그리고 해월 가족들이 살아간 이야기가 담겨있다. 1코스는 ‘시천주’란 동학사상이 신분제를 해소하고, 남성, 여성, 어린이 자체로 존중받아야 함을 몸소 실천하고 살아간 위인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길이다. 동학순례길 2코스, 동학민회지에서 동학공원까지 동학순례길 2코스는 보은 동학민회지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까지 9km이다. 여유있는 걸음으로 걷는다면 3시간 소요된다. 옥녀봉 아래 장안1리 마을비에서 시작되는 길을 서원계곡 방향으로 걷다보면 ‘동학교단의 중심지 장안리’라는 안내판이 도로 옆에 한옥풍으로 서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옥녀봉 동쪽 산 아래에는 ‘보은장안 동학취회지’라 간판이 서 있다. (사진=문바위골) 옥녀봉 방향으로 틀어 농로로 들어서면 동학민회 집회장소가 먼저 보인다. 3월 11일 봄에 모인 사람들은 바람을 피하는 집회의 장소로 18일, 사방 150m, 높이 1.5m의 돌담을 쌓았다. 이 흔적을 논둑에 재현해 놓았다. 작은 규모의 축사를 지나 옥녀봉 아래 수로와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왼쪽 아래로 위치한 곳이 동학 중앙본부 역할을 했던 대도소 터이다. 수로길 중간쯤에는 우리단체와 속리초 학생들이 심은 국화 꽃길과 동학 그림안내판이 위치해 있다. 두부체험장을 지나 밭길로 구인리에 들어서면 구인교가 보인다. 구인교는 1894년 12월 북실전투에 투입된 관군과 일본군이 저녁을 먹고 대기하던 장소였다. 이제 오창2리 방향으로 간다. 가는 길에 오두막에서 쉬며 다시 걷는 기다란 농로는 장재리를 향하고 세조의 행궁터를 바라보며 목고개를 지나면 오창1리이다. 오봉산을 우측에 두고 가지런한 마을 오창길을 걷다보면 누청리이다. 막골을 지나 사괴정에서 느티나무, 은행나무의 정취를 느끼며 쉬어간다. 이제 누청 마을길로 들어서면 하늘색지붕의 옛 김소촌가가 있다. 이곳은 북실전투 당시 해월 및 지도부들이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집이다. 이제 성족리로 향한다. 성족리마을회관을 지나, 능이칼국수집을 지나 동학공원이다. 통곡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위령탑이다. ‘사인여천, 보국안민, 척왜양창의’라 새겨진 위령탑은 그들이 숨진 북실을 내려다보며, 2600여명의 염원을 현재도 하늘로 소리 높여 외치며 하얗게 서 있는 듯하다. (사진=장안비 돌담) 보은은 1863년 12월 수운이 체포돼 서울 압송 시에 보은관아를 경유할 때, 관아 이방이 아침저녁으로 공양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찍 동학이 전파되었던 지역이라 추측된다. 1874년 해월은 인제에서 단양으로 넘어오며 충청도의 동학세력을 넓혔고 1885년 장안에 들어왔다. 손씨부인과 합가해서 살았으며, 1887년 육임소 설치로 중앙조직을 체계화했다. 1893년에 대도소를 정식으로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보은민회를 주최하고, 포접제를 정비하여 대접주를 임명하였다. 1894년 3월 8칸, 6칸 규모로 대도소가 건축되었다. 하지만 동학혁명의 커다란 물살 속에서 10월 이두황에 의해 장안의 200여채의 농가, 400여채의 초막과 대도소는 불태워져 초토화된다. 연속되는 패배 속에서 우금티에서 돌아온 장안은 쉴 곳이 못 됐으며, 12월 북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17,18일 밤새도록 싸우다 2600여명이 전사한다. 2코스는 동학혁명 역사의 중심이었으며 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동학이 3.1운동, 어린이운동, 임시정부수립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근·현대 민주역사의 출발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안양중앙인정시장 '전통'서 '혁신'로
안양중앙인정시장 '전통'서 '혁신'로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안양중앙인정시장이 노점상(거리가게)정비를 통한 혁신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통시장 내 노점상은 서민경제와 지역경제할성화를 위해 암묵적인 운영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일부 상인들의 규범을 벗어난 영업으로 고객 유동선을 침범하는 등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이에 경기도와 안양시는 시장혁신, 상인혁신, 상품혁신, 고객혁신을 모토로 경기도형 전통시장 혁신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노점상 정비사업이다. 안양 전통시장 관계자는 “시장상권 관련 노점상 운영 실태와 문제점을 도출해 전국 노점상 정비 및 운영 우수사례와 실패사례조사를 통해 그 시사점을 도출하고 우수사례 성공적 대안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전문가 포럼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노점상 정비에 대한 정책기반 마련과 방향제시를 위한 것이다. 이에 더해 법적 제도적 내용 검토‧사업자 등록 및 세무처리와 행정사항 등을 종합하여 그 대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문옥철 혁신사업단장은 “전통시장 내 노점상 정비는 시장 활성화의 관건으로 법적 제도적으로 양성화가 어려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고객의 구매태도가 변화하며 노점상과 시장상인은 협력적 상생관계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라며 “고객은 노점상 자체가 시장상인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노점상 정비는 필요하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양시 관계자는 “시장상권진흥원은 그 동안 전통시장 노점상 정비에 대해 그 과정과 절차적 문제점 등을 사례로 학습해 상생협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며 “열정과 노력을 높게 사고 있다”고 전했다.
가평수목원에 '무궁화 테마파크' 들어선다
가평수목원에 '무궁화 테마파크' 들어선다
[선데이뉴스신문=곽중희 기자] 가평 수목원에 대규모 무궁화 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이다. ‘전 국민 무궁화 한 그루 심기 운동 연합'과 ‘가평 수목원’은 지난 25일 가평수목원 무궁화 테마파크 조성사업 건립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지난 2019년 수목원 가꾸기 업무협정을 약정했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으로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이라고 놋랫말에도 등장하지만, 최근엔 그 가사가 무색하듯 무궁화 꽃을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 단체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무궁화 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무궁화 심기 운동의 회원 모집은 전국 시도지부와 SNS를 중심으로 1차에 약 3만명의 회원을 모집한다. ‘전 국민 무궁화 한 그루 심기 운동 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는 가평테마파크 3만 평의 둘레길에 한반도 모형의 동산을 만들어 전국 회원들과 수목원을 찾는 청소년 등 관광객에게 무궁화 꽃을 한 번 더 상기시키며, 애국심과 정신을 고취 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궁화 테마파크가 조성되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적 가치와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몸과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초자연 속 휴식과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석기영 한국무예진흥원 회장과 손용화 장인액션스쿨 대표 등 유명인사의 무궁화심기운동도 확대하고 있다. 또한 박두호 회장은 현재 bw.com 국제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OFTG coin 발행사인 (주)라레도대붕광업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어 이번 가평수목원 무궁화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무궁화심기에 참여하는 회원들에게 나스닥 OTC MARKET 등록 주식 담보가 된 OFTG coin 100개를 보너스로 지급해 가평수목원 입장료 결재 및 쇼핑몰 사용에 도움이 되는 coin을 보유할 수 있게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나무심기로 지구 지키자” 에코인 글로벌 환경가요제 성료
“나무심기로 지구 지키자” 에코인 글로벌 환경가요제 성료
[선데이뉴스신문=박주은 기자]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나무심기릴레이 에코인 글로벌 환경가요제'가 첫 개막 축하 공연을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이번 가요제는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와 사단법인 환경보전대응본부 주관 하에 지난 25일 충북 영동군 일대에서 진행됐으며, '환경가수협회 분과위원회' 창립에 이은 글로벌 환경가요제 개막 축하 공연으로 열렸다. 환경 가요제 한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선발한 환경 가수의 활동으로 '나무심기릴레이캠페인'을 널리 알리고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고취 시키고 환경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공개 행사 대신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됐다. 주최 측은 방역 지침 준수하기 위해 행사 사전 방역을 최우선에 둔 채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는 이상권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 총재의 개막선언으로 시작됐다. 이날 1호 환경 가수의 영광은 가수 정은교씨가 수상했다. 그는 도선제 중앙회장으로부터 1호 환경 가수 증패를 수여 받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은 축하 메세지를 통해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의 범국민 나무심기릴레이 캠페인 등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적극 응원한다”며 “자연과 환경의 소중한 가치를 국민에게 알리니, 이러한 캠페인을 기념하기 위한 글로벌 환경가요제는 뜻깊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영동군의회 김용래 의장 외 다수 의원들의 행사 개최에 대한 축하 메세지가 도착했다. 이날 행사에는 20명의 가수들이 참가해 릴레이 형식으로 공연을 했다. 이상권 환경감시국민운동본부 총재는 "오늘 행사를 시작으로 가수 분들은 에코인 환경 가수로서 활동하게 됐다. 앞으로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나무심기릴레이 캠페인‘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게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대한민국 최초 호주 공인탐정 1호, 유우종 회장
[인터뷰] 대한민국 최초 호주 공인탐정 1호, 유우종 회장
[선데이뉴스신문=박주은 기자] 한국판 최초 셜록홈즈 유우종 “명탐정사”,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인 1983년부터 막내 삼촌의 의문사를 계기로 탐정의 꿈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는 “모의재판”이라는 연극에서 “판사”역을 했고 졸업 후 사회에서 배울 수 없는 특수한 교육을 배우기 위해 특전사를 지원했다. 약 5년간 특전사 사령부 특수전 교육대에서 세계 최고의 “명탐정사”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다지기 시작했다. 비정규전 특수훈련 중 잠복(매복), 추적(습격), 특전통신(CW:MORSE) 주특기를 기점으로 기사화 할 수 없는 특수교육을 담당했다. 1990년부터 “명탐정사”의 선진국의 학술과 공인탐정자격증을 취득하고자 영국, 독일, 호주, 미국, 일본 등에서 해외연수를 했다. (사진=독일, 호주 명탐정사 유우종 해외연수) 이후 미연방수사국 FBI 한국1대국장 이승규 2대국장 맹주성 국장들을 초청하여 FBI 수사기법 프로세스를 통해 선진 조사기법과 탐정의 학술과 실무를 넓히고 국제공인탐정들을 초청, 학술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공인탐정의 학술적인 연구를 46년간 해왔다. 2000년부터 대한민국 최초로 자격기본법에 의거하여 “명탐정사” FPI(FPI)민간조사원 자격증 교육을 한국능률협회 사회교육원에서 시작하여 서울 산업인력공단 그리고 대학교 평교원에서 실시해 대한민국에 “명탐정사” “민간조사원”을 창시하여 “명탐정사”시장을 극대화시켜 왔다. ‘공인탐정법 법제도화’ 20년간의 노력 유우종 명탐정사는 16대 국회 하순봉 의원의 보좌관 정순훈씨와 '공인탐정' 법제도화에 노력을 해왔다. 당시 '신용 이용에 관한 법률'로 한국에는 '탐정'이라는 용어가 사용 금지된 상태였다. 이에 '명탐정사' 창시자 교수 유우종 호주공인탐정1호는 PD(Private Detective)보다 PI(Private Investigator)를 고집해 왔다. 국어사전에 “탐정”의 의미가 훔쳐보다, 엿보다, 사생활 침해, 간첩 행위, 염탐하다 등등 부정한 의미가 있기에 16대 국회에서 공인탐정 법이 아닌 민간조사업법으로 법제도화 하고자 주장했으나 16대 국회에서는 법제도화에 실패했다. 이후 부단한 노력 끝에 대한민국에도 최초로 탐정이라고 불리는 '민간조사업법' 법제도화 공청회를 2005년 8월 29일 이상배 국회의원실을 통해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에서 개최하여 법 제도화의 불씨를 붙여 왔다. 17대 국회에서는 채재천 의원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탐정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민간조사업법'을 발의했다. 같은 법을 17대국회 이상배 의원은 경찰청으로, 채재천 의원은 법무부로 관리관청을 두고 발의하여 '명탐정사'의 싹을 튀우기 시작했지만 회기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 또한 법무부와 경창청의 탐정법 법제도화 열정에 용광로 같은 불씨를 살려 18대 국회 이한성· 강성천 의원은 법무부로 관리관청과 윤재욱 의원은 경창청으로, 을 두고 전문가간담회, 공청회, 포럼 등을 해왔다. 19대·20대 탐정법제도화 진행은 답보상태였다. OECD 가입국 중 유일하게 마지막으로 법제도화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21대 국회에서는 '신용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탐정용어' 사용 금지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이 국회발의 됐고, 2020년 2월 4일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6개월 후인 2020년 8월 5일부터 대한민국에도 ‘탐정’이라는 직업과 용어가 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명탐정사' 유우종 탐정중앙회(fpicenter.org) 중앙회장은 2020년 8월 5일을 대한민국 최초 '탐정의 날'로 선포하고 각종 언론과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 탐정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사진=터키선박 선장실 금고 달러 현금 도난사고 '명탐정사' 지문 현출 중) 유 회장은 “앞으로 ‘명탐정사’를 부정적인 의미로 보지 말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뜻(명탐정사 :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사건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사실 여부를 조사하고 사실 여부 조사시 사생활 침해나 주거지침입 등등 개별법을 위반하지 않고 공공장소에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으로 공식화된 프로세스를 통해 조사하는 전문가)으로 인식 전환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신 직업 선두 주자 ‘탐정’ 유 회장은 2013년과 2014년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 “미래를 함께 할 새로운 직업” 최고전문가로 참여해 “명탐정사”, 민간조사원을 신직업 선두분야로 부각시켰다. 현재 대한민국 “명탐정사”의 선봉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 회장은 “명탐정사”사 올바르게 성장한다면 개인이나 기업 국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OECD 가입국 중 대한민국만이 “명탐정사” 업종이 꼴찌로 승차하는 과정에 있다. 선진국에서는 사법기관이 부족해서 “명탐정사”가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공산국가나 민주주의국가도 국가가 국민의 가려움을 다 긁어줄 수는 없기에 공권력의 사각지대를 “명탐정사”들이 자유시장 논리에 의해 매워주어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신직업으로 존재 하고 있다. 국민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억울함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국민이 법을 믿고 따르는 환경이 조성될 것 이다. 기업이 사법기관으로부터 도움 받을 수 없는 것들을 “명탐정사”라는 신직업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 나갈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명탐정사” 시대를 맞이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 바뀌어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고 국민이 법을 믿고 따르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유우종 “명탐정사”는 대법원 감정에 관한 법률 형사소송법 13장 감정 제169조 와 민사소송법 제334조에 의거하여 수많은 교통사고감정과 현장 지문감정, 문서감정, 보험사고감정, 의료사고감정, 화재감정 그리고 포렌식분석, DNA분석 등등 많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분석하여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 바뀌는 억울함을 줄여 나가는데 한목을 톡톡히 하면서 “명탐정사”가 이 사회 마지막 남은 진실한 인성을 요하는 신 직업으로 자리 매김 하기를 바라고 있다. 철저한 자격검증 “명탐정사”는 일정한 FPI “명탐정사” 교육을 연수한 사람에 한해서 대한민국자격검정과리중앙회에서 실시하는 “명탐정사” 자격검정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이론과 실무를 60점이상 취득해야만 명탐정사 자격 라이센스가 주어진다. 마지막 관문은 자격증을 수여하면서 보증인 1명을 세워야하고 명탐정사 활동시 주거지침입 또는 사생활 침해 등등 개별법을 1회라도 위반하면 자격증을 박탈 한다는 “명탐정사” 윤리강녕에 서명하면서 비로소 한국판 셜록홈즈 “명탐정사”로서 활동을 할 수 있다. 유 회장은 “이 사회 마지막 남은 윤리직업 ‘명탐정사’는 업무시 어떠한 조직이나 나의 가족 나의 의뢰인편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며 어떠한 경우라도 사건의 사실여부를 사실 그대로 조사하므로 국민과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진정한 ‘명탐정사’가 되어야 한다. 만약 개별법을 위반한다면 멀리가지 못하고 개인도 지탄받지만 탐정업계가 국민과 국가로부터 미움을 받아 사회에서 퇴출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탐정협회나 관련 단체들은 이점을 명심하고 수박 겉핥기식 교육이나 검정으로 민간자격증 장사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45년간 불모지에 터를 닦고 모판을 만들어 탐정이란 씨앗을 파종하는데 있어 불량 탐정이 성장하지 않도록 관련업계에게 당부하고 당부하며 최소한의 기준으로 안정한 정책으로 서로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했으면 하고 간곡히 탐정업계에 부탁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