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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공천제 저질 정치문화
정당 공천제 저질 정치문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둔 4월 20일 밤의 일이다. 서울의 한 호텔 주차장에서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최모씨가 모당 공천을 책임진 사무총장 승용차에 1만 원짜리 100장 묶음 다발 2000개씩 든 사과상자 2개를 실었다. 현금 4억 원이다. 사무총장은 호텔을 나서다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잡혔다. 최씨는 8일간 숨어 다니다 오피스텔 다락방에서 체포됐다. 김제시장 후보 공천대가로 오간 돈이었다. 그 무렵 다른 당에선 원내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의 부인이 서초구청장 후보 공천 대가로 4억 4000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돈은 ‘주스 상자’에 담아 여러 번 전달했다. 같은 당의 다른 중진 의원은 서울 중구청장 후보 출마자로부터 케이크 상자에 담은 21만 달러를 받은 것이 드러났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구린 냄새를 피우는 것이 각종 상자다. 사과상자는 2002년 대선 ‘차떼기’ 때 활용했다. 2억~2억 4000만 원을 넣을 수 있다. 라면상자는 그 절반 정도여서 꾹꾹 눌러 담으면 1억 2000만 원이 들어간다. 2003~2004년 서울시와 인천시 건설업자 비리 사건 때는 굴비상자가 등장했다. 2005년 마사회 비리 사건 등을 거치면서 2000만 원이 든 곶감상자, 3000만 원을 넣을 수 있는 간고등어 상자, 100만 원 다발 3개가 들어있는 초밥상자 등으로 종류가 다채로워졌다. 여주군수가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에게 현금 2억 원을 전달하려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번엔 홍삼선물세트 상자가 사용됐다. 5만원권 덕분에 현찰 2억원 부피가 사과상자에서 홍삼상자로 축소됐다. 4년 전 지방 선거 때는 “5억 내면 공천이 되고 4억 내면 안 된다.” 며 ‘5당 4락’ 이란 말이 돌았다. 이번에는 ‘7당 6락’ 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번 달 들어 의원 보좌관이 기초의원 예비후보자에게서 공천현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입건됐다. 중앙선관위는 7000만 원의 공천현금을 제공한 지방의원 예비후보자, 입후보 예정자에게 1억 원을 요구한 지방의원 등을 고발했다. 민선 지방선거를 시작한 지 15년이 됐건만 아직도 돈으로 공천을 따내겠다는 저질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이나 군수 공천을 받으려면 2억 원은 껌값이라고 하더라.” 는 말이 버젓이 떠도니 기가 막힐 뿐이다. ‘공천 장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기초(일반 시·군·구) 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공천제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정당 책임자들이 이를 남용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적발돼 왔다. 특정 지역에선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 그러니 돈 뿌리는 걸 마다할 턱이 없다. 바로 ‘매관매직’ 행위인 것이다. 여주도 공천이 당락을 결정하는 곳으로 분류된다. 재선에 도전하려던 이 군수는 공천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기수 여주군수는 서울에서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의 차 안에 ‘기념품’ 이 든 쇼핑백을 두고 갔다고 한다. 이를 돌려주려던 이 의원 측은 이 군수 차량을 궁내동 서울 틀게이트까지 쫓아가 경찰이 입회한 가운데 현금 2억 원을 확인했고, 이 군수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공천용 돈다발’을 놓고 대낮에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량 레이스를 펼치는 코미디가 연출된 것이다. 한심한 정치 수준이 부끄러울 뿐이다. ‘여주 사건’ 은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정치권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당 공천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도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 는 정치인들의 오만이 자신들의 ‘묻지마 투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관위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적발한 불법행위가 1675건인데 이 가운데 금품, 향흥제공이 530건이다. 현 4기 지방자치 기초단체장 중 42%가 감옥에 갔거나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홍삼상자를 보고 5기 단체장들 앞길도 뻔히 보인다.
대한민국 해군의 영웅
대한민국 해군의 영웅
서양에서 훈장 제도는 12세기 십자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교도와 싸우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향하다 보니 서로 간에 구분할 무엇이 필요하다. 기사단마다 차림과 색깔을 달리하고 십자가를 독특하게 디자인한 표장을 옷에 달았다. 이때의 표장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가 또는 군주에 몸 바친 사람에게 수여되는 명예의 상징처럼 됐다. 기사단(Chivalric order)과 훈장(Order)의 영어 단어가 겹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훈장과 전쟁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영국에서 오늘날 가장 명예로운 훈장 중 하나가 무공훈장 ‘빅토리아 십자장(The Victoria Cross)’이다. 빅토리아 십자장은 1856년 크림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군인에게 처음 수여됐다. ‘적과 직접 싸우는 상황에서 용기를 보여준 군인’으로 수훈 대상자가 한정돼 있어 주로 병사들이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받은 사람이 1353명이다. 이 훈장을 받은 사람만 이름 뒤에 V.C. 라는 머리글자를 붙일 수 있는 영예를 얻는다. 미국 군인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다. ‘전투에서 자신의 의무를 넘어선 용감한 행위 혹은 자기희생을 보여준 미국 군인’으로 한 번의 작전에서 1개 사단당 1명만 받을 수 있다. 명예 훈장을 받은 군인에게는 본인의 계급에 관계없이 경례로써 예를 표하는 것이 미군의 전통이다. 천안함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해군 UDT 한주호 준위에게 충무무공 훈장이 추서됐다. 정부는 처음엔 33년 이상 군생활을 한 위관급 이하 군인에게 흔히 주는 보국훈장 광복장을 수여하려 했으나 한 준위가 전투상황에 준하는 악조건에서 목숨 걸고 구조활동을 펼치다 순직한 것을 평가해 훈격을 높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일생을 바친 군인에겐 국가가 그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없다. 남북한 군이 바늘 끝처럼 대치하는 최전선에서 한 준위가 보여준 용기와 희생을 생각하면 정부의 무공훈장 추서는 잘한 일이다. 6·25 전쟁 때 무공훈장 수상자로 선정된 16만 2900여 명의 봉사 중 아직 훈장을 받지 못한 사람이 8만 5000여 명이다. 이들에게 훈장을 추서하는 군의 ‘무공훈장 찾아주기 운동’도 마지막 한 사람이 받을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한 준위 빈소엔 6·25 전쟁의 영웅 백선엽 대장이 구순(90세)의 노구를 이끌고 직접 조문한 것을 비롯해 역대 해군참모총장, 해군 동료 장병들, 특전사 예비역 장성들, 연평해전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들, 주한미군 지휘관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한 준위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빌며 그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사명감을 기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침몰 현장을 방문한 데 이어 한 준위 빈소를 찾아간 것은 잘한 일이다.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군 최고통수권자다. 그런 대통령이 국토 방위의 최전선에서 군인으로서 사명을 다하여 실종된 젊은 병사들의 안위를 누구보다 앞서 걱정하고, 자신의 몸을 던져 실종 병사들 수색에 나섰다. 목숨을 잃은 한 준위에게 국민을 대표해 고마움과 슬픔을 표시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이 당연한 업무 수행에 안도와 위안을 느끼는 것은 2002년 6월 29일 2차 연평해전 때 북한 경비정 기습 공격으로 숨진 장병 6명과 그 가족들이 지난 정권들로부터 받았던 홀대와 무시를 아직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조차 영결식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 정신 빠진 나라 모습에 절망한 연평해전 전사자 한상국 중사의 부인은 2005년 “이런 나라에서 어떤 병사가 목숨을 던지겠느냐.”며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한주호 준위의 해군장은 우리 역사에 ‘대한민국 해군의 영웅’을 위한 자리를 새로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강희락 경찰총수의 질타
강희락 경찰총수의 질타
10만 경찰의 총수인 강희락 경찰청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사건사고의 홍수 속에 바람 잘 날 없는 경찰을 지휘하며 1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냈다면 조촐한 축하행사라도 함 직하다. 2년 임기의 절반을 넘긴 시점의 개인적 소회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경찰 서비스의 수요자인 주민의 관점에서는 그가 지휘지침으로 정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경찰’ 이 얼마나 구현됐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강 청장이 애초에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축하행사는 물 건너갔다. 부산에서 실종됐던 여중생이 숨진 채 발견돼 비상이 걸렸고, 나흘 뒤 피의자 김길태가 체포되기는 했지만 경찰에 부실 수사의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강 청장은 그래서 축하모임 대신 반성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국 지방경찰청장회의를 소집해 여중생 자살사건 대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찰은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고 했다. 강 청장은 “막을 수 있는 (여중생 피살) 사건을 못 막아서 너무 아쉽다. 신뢰와 존경받는 경찰이 과욕이라면 욕이라도 덜 먹는 경찰이라도 되자.” 며 부하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경찰에는 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한다는 자세가 유전인자로 흐르고 있다.” 며 “대충 수사하는 경찰은 총장 그만둬야 한다.” 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강 청장의 질책에 놀란 경찰은 어린이 청소년 대상 성범죄 전과자 관리를 강화하는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강 청장이 거론한 ‘시키는 일만 하는 경찰’ 에는 경찰 수뇌부도 포함된다. 경찰은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 여중생 살해범을 검거하라.” 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뒤늦게 대대적인 체포작전에 돌입했다. 지난 해 경기 고양시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사건 대처와 닮은꼴이다. 당시에는 이 대통령이 일산경찰서에 직접 가서 질책한 다음 날 용의자를 체포했고 이번에는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이틀 만에 김 씨를 붙잡았다. 경찰조직 전체가 강 청장의 반성이 여론의 질타를 모면하기 위한 면죄용이 아님을 행동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서울 강남의 어느 대형 유흥업소 업주와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경찰관이 지난 1년간 63명에 이른다고 경찰 스스로 밝혔다. 그 중에는 30통 이상 통화자 9명, 100통 이상 통화자 3명, 400통 이상 통화자 1audd이 포함돼 있다. 유흥업소 단속권이 있는 경찰관이 업주와 자주 통화하는 것은 이들 사이에 ‘검은 거래’ 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유흥업소와 일부 빗나간 경찰관들의 유착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그런 서글픈 구태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경찰은 유흥업소 업주 이모 씨의 차명계좌에서 경찰관들에게 돈이 흘러 들어갔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이 씨의 과거 휴대전화 통화기록도 살펴보고 있다. 이 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손님을 끄는 유흥주점 호객꾼 (속칭 삐끼) 이었다. 그런 사람이 강남의 대형 유흥업소 여러 곳을 운영하는 ‘큰손’ 으로 급성장한 것은 비호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씨의 업소도 불법영업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직원들만 잡혀가고 그는 처벌을 잘도 피해 나갔다. 유흥업소 불법영업과 그 뒤를 봐주는 비호세력의 존재는 이 씨의 업소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에 유흥업계와 경찰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검은 커넥션을 다 파헤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경찰이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끝내고 덮어버리면 유착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공직자들이 박봉 때문에 ‘생계형 뇌물’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 본연의 임무에 성실한 모범 경찰관에게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에서는 전 경찰총수와 경찰 50여명에게 ‘자랑스러운 칭찬주인공의 표창수상 한 바 있으며 소수의 경찰관 비리 등으로 다수의 경찰관까지 매도해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갈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불철주야 묵묵히 맡은 바 직무에 성실한 경찰관에게 격려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표상
대한민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표상
대한민국 해군 최고의 전사 한주호 준위가 차가운 바다에 목숨을 바쳤다. 천안함 구조 현장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악전고투하던 끝에 희생됐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해상 투수전투요원인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전우들에게 더 큰 위험이 따를 것을 알고 선뜻 나선 터였다. 46명의 젊은 해군 전우들의 생사를 몰라 온 국민이 애태우는 모습에 큰 사명감을 가졌을 것이다. ‘UDT의 전설’ 이던 그는 영웅답게 몸을 던졌다.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한 준위는 참 군인이었다. 국가의 안위와 전우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 앞에서도 몸을 사리는 법이 없는 용감한 전사였다. 50을 넘긴 노장임에도 여러 차례 소말리아 해적과 직접 교전을 벌여 제압했다. 극한 상황과 싸우는 특수요원으로서 항상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해온 한 준위는 후배 전사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전법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국가와 국민 모두 최고의 예우를 다해 한 준위를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하루 잠수하면 이틀 쉬어야 한다.” 는 안전규정도 바다 밑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후배들을 살려내려면 1분이 아쉽다는 그를 붙들지 못했다. 그리고 한 준위는 내리 나흘 잠수했다가 싸늘한 몸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지난 35년 수중폭파(UDT) 요원과 교관으로 뛰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후배들을 배치하고 지휘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2년 뒤 전역을 앞두고 오는 9월 직업보도반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설 채비를 시작하는 그에게 부대는 “이제 그만 쉬라.” 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과 해군을 위한 마지막 봉사.” 라며 잠수복을 입었다. 천안함이 동강나 가라앉은 45m 아래 바닷속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압의 다섯 배. 5기압이 넘어간다. 팽팽한 농구공을 넣으면 5분의 1로 쪼그라드는 압력이다. 거기서 10분만 작업해도 급격히 피로해지고 의식이 가물거린다. 무슨 임무로 바닷속에 내려와 있는지조차 잠깐씩 잊을 정도라고 한다. 수온도 체온도 영하에 가까운 3.5도다. 머리에 찌릿찌릿한 충격이 오고, 입에 끼우는 호흡기가 얼어붙을만큼 차갑다. 가뜩이나 흐린 서해 바닷물에 바닥까지 뻘밭이라 손목시계도 보이지 않도록 시야가 뿌옇다. 물살이 1노트, 시속 1.85km 넘으면 잠수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백령도 앞바다 조류는 5.3노트로 치달리고 있다. 현장에 달려온 민간 구조대원들이 선체 근처도 못 가보고 도로 올라와 손을 내젓는 바다였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초유의 국가적 위기다. 원인 규명과 실종자 구명이 늦어지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의 격량을 맞고 있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실종자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국가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전의 위중함이 뒤섞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한 준위의 생명은, 국가적 위기에 닥쳐 우왕좌왕 해선 안 된다는 경고로 삼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두고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과 온 국민이 절망과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 자칫 현재의 위기가 더 큰 위기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우리 모두 한 준위를 본받아 말보다 실천으로, 충동보다 인내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표상으로서 한 준위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기극복 역량이 있음을 희생으로 웅변해줬다. 한 준위의 빈소엔 그동안 해군 당국을 많이 원망하던 실종자 가족도 찾아와 “죄송하다.” 며 흐느꼈다. ‘한주호 준위. 국민은 당신의 거룩한 희생 앞에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가슴 속에서 잠시 흔들렸던 군에 대한 미더움을 되찾게 해준 당신을 향한 고마움을 어찌 나타내야 할지 모르겠다.’ 국민과 함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김순악 할머니의 숭고한 기부
김순악 할머니의 숭고한 기부
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김순악 할머니는 중국 각지의 위안소를 돌며 참담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기억했지. 다 얘기해 줄라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1928~2010)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구술해 책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 카이’를 2년 전 펴낸 역사의 증인이었다. 지난 1월 암으로 타계한 김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전재산 1억 826만원을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내놓았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경북 경산의 소작농 집안에 태어난 할머니는 열여섯 살 때 방직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집을 나섰다가 중국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시절을 짓밟혔다. “방문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으로 주인이 요만한 주먹밥 서너 개 넣어준다. 그럼 그걸 먹고 하루 종일 상대한다니 말이다. 일본 놈들한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으로 알면 그렇게 몬한다.” 할머니는 광복 이듬해 돌아왔어도 신산한 삶이 계속됐다. 식모살이와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잇다 일흔을 넘긴 2000년에야 정부·지자체에서 생활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일평생 우리 사회로부터 위로는커녕 상처만 가득 받고도 오히려 큰 선물을 베풀고 떠난 할머니의 숭고한 뜻 앞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또한 “눈감기 전에 일본의 사죄를 받고 싶다.”던 간절한 소원을 이뤄 드리지 못한 점 죄스럽기만 하다. 할머니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2003년 일본 강연회, 2008년 자서전 출간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일본 정부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는 것만이 피해자들의 짓밟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평소 “전쟁이 모든 고통을 만들었고, 전쟁이 없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야만 해결된다.”며 “일본 민간기금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고 감명 받았다.”고 말해왔다. 할머니들은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월 13일 수요집회는 900회를 돌파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4명 중 생존자는 이제 85명에 불과하다. 이들도 대부분 80~90대의 고령인인 데다 노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김 할머니의 기부는 ‘20세기 최대 인신매매죄’를 공식 사죄와 법적 보상 없이 민간 기금으로만 청산하려는 일본 정부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 할머니는 자신을 암흑의 길로 내몰았던 가난이 사무쳐 재산 절반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내놓았다. 나머지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잘못을 죽어서도 증언하려고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기부했다. 일본은 할머니 유언에 담긴 무언의 꾸짖음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2007년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 2009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그사이 점점 더 많은 할머니들이 삶을 마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발뺌만 하지 말고 해야 할 도리를 다하라. 우리 정부도 미온적 대응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일제의 만행과 가난 때문에 여자의 몸으로 평생 한 맺힌 일생을 살아오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나눔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한 번쯤 되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것도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인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빈다!
법정이 남긴 무소유와 종교화해
법정이 남긴 무소유와 종교화해
사려란 본래 ‘몸’ 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샤리라(Sharira)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로 음역해서 설리타 또는 뜻을 옮겨 영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광명경’ 은 석가모니의 말을 빌려 ‘사리는 정혜를 닦는 데서 나오므로 보기 드물고 사리를 얻는 것은 상등의 복전을 얻는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설에는 세존의 사리가 여덟 섬에 이른다고도 하고, 속세의 신도들은 고승일수록 입적할 때 사리가 많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사리에 대한 신비로운 믿음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널리 퍼졌다. 중국 의약서 ‘본초강목’ 은 사리는 영양의 뿔로만 깰 수 있을 뿐 망치로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학자 이규경도 저서 ‘석전총설’에서 사리는 극음의 산물이므로 극양의 재료인 코뿔소의 뿔이 닿으면 바로 녹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틈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도 적지 않았던 듯 싶다. ‘고려시절요’ 에는 효가라는 요승이 등장한다. 그는 꿀물과 쌀가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감로사리” 라고 주장하며 세를 불려 사기행각을 벌이다 충선왕 5년(1313년) 처벌을 받았다. 또 실학자 이익은 ‘성로사설’에서 “사리는 옛날에도 얻기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조금만 이름이 있는 승려가 죽어도 반드시 사리가 나왔다며 부도를 세운다. 전에는 사리의 진위를 놓고 승려들이 소송을 하더니 부도를 허물고 진짜 사리인지 깨 보는 일도 있었다.” 고 꼬집기도 했다. 아예 사리는 인간의 신체 내부에 있던 물질이 화장 때의 열로 인해 변형된 것일 뿐 득도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1991년 국제 법의학 저널에 인간의 넓적다리뼈를 섭씨 14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할 때 수정 형체의 물질이 형성된다는 연구가 실렸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사리를 보물로 만드는 것은 구슬의 가치나 성분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지주한 불심이다. 그저 사리의 개수를 따져 대덕의 법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법정 스님은 조계종단의 고위 직책은커녕 그 흔한 주지 자리하나 차지하지 않았지만 불교계에 뚜렷한 종적을 남긴 ‘큰어른’ 이다. 평생 무소유로 살았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열반의 세계로 든 법정 스님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이라며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고 설법했다. 몸소 농사지은 채소 하나라도 이웃과 나눠 먹고, 책 인세가 생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스님은 자신이 죽더라도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과 수의 대신 평소 입던 승복 차림 그대로 화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까지 무소유를 실천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탐욕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스님은 송광사 뒤편 불일암에서 17년 전깃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에서 또 17년을 기거할 정도로 속세를 멀리했지만 사바세계의 대중과는 끊임없이 교감했다. 스님은 불교의 틀에만 머무르지 않고 종교 간 화해와 평생 공을 들였다고 김수환 추기경을 길상사 개원 법뢰에 초대하는가 하면, 천주교 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하고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했다. 개신교나 원불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불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아닌 바로 친절” 이라고 말했다. 스님이 실천을 통해 풍겨냈던 삶의 향내를 사회 구석구석에 배게 해서 많은 이가 그 향기를 맡고 스스로도 그런 향기를 내겠다고 노력하게 된다면, 스님의 향기는 우리의 영원한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방자치 철면피들 혈세잔치
지방자치 철면피들 혈세잔치
2006년 6월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시 시장이 시의회에 나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력으로 재건하기 어려워서 지방자치단체 파산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632억엔(¥)의 빚을 감당 못해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었다. 방청석을 메운 시민들 사이에서 야유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파산 결과는 참혹했다. 12만이던 인구가 파산을 앞두고 빠져나가 1만 2000명으로 떨어졌다. 절반으로 줄어든 공무원들은 한 해 1000시간 넘게 야근을 하면서도 한 푼의 수당도 받지 못했다. 탄광 2개를 거느린 유바리는 홋카이도의 대표적 석탄 산지로 번창하다 1980년대 탄광산업이 쇠퇴하자 관광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스키장·호텔·리조트·역사촌·석탄박물관 등 47개 관광 사업에 176억엔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1994년 일본의 거품 경기가 가라앉고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재정이 파탄나 빚더미에 앉았다. 2007년부터 정부 관리 아래 적자를 줄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엔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재정 위기에 몰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지자체가 많다. 오사카의 모리구치시도 2004년 직원 급여를 줄여 적자 탈출에 나섰다. 미국에선 가장 부유한 주라는 캘리포니아가 작년 6월 돈이 없어 죄수들을 형기도 마치기 전에 석방해야 했다. 하와이는 작년부터 한 달에 사흘씩 공무원들을 강제로 휴가 보내고 있다. 부산광역시 남구가 작년 말 지자체 처음으로 월급 줄 돈이 없어 지방채를 발행해 20억 원의 빚을 냈다고 밝혔다. 이 돈으로 환경미화원 인건비와 퇴직금 11억 원, 공무원 연가 보상비 3억 7000만 원 등을 매웠다. 남구는 부동산 값이 내리면서 재산세 같은 세입과 정부 지방교부금이 크게 줄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데 왜 남구만 빚을 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남구는 2005년부터 437억 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짓고 체육센터 등을 세우느라 몇 년 사이 120억 원을 빌려 썼다고 한다. 부산시는 “그 바람에 예산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고 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수천 억 짜리 호화 청사를 짓거나 전시성·선심성 행사에 예산을 허루루 쓰는 곳이 수두룩하다. 검찰소환을 앞두고 자살한 오근섭 전 양산시장은 선거 자금으로 빌린 60억 원을 갚기 위해 뇌물을 받아왔다고 울산지검이 밝혔다. 오 전 시장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후 선거 빚에 시달리다가 2003년 땅을 담보 잡히고 모 저축은행에서 59억 원을 대출받고, 그는 비슷한 시기에 친지들에게서도 2억 원을 빌렸다. 오 전 시장은 묵은 선거 빚을 갚기 위해 진 새 빚을 갚으려고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양산시 성북면 일대 땅이 도시기본계획에 포함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흘려주고 9차례에 걸쳐 24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 또한 사돈에게 빌린 22억 5000만 원 짜리 어음을 활인해 돈을 만들어 2004년 선거 빚의 일부를 갚았지만 석달 뒤 다시 돌아온 어음 만기에 쫓기게 되자 뇌물을 받고 도시계획정보를 흘렸다고 한다. 2002년 선거에서 낙선했던 오 전 시장은 2004년 보궐선거에 이어 2006년에도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가 한 번 선거 때마다 수십억 원의 돈을 뿌려댔다면 유권자 18만 명의 양산 선거는 돈으로 범벅이 된 선거였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일이 양산에서만 일어났을까. 2007년 청도군수 재선거 때 돈 받은 혐의로 경찰수사 대상에 오른 주민이 5700명 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장·군수로 당선된 사람들이 자기가 쓴 돈을 벌충하기 위해 개발규제를 해제해주고 관청 공사와 뒷돈을 맞거래 하며 과장·계장 자리를 부하들에게 돈 받고 팔아넘기는 ‘매관매직’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리를 내고 굴러가는 지방자치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게임 중독 심각한 사회문제
게임 중독 심각한 사회문제
2차 대전 후 미국 브룩헤이븐 연구소에서 일하던 핵물리학자 윌리엄 히긴보섬은 견학 오는 사람들을 위해 1958년 ‘테니스 포 투 (Tennis for Two)’ 라는 첫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다. 핵개발용 아날로그 컴퓨터를 이용해 두 사람이 화면을 보며 공을 주고받는 게임이었다. 1972년 놀런 부시넬이 세운 최초의 비디오게임 회사 아티라는 흑백 화면에서 막대를 위아래로 움직여 공을 치는 ‘풍’을 선보이며 한 해 20억 달러 매출을 올렸다. 이후 그래픽 기술, 인터넷 발달과 함께 컴퓨터 게임은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컴퓨터 게임이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게임 중독도 사회문제로 커졌다. 지난 해 영국에선 도박과 알코올 중독 전담 의료시설에 온라인 게임 중독 치료코스가 신설됐다. 비디오를 통한 치료를 비롯해 12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이곳 책임자는 “게임중독자들이 무조건 접속하지 못하게 해선 소용없다.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고 했다. 미국·네덜란드·중국에도 게임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팀은 작년 말 게임 중독자들이 마약 중독자와 비슷한 뇌 구조를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중독 조절 또는 중독과 관련된 특정부분이 마약 중독자들과 비슷한 활동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9~19세 어린이·청소년 중 2.3%, 17만 명이 약물치료가 필요한 인터넷 중독 고위험 군이라고 분석했다. PC방에서 닷새나 무협 온라인게임에 빠져 지내던 30대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이 일용직 노동자는 소시지와 햄버거만 가끔 먹으며 컴퓨터에 매달렸다고 한다. 게임만 한다고 추궁하는 어머니를 숨지게 한 20대도 있었다. 그는 이 끔찍한 짓을 저지른 뒤 PC방에서 또 게임을 하다 붙잡혔다. 한 부부가 인터넷 게임에 빠져 갓난아기를 굶어죽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40대 남편과 20대 아내는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집 안에 방치하고 우유도 제때 주지 않은 채 하루 12시간 PC방에서 인터넷 게임에 몰두했다. 게임 중독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게임 중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08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중독률은 8.8%, 중독자 수는 199만 9000명이었다. 중독자의 40%가 초중고교 학생들이지만 청년실업과 맞물려 성인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기에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성인이 돼서도 인터넷 게임이나 도박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성인 중독자는 가족의 설득이 잘 통하지 않고 학교의 관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중독 탈출이 어렵다. 게임에 빠지면 통제력을 상실하고 충동적이 된다. 만성적인 수면 및 운동 부족으로 건강을 해치며 인간관계가 끊긴다. 증세가 심해지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혼동하게 돼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수 있다. 게임 중독은 자신을 망치는 데서 나아가 가족과 이웃에게 해악을 끼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게임을 적당히 즐기는 것까지 죄악시할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이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열 살짜리 큰 딸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골치를 앓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딸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했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일화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을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중요하다. 정부도 게임 산업 진흥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