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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락 경찰총수의 질타
강희락 경찰총수의 질타
10만 경찰의 총수인 강희락 경찰청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사건사고의 홍수 속에 바람 잘 날 없는 경찰을 지휘하며 1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냈다면 조촐한 축하행사라도 함 직하다. 2년 임기의 절반을 넘긴 시점의 개인적 소회도 가볍지 않을 것이다. 경찰 서비스의 수요자인 주민의 관점에서는 그가 지휘지침으로 정한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경찰’ 이 얼마나 구현됐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강 청장이 애초에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축하행사는 물 건너갔다. 부산에서 실종됐던 여중생이 숨진 채 발견돼 비상이 걸렸고, 나흘 뒤 피의자 김길태가 체포되기는 했지만 경찰에 부실 수사의 거센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강 청장은 그래서 축하모임 대신 반성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국 지방경찰청장회의를 소집해 여중생 자살사건 대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찰은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고 했다. 강 청장은 “막을 수 있는 (여중생 피살) 사건을 못 막아서 너무 아쉽다. 신뢰와 존경받는 경찰이 과욕이라면 욕이라도 덜 먹는 경찰이라도 되자.” 며 부하들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경찰에는 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한다는 자세가 유전인자로 흐르고 있다.” 며 “대충 수사하는 경찰은 총장 그만둬야 한다.” 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강 청장의 질책에 놀란 경찰은 어린이 청소년 대상 성범죄 전과자 관리를 강화하는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강 청장이 거론한 ‘시키는 일만 하는 경찰’ 에는 경찰 수뇌부도 포함된다. 경찰은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 여중생 살해범을 검거하라.” 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뒤늦게 대대적인 체포작전에 돌입했다. 지난 해 경기 고양시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사건 대처와 닮은꼴이다. 당시에는 이 대통령이 일산경찰서에 직접 가서 질책한 다음 날 용의자를 체포했고 이번에는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이틀 만에 김 씨를 붙잡았다. 경찰조직 전체가 강 청장의 반성이 여론의 질타를 모면하기 위한 면죄용이 아님을 행동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서울 강남의 어느 대형 유흥업소 업주와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경찰관이 지난 1년간 63명에 이른다고 경찰 스스로 밝혔다. 그 중에는 30통 이상 통화자 9명, 100통 이상 통화자 3명, 400통 이상 통화자 1audd이 포함돼 있다. 유흥업소 단속권이 있는 경찰관이 업주와 자주 통화하는 것은 이들 사이에 ‘검은 거래’ 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유흥업소와 일부 빗나간 경찰관들의 유착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그런 서글픈 구태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경찰은 유흥업소 업주 이모 씨의 차명계좌에서 경찰관들에게 돈이 흘러 들어갔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이 씨의 과거 휴대전화 통화기록도 살펴보고 있다. 이 씨는 10여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손님을 끄는 유흥주점 호객꾼 (속칭 삐끼) 이었다. 그런 사람이 강남의 대형 유흥업소 여러 곳을 운영하는 ‘큰손’ 으로 급성장한 것은 비호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씨의 업소도 불법영업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직원들만 잡혀가고 그는 처벌을 잘도 피해 나갔다. 유흥업소 불법영업과 그 뒤를 봐주는 비호세력의 존재는 이 씨의 업소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에 유흥업계와 경찰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검은 커넥션을 다 파헤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경찰이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끝내고 덮어버리면 유착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공직자들이 박봉 때문에 ‘생계형 뇌물’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 본연의 임무에 성실한 모범 경찰관에게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에서는 전 경찰총수와 경찰 50여명에게 ‘자랑스러운 칭찬주인공의 표창수상 한 바 있으며 소수의 경찰관 비리 등으로 다수의 경찰관까지 매도해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갈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불철주야 묵묵히 맡은 바 직무에 성실한 경찰관에게 격려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표상
대한민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표상
대한민국 해군 최고의 전사 한주호 준위가 차가운 바다에 목숨을 바쳤다. 천안함 구조 현장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악전고투하던 끝에 희생됐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해상 투수전투요원인 본인이 나서지 않으면 전우들에게 더 큰 위험이 따를 것을 알고 선뜻 나선 터였다. 46명의 젊은 해군 전우들의 생사를 몰라 온 국민이 애태우는 모습에 큰 사명감을 가졌을 것이다. ‘UDT의 전설’ 이던 그는 영웅답게 몸을 던졌다.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한 준위는 참 군인이었다. 국가의 안위와 전우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 앞에서도 몸을 사리는 법이 없는 용감한 전사였다. 50을 넘긴 노장임에도 여러 차례 소말리아 해적과 직접 교전을 벌여 제압했다. 극한 상황과 싸우는 특수요원으로서 항상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해온 한 준위는 후배 전사들이 가장 본받아야 할 전법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국가와 국민 모두 최고의 예우를 다해 한 준위를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하루 잠수하면 이틀 쉬어야 한다.” 는 안전규정도 바다 밑 캄캄한 어둠에 갇혀 있는 후배들을 살려내려면 1분이 아쉽다는 그를 붙들지 못했다. 그리고 한 준위는 내리 나흘 잠수했다가 싸늘한 몸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지난 35년 수중폭파(UDT) 요원과 교관으로 뛰면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후배들을 배치하고 지휘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2년 뒤 전역을 앞두고 오는 9월 직업보도반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설 채비를 시작하는 그에게 부대는 “이제 그만 쉬라.” 고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과 해군을 위한 마지막 봉사.” 라며 잠수복을 입었다. 천안함이 동강나 가라앉은 45m 아래 바닷속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압의 다섯 배. 5기압이 넘어간다. 팽팽한 농구공을 넣으면 5분의 1로 쪼그라드는 압력이다. 거기서 10분만 작업해도 급격히 피로해지고 의식이 가물거린다. 무슨 임무로 바닷속에 내려와 있는지조차 잠깐씩 잊을 정도라고 한다. 수온도 체온도 영하에 가까운 3.5도다. 머리에 찌릿찌릿한 충격이 오고, 입에 끼우는 호흡기가 얼어붙을만큼 차갑다. 가뜩이나 흐린 서해 바닷물에 바닥까지 뻘밭이라 손목시계도 보이지 않도록 시야가 뿌옇다. 물살이 1노트, 시속 1.85km 넘으면 잠수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백령도 앞바다 조류는 5.3노트로 치달리고 있다. 현장에 달려온 민간 구조대원들이 선체 근처도 못 가보고 도로 올라와 손을 내젓는 바다였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초유의 국가적 위기다. 원인 규명과 실종자 구명이 늦어지면서 나라 전체가 혼란의 격량을 맞고 있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실종자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국가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전의 위중함이 뒤섞여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한 준위의 생명은, 국가적 위기에 닥쳐 우왕좌왕 해선 안 된다는 경고로 삼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두고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과 온 국민이 절망과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 자칫 현재의 위기가 더 큰 위기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우리 모두 한 준위를 본받아 말보다 실천으로, 충동보다 인내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군인의 자랑스러운 표상으로서 한 준위는 우리에게 충분한 위기극복 역량이 있음을 희생으로 웅변해줬다. 한 준위의 빈소엔 그동안 해군 당국을 많이 원망하던 실종자 가족도 찾아와 “죄송하다.” 며 흐느꼈다. ‘한주호 준위. 국민은 당신의 거룩한 희생 앞에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 가슴 속에서 잠시 흔들렸던 군에 대한 미더움을 되찾게 해준 당신을 향한 고마움을 어찌 나타내야 할지 모르겠다.’ 국민과 함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김순악 할머니의 숭고한 기부
김순악 할머니의 숭고한 기부
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김순악 할머니는 중국 각지의 위안소를 돌며 참담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기억했지. 다 얘기해 줄라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1928~2010)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구술해 책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 카이’를 2년 전 펴낸 역사의 증인이었다. 지난 1월 암으로 타계한 김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전재산 1억 826만원을 소년소녀가장 돕기와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내놓았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경북 경산의 소작농 집안에 태어난 할머니는 열여섯 살 때 방직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집을 나섰다가 중국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시절을 짓밟혔다. “방문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으로 주인이 요만한 주먹밥 서너 개 넣어준다. 그럼 그걸 먹고 하루 종일 상대한다니 말이다. 일본 놈들한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으로 알면 그렇게 몬한다.” 할머니는 광복 이듬해 돌아왔어도 신산한 삶이 계속됐다. 식모살이와 날품팔이로 근근이 생계를 잇다 일흔을 넘긴 2000년에야 정부·지자체에서 생활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일평생 우리 사회로부터 위로는커녕 상처만 가득 받고도 오히려 큰 선물을 베풀고 떠난 할머니의 숭고한 뜻 앞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또한 “눈감기 전에 일본의 사죄를 받고 싶다.”던 간절한 소원을 이뤄 드리지 못한 점 죄스럽기만 하다. 할머니는 수치심을 무릅쓰고 2003년 일본 강연회, 2008년 자서전 출간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일본 정부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 행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는 것만이 피해자들의 짓밟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평소 “전쟁이 모든 고통을 만들었고, 전쟁이 없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야만 해결된다.”며 “일본 민간기금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고 감명 받았다.”고 말해왔다. 할머니들은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월 13일 수요집회는 900회를 돌파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234명 중 생존자는 이제 85명에 불과하다. 이들도 대부분 80~90대의 고령인인 데다 노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김 할머니의 기부는 ‘20세기 최대 인신매매죄’를 공식 사죄와 법적 보상 없이 민간 기금으로만 청산하려는 일본 정부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 할머니는 자신을 암흑의 길로 내몰았던 가난이 사무쳐 재산 절반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내놓았다. 나머지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잘못을 죽어서도 증언하려고 위안부 역사관 건립에 기부했다. 일본은 할머니 유언에 담긴 무언의 꾸짖음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2007년 미국 하원의 결의안 채택. 2009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그사이 점점 더 많은 할머니들이 삶을 마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발뺌만 하지 말고 해야 할 도리를 다하라. 우리 정부도 미온적 대응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일제의 만행과 가난 때문에 여자의 몸으로 평생 한 맺힌 일생을 살아오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나눔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한 번쯤 되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것도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인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빈다!
법정이 남긴 무소유와 종교화해
법정이 남긴 무소유와 종교화해
사려란 본래 ‘몸’ 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샤리라(Sharira)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로 음역해서 설리타 또는 뜻을 옮겨 영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광명경’ 은 석가모니의 말을 빌려 ‘사리는 정혜를 닦는 데서 나오므로 보기 드물고 사리를 얻는 것은 상등의 복전을 얻는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설에는 세존의 사리가 여덟 섬에 이른다고도 하고, 속세의 신도들은 고승일수록 입적할 때 사리가 많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사리에 대한 신비로운 믿음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널리 퍼졌다. 중국 의약서 ‘본초강목’ 은 사리는 영양의 뿔로만 깰 수 있을 뿐 망치로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학자 이규경도 저서 ‘석전총설’에서 사리는 극음의 산물이므로 극양의 재료인 코뿔소의 뿔이 닿으면 바로 녹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틈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도 적지 않았던 듯 싶다. ‘고려시절요’ 에는 효가라는 요승이 등장한다. 그는 꿀물과 쌀가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감로사리” 라고 주장하며 세를 불려 사기행각을 벌이다 충선왕 5년(1313년) 처벌을 받았다. 또 실학자 이익은 ‘성로사설’에서 “사리는 옛날에도 얻기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조금만 이름이 있는 승려가 죽어도 반드시 사리가 나왔다며 부도를 세운다. 전에는 사리의 진위를 놓고 승려들이 소송을 하더니 부도를 허물고 진짜 사리인지 깨 보는 일도 있었다.” 고 꼬집기도 했다. 아예 사리는 인간의 신체 내부에 있던 물질이 화장 때의 열로 인해 변형된 것일 뿐 득도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1991년 국제 법의학 저널에 인간의 넓적다리뼈를 섭씨 14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할 때 수정 형체의 물질이 형성된다는 연구가 실렸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사리를 보물로 만드는 것은 구슬의 가치나 성분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지주한 불심이다. 그저 사리의 개수를 따져 대덕의 법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법정 스님은 조계종단의 고위 직책은커녕 그 흔한 주지 자리하나 차지하지 않았지만 불교계에 뚜렷한 종적을 남긴 ‘큰어른’ 이다. 평생 무소유로 살았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열반의 세계로 든 법정 스님은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이라며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고 설법했다. 몸소 농사지은 채소 하나라도 이웃과 나눠 먹고, 책 인세가 생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스님은 자신이 죽더라도 사리를 수습하지 말 것과 수의 대신 평소 입던 승복 차림 그대로 화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까지 무소유를 실천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라 탐욕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스님은 송광사 뒤편 불일암에서 17년 전깃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에서 또 17년을 기거할 정도로 속세를 멀리했지만 사바세계의 대중과는 끊임없이 교감했다. 스님은 불교의 틀에만 머무르지 않고 종교 간 화해와 평생 공을 들였다고 김수환 추기경을 길상사 개원 법뢰에 초대하는가 하면, 천주교 신문에 성탄메시지를 기고하고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했다. 개신교나 원불교 등 다른 종교인들과도 허물없이 지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불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아닌 바로 친절” 이라고 말했다. 스님이 실천을 통해 풍겨냈던 삶의 향내를 사회 구석구석에 배게 해서 많은 이가 그 향기를 맡고 스스로도 그런 향기를 내겠다고 노력하게 된다면, 스님의 향기는 우리의 영원한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방자치 철면피들 혈세잔치
지방자치 철면피들 혈세잔치
2006년 6월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시 시장이 시의회에 나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력으로 재건하기 어려워서 지방자치단체 파산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632억엔(¥)의 빚을 감당 못해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었다. 방청석을 메운 시민들 사이에서 야유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파산 결과는 참혹했다. 12만이던 인구가 파산을 앞두고 빠져나가 1만 2000명으로 떨어졌다. 절반으로 줄어든 공무원들은 한 해 1000시간 넘게 야근을 하면서도 한 푼의 수당도 받지 못했다. 탄광 2개를 거느린 유바리는 홋카이도의 대표적 석탄 산지로 번창하다 1980년대 탄광산업이 쇠퇴하자 관광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스키장·호텔·리조트·역사촌·석탄박물관 등 47개 관광 사업에 176억엔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1994년 일본의 거품 경기가 가라앉고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재정이 파탄나 빚더미에 앉았다. 2007년부터 정부 관리 아래 적자를 줄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엔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재정 위기에 몰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지자체가 많다. 오사카의 모리구치시도 2004년 직원 급여를 줄여 적자 탈출에 나섰다. 미국에선 가장 부유한 주라는 캘리포니아가 작년 6월 돈이 없어 죄수들을 형기도 마치기 전에 석방해야 했다. 하와이는 작년부터 한 달에 사흘씩 공무원들을 강제로 휴가 보내고 있다. 부산광역시 남구가 작년 말 지자체 처음으로 월급 줄 돈이 없어 지방채를 발행해 20억 원의 빚을 냈다고 밝혔다. 이 돈으로 환경미화원 인건비와 퇴직금 11억 원, 공무원 연가 보상비 3억 7000만 원 등을 매웠다. 남구는 부동산 값이 내리면서 재산세 같은 세입과 정부 지방교부금이 크게 줄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데 왜 남구만 빚을 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남구는 2005년부터 437억 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짓고 체육센터 등을 세우느라 몇 년 사이 120억 원을 빌려 썼다고 한다. 부산시는 “그 바람에 예산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고 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수천 억 짜리 호화 청사를 짓거나 전시성·선심성 행사에 예산을 허루루 쓰는 곳이 수두룩하다. 검찰소환을 앞두고 자살한 오근섭 전 양산시장은 선거 자금으로 빌린 60억 원을 갚기 위해 뇌물을 받아왔다고 울산지검이 밝혔다. 오 전 시장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후 선거 빚에 시달리다가 2003년 땅을 담보 잡히고 모 저축은행에서 59억 원을 대출받고, 그는 비슷한 시기에 친지들에게서도 2억 원을 빌렸다. 오 전 시장은 묵은 선거 빚을 갚기 위해 진 새 빚을 갚으려고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양산시 성북면 일대 땅이 도시기본계획에 포함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흘려주고 9차례에 걸쳐 24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 또한 사돈에게 빌린 22억 5000만 원 짜리 어음을 활인해 돈을 만들어 2004년 선거 빚의 일부를 갚았지만 석달 뒤 다시 돌아온 어음 만기에 쫓기게 되자 뇌물을 받고 도시계획정보를 흘렸다고 한다. 2002년 선거에서 낙선했던 오 전 시장은 2004년 보궐선거에 이어 2006년에도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가 한 번 선거 때마다 수십억 원의 돈을 뿌려댔다면 유권자 18만 명의 양산 선거는 돈으로 범벅이 된 선거였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일이 양산에서만 일어났을까. 2007년 청도군수 재선거 때 돈 받은 혐의로 경찰수사 대상에 오른 주민이 5700명 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장·군수로 당선된 사람들이 자기가 쓴 돈을 벌충하기 위해 개발규제를 해제해주고 관청 공사와 뒷돈을 맞거래 하며 과장·계장 자리를 부하들에게 돈 받고 팔아넘기는 ‘매관매직’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리를 내고 굴러가는 지방자치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게임 중독 심각한 사회문제
게임 중독 심각한 사회문제
2차 대전 후 미국 브룩헤이븐 연구소에서 일하던 핵물리학자 윌리엄 히긴보섬은 견학 오는 사람들을 위해 1958년 ‘테니스 포 투 (Tennis for Two)’ 라는 첫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다. 핵개발용 아날로그 컴퓨터를 이용해 두 사람이 화면을 보며 공을 주고받는 게임이었다. 1972년 놀런 부시넬이 세운 최초의 비디오게임 회사 아티라는 흑백 화면에서 막대를 위아래로 움직여 공을 치는 ‘풍’을 선보이며 한 해 20억 달러 매출을 올렸다. 이후 그래픽 기술, 인터넷 발달과 함께 컴퓨터 게임은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컴퓨터 게임이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게임 중독도 사회문제로 커졌다. 지난 해 영국에선 도박과 알코올 중독 전담 의료시설에 온라인 게임 중독 치료코스가 신설됐다. 비디오를 통한 치료를 비롯해 12가지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이곳 책임자는 “게임중독자들이 무조건 접속하지 못하게 해선 소용없다.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고 했다. 미국·네덜란드·중국에도 게임 중독 치료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팀은 작년 말 게임 중독자들이 마약 중독자와 비슷한 뇌 구조를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중독 조절 또는 중독과 관련된 특정부분이 마약 중독자들과 비슷한 활동성을 보였다는 것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9~19세 어린이·청소년 중 2.3%, 17만 명이 약물치료가 필요한 인터넷 중독 고위험 군이라고 분석했다. PC방에서 닷새나 무협 온라인게임에 빠져 지내던 30대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이 일용직 노동자는 소시지와 햄버거만 가끔 먹으며 컴퓨터에 매달렸다고 한다. 게임만 한다고 추궁하는 어머니를 숨지게 한 20대도 있었다. 그는 이 끔찍한 짓을 저지른 뒤 PC방에서 또 게임을 하다 붙잡혔다. 한 부부가 인터넷 게임에 빠져 갓난아기를 굶어죽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40대 남편과 20대 아내는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집 안에 방치하고 우유도 제때 주지 않은 채 하루 12시간 PC방에서 인터넷 게임에 몰두했다. 게임 중독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게임 중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08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중독률은 8.8%, 중독자 수는 199만 9000명이었다. 중독자의 40%가 초중고교 학생들이지만 청년실업과 맞물려 성인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기에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성인이 돼서도 인터넷 게임이나 도박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성인 중독자는 가족의 설득이 잘 통하지 않고 학교의 관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중독 탈출이 어렵다. 게임에 빠지면 통제력을 상실하고 충동적이 된다. 만성적인 수면 및 운동 부족으로 건강을 해치며 인간관계가 끊긴다. 증세가 심해지면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혼동하게 돼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수 있다. 게임 중독은 자신을 망치는 데서 나아가 가족과 이웃에게 해악을 끼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게임을 적당히 즐기는 것까지 죄악시할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이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열 살짜리 큰 딸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골치를 앓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딸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했다.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일화다. 어렸을 때부터 인터넷을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중요하다. 정부도 게임 산업 진흥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지방자치 철면피들 혈세잔치
지방자치 철면피들 혈세잔치
2006년 6월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시 시장이 시의회에 나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자력으로 재건하기 어려워서 지방자치단체 파산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 632억엔(¥)의 빚을 감당 못해 파산할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었다. 방청석을 메운 시민들 사이에서 야유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파산 결과는 참혹했다. 12만이던 인구가 파산을 앞두고 빠져나가 1만 2000명으로 떨어졌다. 절반으로 줄어든 공무원들은 한 해 1000시간 넘게 야근을 하면서도 한 푼의 수당도 받지 못했다. 탄광 2개를 거느린 유바리는 홋카이도의 대표적 석탄 산지로 번창하다 1980년대 탄광산업이 쇠퇴하자 관광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스키장·호텔·리조트·역사촌·석탄박물관 등 47개 관광 사업에 176억엔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1994년 일본의 거품 경기가 가라앉고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재정이 파탄나 빚더미에 앉았다. 2007년부터 정부 관리 아래 적자를 줄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엔 파산까지는 아니지만 재정 위기에 몰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지자체가 많다. 오사카의 모리구치시도 2004년 직원 급여를 줄여 적자 탈출에 나섰다. 미국에선 가장 부유한 주라는 캘리포니아가 작년 6월 돈이 없어 죄수들을 형기도 마치기 전에 석방해야 했다. 하와이는 작년부터 한 달에 사흘씩 공무원들을 강제로 휴가 보내고 있다. 부산광역시 남구가 작년 말 지자체 처음으로 월급 줄 돈이 없어 지방채를 발행해 20억 원의 빚을 냈다고 밝혔다. 이 돈으로 환경미화원 인건비와 퇴직금 11억 원, 공무원 연가 보상비 3억 7000만 원 등을 매웠다. 남구는 부동산 값이 내리면서 재산세 같은 세입과 정부 지방교부금이 크게 줄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한데 왜 남구만 빚을 졌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남구는 2005년부터 437억 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짓고 체육센터 등을 세우느라 몇 년 사이 120억 원을 빌려 썼다고 한다. 부산시는 “그 바람에 예산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고 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수천 억 짜리 호화 청사를 짓거나 전시성·선심성 행사에 예산을 허루루 쓰는 곳이 수두룩하다. 검찰소환을 앞두고 자살한 오근섭 전 양산시장은 선거 자금으로 빌린 60억 원을 갚기 위해 뇌물을 받아왔다고 울산지검이 밝혔다. 오 전 시장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후 선거 빚에 시달리다가 2003년 땅을 담보 잡히고 모 저축은행에서 59억 원을 대출받고, 그는 비슷한 시기에 친지들에게서도 2억 원을 빌렸다. 오 전 시장은 묵은 선거 빚을 갚기 위해 진 새 빚을 갚으려고 2004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양산시 성북면 일대 땅이 도시기본계획에 포함될 예정이라는 정보를 흘려주고 9차례에 걸쳐 24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 또한 사돈에게 빌린 22억 5000만 원 짜리 어음을 활인해 돈을 만들어 2004년 선거 빚의 일부를 갚았지만 석달 뒤 다시 돌아온 어음 만기에 쫓기게 되자 뇌물을 받고 도시계획정보를 흘렸다고 한다. 2002년 선거에서 낙선했던 오 전 시장은 2004년 보궐선거에 이어 2006년에도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가 한 번 선거 때마다 수십억 원의 돈을 뿌려댔다면 유권자 18만 명의 양산 선거는 돈으로 범벅이 된 선거였다는 말이 된다. 이런 일이 양산에서만 일어났을까. 2007년 청도군수 재선거 때 돈 받은 혐의로 경찰수사 대상에 오른 주민이 5700명 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장·군수로 당선된 사람들이 자기가 쓴 돈을 벌충하기 위해 개발규제를 해제해주고 관청 공사와 뒷돈을 맞거래 하며 과장·계장 자리를 부하들에게 돈 받고 팔아넘기는 ‘매관매직’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리를 내고 굴러가는 지방자치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서로의 칭찬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엔돌핀
서로의 칭찬은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엔돌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간이 발전 지향적이고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최악의 여건에서 성공지수를 높여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모두 칭찬 때문이었다. 칭찬을 하면 엔돌핀이 돌고 듣는 사람은 더욱 좋아서 인간관계가 아름답게 승화되고 밝은 사회가 이루어진다는 나경택 회장. 그는 “사람의 손이 두 개인 까닭은 한 손은 자기를 다스리고 한 손은 남을 위해서 사용해라!” 라는 철학을 갖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남을 위한 나의 작은 손길 하나도 큰 의미가 있지만 도움을 받는 상대의 마음은 오래도록 잔잔한 따스함으로 남는다. 사회가 서로 남을 헐뜯고 비방하는 문화가 만연하다면 건전한 사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경택 회장은 칭찬운동으로 인간승리 길목에 오아시스를 만들어가며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칭찬이 있기 때문이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릴 수 있는 것도 칭찬이 있기 때문이다. 엔돌핀과 같은 칭찬은 활력을 주고 지속적인 미래를 꿈꾸게 한다. 노령산맥의 지맥이 도심지 외각으로 길게 뻗어 청정한 자연환경을 형성하고 늘 풍요로운 농산물의 집산지 나주는 그가 태어난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의 조부모님이 유명 한의사여서 집안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3개 군에서 한의사가 단 한분뿐이어서 환자들은 물론 사랑방 손님과 빈곤한 사람들, 집안의 일을 돕는 일꾼 등으로 북적대는 집안 분위기는 남에게 베풀고 넉넉함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런 가정환경은 그가 성장하여 사람들을 좋아하고, 모두가 조화로운 모습으로 사회에 적응하여 성공하기를 바라는 칭찬운동가가 되는데 기여했다. 또한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부친은 전남지역 책임 새마을 지도자로 농촌 환경 개선운동과 무학자들을 위한 야학을 사비를 들여 개설하고 몸소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을 보고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던 그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칭찬운동과 더불어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가 경제인으로 돌아온 것은 건설업에 종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다섯 형제 중에 장남이었던 그는 큰 책임감과 함께 운영의 일선에서 열심히 살았다. 틈틈이 양로원, 고아원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보살폈다. 한동안은 남을 위해서 봉사를 해도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많아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 그래서 친구나 학교동창 등 필연적인 삶에서 엮어진 사람들을 잠시 잊고 살면서 어려운 이웃과 소외계층을 돌아보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남에게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서 나눔의 문화가 희망을 키우는 터전이 되고 행복한 사회의 발판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칭찬운동이었다. 칭찬합시다 법인을 만들다. 그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목에서 칭찬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칭찬은 개인의 위상은 물론 발전의 기틀을 제공하고 나아가 공동체적 삶속에서 자존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사비를 들여 비영리 민간단체로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자신도 질병이나 생활고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런 사람들을 돕고 보이지 않는 따뜻한 손길을 주는 사람을 찾아 <자랑스러운칭찬주인공>으로 위촉했다. 그는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들고,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말처럼 칭찬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로움을 자신이 직접 실천을 통해서 느꼈다. 또한 칭찬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공동승리를 함께 체험하면서 더더욱 자신이 전개하고 있는 일에 자긍심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베푸는 일에는 경제적으로 여건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스로 남을 칭찬하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사무실, 표창장, 기념품 등 소요되는 제반비용을 장기간 자비로 처리해야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뒤따른 적도 많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부모유산까지 소진하고 집에서 부업까지 해서 도와줄 정도로 칭찬운동을 갈급하고 서원했다. 주로 그는 소외계층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 국가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 장기 기증으로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 무료급식을 전개하는 사람 등 이 사회에 희생적 가치가 인정되어야할 사람을 각계에서 찾아 표창을 했다. 어떤 이는 전라북도 산간벽지에 초등학교 교사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 번도 빠짐없이 결식아동을 위해 도시락을 싸다주는 제자사랑을 보여 표창을 수여했다. 한 번은 군부대에서 계룡군부대로 입대한 이병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입원을 못해드려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얘기를 접하고 그 부대의 주임상사, 원사가 포장마차를 해서 이병의 모친 병원비를 조달한다는 미담이 있어 본인들은 물론 그 부대의 대대장, 연대장까지 표창한 바 있다. 또한 신망애 재활원에서 처녀의 몸으로 60~70명을 환경이 열악한 천막촌에서 헌신 봉사하는 원장이 있어서 표창을 했다. 또 경남 마산의 모 주택과 장 부인이 새벽에 신문을 배달해 수익금 전액을 장애인을 위해 기부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고 역시 <칭찬합시다> 주인공으로 선정했다. 사회의 엔돌핀을 주다. 그렇게 칭찬운동을 통해 대통령비서 실장에 이르기까지 표창을 수여했던 그는 <칭찬합시다> 주인공으로 위촉한 회원만 해도 2000여명이나 된다. 그는 “칭찬이란 것은 돈도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 칭찬을 어떤 사람에게 할 것인가는 동전의 양면성과 같다. 긍정적으로 보면 남을 험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라고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칭찬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메마르고 칭찬에 인색하다. 내가 칭찬을 함으로써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받는 칭찬이 좋으면 남에게도 그런 좋은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어야 좋은 사회가 이루어진다.” 라고 말한다. 그는 칭찬이 세포증식과 같이 하면 할수록 자꾸 하고 싶고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것은 모두가 정형화 되고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살다보니 표정이 굳고 남의 일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인데 칭찬이라는 행복주사를 맞으면 생활에 활력을 찾아 이웃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랜 칭찬운동으로 젊음을 태우고 아직도 열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그는 지금도 전국을 누비며 칭찬운동으로 이웃을 빛나게 하고 있다. 이제 그는 보다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서 이웃과 후배들에게 이른다. “우리 사회에 인륜도덕이 희생되도록 노력하고 남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도록 수신하고 겸손해라. 나보다 남을 존경하고 윗사람과 스승을 받드는 문화정착이 아름다운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또한 나의 작은 칭찬의 시작이 나의 발전은 물론 상대의 성취도를 높이는 큰 결과의 시작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 밥을 먹듯 함께 살아라.” 그가 이르는 대로 삶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활력을 주는 칭찬으로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면 모두가 발전에 노력을 박차하는 활기차고 밝은 사회가 될 것이다. 또한 칭찬이 주는 쌍방 공동승리로 모두가 즐겁고 높은 행복지수에 이를 것이다. 가까운 이웃에 칭찬으로 하루의 시작을 열어보면 어떨까?
한민족의 기원과 다문화
한민족의 기원과 다문화
한국인의 뿌리는 6만~7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인류의 조상이 인도 북부를 거쳐 동남아에 정착한 뒤 그 중 일부가 다시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쪽으로 이동한 한 갈래가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아시아 10개주 과학자들이 2004년부터 아시아 73개 민족의 유전자를 분석해 밝혀낸 결과다. 세계적 과학기술지 ‘사이언스’ 에 실린 이 연구결과로 한민족이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종래 상식은 뒤집어진 것일까. 이번 연구의 핵심은 몽골을 비롯한 북방 민족들의 조상도 원래는 동남아에서 왔다는 것이다. 4만~5만 년 전 동남아에서 아시아 각지로 퍼져나간 아시아인의 조상들이 훗날 다시 진화해 북방 기마민족과 남방 농경민족 등으로 갈라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민족이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이고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까. 그건 아니다. 단국대 김욱 교수는 2004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 11개 민족 집단의 유전자를 분석해 “한민족의 기원에는 남방 농경민족과 북방 기마민족이 대략 6 : 4 비율로 섞여 있다.” 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북방계보다는 남방계 혈통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는 5000년 전 쯤 중국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파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민족의 혈통이 남방계보다는 북방계에 더 가깝다는 다른 연구결과도 있다. 왜 그럴까.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물려주는 Y염색체 분석에서는 남방계가, 반대로 어머니가 딸에게만 물려주는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에서는 북방계가 주류, 여자는 북방계가 주류라는 것이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말 그대로 ‘남남북녀’ 인 셈인데 그 원인은 아직 분명치 않다. 북방 민족과 남방 민족이 한반도로 흘러들어와 피가 섞였다면 우리 민족은 옛날 교과서에 표현한 대로의 단일민족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고 생김새와 체형만으로 누구는 남방계, 누구는 북방계라고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인은 제주도 출신이건 평안도 출신이건 오랜 세월 피가 거듭 섞여 유전자가 동질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늘고 있는 지금, 더구나 ‘민족(Nation)’ 이란 단어 자체가 19세기 유럽이 만든 환상이라는 이론으로 보면 단일민족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펄벅재단이 해마다 8명씩 위드가 활동 중인 피츠버그로 대려가 촛불 경기 관람, 선물 교환 등 뜻 깊은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 행사의 취지는 한국에서 온갖 차별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다문화가 용인되는 넓은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자부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사 중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위드는 스타라는 이유로 떠받들면서 혼혈 아동들은 ‘잡종’ 이라고 놀려대는 한국 사회의 위선을 폭로한 대목에선 얼굴이 화끈거렸다. 위드처럼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 자녀가 벌써 10만명을 넘어섰다. 저출산 추세로 아이 한 명이 귀한 우리나라 입장에선 실로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피부색과 언어 문제로 놀림 받가 학교를 중도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따르면 고등학교 연령대에선 69.6%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걸로 나타났다. 이처럼 교육에서부터 불이익을 받으면 성인이 돼서 취업·결혼에 곤란을 겪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 사회의 불안 요인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국제결혼이 본격화된 게 1990년대 말이라 다문화 가정 자녀의 60%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지만 16~18세인 청소년층도 6000여명에 달한다. 5~10년 후면 이들의 사회 진출이 시작된다는 얘기다. 하루 빨리 이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